과도한 업무 압박감, 개인문제일까
중환자실 신입 간호사 2개월 교육받고 ‘독립’… 사고에 대한 불안감에 떨어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지난 3월 6일 고 박선욱 간호사의 죽음을 산업재해로 인정했다. 중환자실에서의 교육과정과 긴박한 업무수행, 그리고 간호사 교육의 구조적인 문제로 직장 내에서 적절한 교육이나 지원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고인이 과중한 업무를 수행했고, 이로 인해 정신적인 억제력이 저하돼 자살에 이르게 됐다는 이유에서다.
박 간호사의 죽음이 산재로 인정받은 것은 매우 중요하고 의미있는 일이다. 이 자살을 단순히 직장 내 괴롭힘이나 혹은 개인의 문제라고 치부하지 않고, 신규 간호사 교육 시스템이 미비하고 신입에게 과도한 업무부담을 준 병원 시스템의 문제로 인정했기 때문이다. 박 간호사는 지난해 2월 15일, 서울아산병원 인근 아파트에서 투신했다.
신규 간호사 ‘독립’하는 날, 병원은 긴장
당시 나는 자초지종을 듣기도 전에 그가 중환자실 신규 간호사였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자살을 선택한 이유가 저절로 이해 됐다. 나 역시 박 간호사와 마찬가지로 환자 중증도가 가장 높은 내과 중환자실로 처음 발령을 받았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짧은 교육기간 후에 혼자 환자를 봐야 하는 날이 하루하루 다가오는 걸 두려워하며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신규 간호사가 ‘독립’하는 날은 며칠 전부터 이야기가 돌고 당일에는 전체 공지를 한다. 어떤 사고가 터질지 몰라 독립한 신규 간호사뿐 아니라 병동 전체가 긴장하는 날인 것이다. 독립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마찬가지다. 독립 후 6개월 정도가 지나야 그런 불신의 눈초리에서 조금 벗어날 수 있다. 신규 간호사들은 그만큼 제대로, 충분히 교육받지 못한 상태에서 생명이 위독한 중환자 여러 명을 책임져야 한다.
보통 사람들은 평생 자기가 살인을 저지를 수 있다는 염려를 할 일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병원은, 특히 중환자실은 무의식 중에 늘 그런 공포를 안고 일한다. 환자 몸에 주렁주렁 달린 기계들의 역할을 배우게 될수록 내 작은 실수가 누군가의 아버지를, 누군가의 어머니를, 누군가의 사랑하는 사람을 죽게 할 수도 있음을 깨닫는다.
신규 간호사는 완전히 숙련되지 못한 상태에서 고작 2달 만에 독립하고, 선배 간호사들과 똑같이 동시에 여러 명의 환자를 봐야 한다. 한 환자의 상태가 안 좋아져서 그쪽에 정신이 팔리는 동안 다른 환자의 중요한 약물이 들어가는 관이 꺾여서 약이 들어가지 않고 있다거나, 플러그가 제대로 꽂혀 있지 않아 배터리가 방전돼 기계가 꺼질 수도 있다. 환자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기계가 오작동하거나, 심장에 가까운 혈관에 꽂혀 있던 굵은 도관이 빠져서 피바다가 되기도 한다. 간호사가 잠시 다른 환자를 보러 간 사이 의식이 불분명한 환자가 인공호흡기 관을 빼버리거나, 아차 하는 사이에 실수로 혈관 내에 다량의 공기가 유입되기도 한다. 약을 잘못된 경로로 주거나 혹은 치료농도를 유지하기 위해 시간을 엄격히 지켜야 하는 약이 제시간에 들어가지 않거나… 불행한 케이스를 나열하자면 밤을 새도 부족하다.
이는 특별히 업무능력이 부족하거나 덤벙거리는 일부 간호사들이 겪는 문제가 아니었다. 밥은커녕 하루종일 물도 제대로 못마시고, 때론 생리혈이 새서 바지를 빨갛게 적실 때까지 화장실도 제대로 못갈 만큼 바쁘게 일하는 대한민국 모든 간호사들의 이야기다. 이는 간호사들의 대단한 희생정신, 봉사정신 때문이 아니라 어쩔 수 없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 입에 밥이 들어가는 것보다는 환자의 생명이 우선이고, 내가 화장실 가는 것보다는 환자의 생명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환자가 타인이라 해도 생명보다 우선할 수 있는 것은 그다지 많지 않다.
그래서 간호사들은 생리적인 욕구조차 해결하지 못하고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기본적인 권리조차 박탈당한 채 일할 수밖에 없다. 1년 미만 신입 간호사들의 이직률이 33%에 달하고 간호사들의 평균 근속연수가 5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것은 이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지난해 3월 3일. 고인의 첫 번째 추모집회 현수막에는 ‘나도 너였다’라는 글씨가 크게 인쇄돼 있었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 사람에게 수많은 간호사들이 나도 그렇다고 말하는 현상이 기이하지 않은가. 집회에 온 수백 명의 간호사들이 서럽게 울고 갔다. 단순히 한 사람의 죽음에 대한 애도가 아니라, 그런 극단적인 선택에 공감이 되는 자신의 처지가 서러워서 우는 울음이었다.
캐나다 사람과 한국 사람의 몸은 다를까
이처럼 지금 병원의 시스템은 간호사를 죽게 할 수도 있는 환경이다. 이것은 동급의 다른 대형병원들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다. 간호사들이 자살을 생각하거나 혹은 선택할 수도 있는 병원, 과연 환자들에겐 안전할까? 나는 ‘절대 아니다’라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다.
병원에서 10년 가까이 일하면서 크고 작은 의료사고들을 봐왔다. 이론적으로는 병원에서 의료사고는 발생률이 0%여야 한다. 불량품이 나오면 버리면 되는 공장과는 달리 인간의 몸에 해를 끼치는 건 그게 100명 중 1명이든 1000명 중 1명이든 절대 용인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이론일 뿐이고 우리는 그저 의료사고 0%에 가깝게 되도록 애쓸 뿐이다.
그러나 제대로 교육받지 못하고, 독립하는 날이 다가오는 것을 사형선고처럼 두려워하는 신규 간호사들이 넘쳐나는 곳에서 과연 의료사고가 0%일 수 있을까? 참고로 캐나다에서는 신입 간호사는 아예 중환자실 발령 자체가 불가능하고, 최소 임상경력 1년 이상인 간호사들이 1년간 이론과 실습교육을 받은 다음에야 중환자실 간호사로 일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국내 최고를 자임하는 ‘빅5’ 병원들도 대학을 갓 졸업한 신입 간호사에게 고작 2개월간 교육을 해주는 게 전부다. 캐나다인의 몸에 비해 한국인의 몸이 생물학적으로 더 단순한 구조거나 생명력이 남다르거나 하진 않을 텐데 왜 한국의 중환자실 간호사는 대충 배워도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간호사의 죽음을 단지 개인의 문제로 치부해서는 안 되는 이유들이다. 간호사가 자살을 결심할 만큼 과도한 업무로 인한 압박감에 시달린다면 그 안에는 드러나지 않는 무수한 문제들이 있다는 의미다. 간호사가 자살하는 병원에서 환자들은 결코 안전할 수 없다.
<최원영 ‘행동하는 간호사회’ 간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