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병동 회식비를 내주는 이유
의사에게 노골적인 뇌물은 부담… 제약회사, 교묘한 마케팅의 일종
병원에서 일하면서 신기했던 것 중 하나가 제약회사의 직원이 우리 회식비를 내주고 가는 것이었다. 제약회사 직원이 회식비를 낼 때면 늘 비싼 식당에 갔다. 소고기나 일식 코스요리를 먹은 적도 있었다. ‘뇌물을 줄 생각이라면 교수님께나 드릴 것이지 말단 간호사한테까지 이렇게 대접을 할 필요가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제약 마케팅의 일종이었다.
![다양한 약물들.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 없음)/pexels](https://img.khan.co.kr/newsmaker/1322/1322_40.jpg)
다양한 약물들.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 없음)/pexels
2010년 ‘리베이트 쌍벌제’가 도입돼 리베이트를 제공하는 쪽뿐만 아니라 받는 쪽도 처벌받게 되었다. 그래서 제약회사들은 방법을 좀 더 교묘하게 바꿨다. 물론 그 법이 생기기 이전에도 거액의 돈을 계좌로 보내준다든가 하는 노골적으로 뇌물은 주는 행위는 서로 부담이었을 것이다. 바로 ‘부담 없는 방법으로 부담 주기’ 방식이다.
교수들이 쉽게 리베이트를 받는 이유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2013년 동아제약은 의사들에게 3400여회에 걸쳐 약 44억원대의 리베이트를 제공한 혐의로 기소됐는데, 의사들이 회사 영업사원들을 위한 동영상 강의를 해주는 것처럼 꾸며 강의료나 설문조사료 명목으로 수백만 원씩을 건넸다. 의사들에게 “아이고 선생님” 하고 전문가로서의 고견을 청한다고 하면서, 그리고 그 귀한 시간을 내준 대가라며 강의료 형식의 돈을 지불하는 것이다.
이외에도 제약회사가 주관·후원하는 세미나 등에 참여한 의사들에게 호텔 숙박을 제공하거나 비싼 식사나 온갖 자질구레한 기념품을 나눠주는 방법, 회의나 세미나에 참가한 이들에게 귀한 시간을 내줘서 고맙다며 참가비나 강의료를 후하게 건네는 것도 흔한 방법이다. 아마 우리 병동 회식비를 대신 결제해 주는 것도 이러한 맥락이었을 것이다. 몇십 명에게 소고기나 일식 코스요리를 대접하는 데에는 적지 않은 금액이 들지만 그 돈을 교수가 직접 받는 것도 아니니 딱히 처벌받을 일은 없다. 착한 교수님은 ‘공짠데 뭐 어때’라는 생각으로 직원들이 “우와 우와” 하며 맛있게 먹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봤을 것 같다. 이런 세련된 리베이트는 받는 쪽의 부담을 덜어준다.
하지만 당연히 제약회사가 이타적인 마음에서 이런 것을 베푸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제약 마케팅의 일환이고 효과도 충분히 증명됐다. 초창기에 제약회사들의 수익률은 타 기업과 비슷했었지만 1980년대 본격적인 제약 마케팅이 시작된 이후 수익률은 가파르게 증가했다. 2000년대 이후 제약회사들의 평균수익률은 20%에 육박한다. <포춘>지 500대 기업들의 평균수익률은 1950년대부터 지금까지 3~6%대 수준을 벗어난 적이 없다. 2012년에는 매출 상위 50개 제약회사의 매출이 우리나라 한 해 예산의 거의 2배에 이르렀다.
소위 엘리트들이 이런 리베이트에 쉽게 빠지는 이유는 자신은 스스로를 컨트롤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누릴 수 있는 것만 누리고, 그와는 독립적으로 의학적인 근거에 따라 소신대로 판단을 내릴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임상시험을 할 때 그 연구를 후원한 회사의 약을 대조약보다 호의적으로 대하는 편향이 심하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나아가 제약회사들은 마케팅뿐만 아니라 임상시험 등에는 더 적극적으로 개입하기도 한다. 의도된 결과를 도출하도록 객관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설계하거나, 자사 제품에 불리한 결과는 일부러 은폐하기도 한다. 제약회사의 사례는 아니지만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임상시험의 허술함을 여실히 드러낸 사건이다. 가습기 살균제의 성분이 인체에 유해하다는 실험 결과와 연구팀의 경고가 있었지만 업체는 결과를 무시했고 결국 이는 수많은 죽음으로 이어졌다. 이런 일은 빈번하게 일어난다. 불리한 실험 결과를 은폐한 채 판매했다가 심각한 부작용이 보고돼 판매가 중지된 약이 한두 개가 아니다. 심지어 어떤 기업들은 그 위험한 약들의 판매가 중지되는 시점을 최대한 늦추기 위해 보고를 은폐하기도 한다. 조금이라도 돈을 더 벌기 위해서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약’이 주요 사망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심장질환과 암에 이어 무려 3위를 차지하고 있다. 제약회사의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약 처방이 늘어나고 환자들은 여러 종류의 약을 한꺼번에 받게 된다. 처방받은 약의 부작용을 덜어주는 약, 그 추가로 처방받은 약의 부작용을 감소시키는 약, 그 약의 부작용을 떨어뜨리는 약…. 무한반복이다. 불필요한 약을 많이 처방받고 그 약의 부작용으로 사망한다. 돈을 주고 죽음을 사는 셈이다. 직접적인 사망을 초래하는 약뿐만 아니라 어지럼증 등의 부작용 역시 노인환자들에겐 치명적일 수 있다. 뼈가 약하고 치유가 더딘 노인들은 낙상으로 인한 골반 골절 등으로 장기간 누워 있다가 폐렴 같은 합병증으로 사망하기도 한다.
너무 많은 약을 먹는 환자들
가끔 너무 많은 약을 먹는 환자, 심지어 서로 상반되는 작용을 하는 약을 같이 복용하는 환자들을 볼 때면, ‘이게 정말 전부 환자를 위한 걸까, 꼭 필요한 약들일까’ 하는 의문이 들 때가 종종 있다. 우리는 몸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약물들이 우리 몸에서 만나 무슨 작용을 일으키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 통제를 중요하게 여기는 임상시험에서 7~8가지 약을 한꺼번에 투약해 그 조합들이 만들어내는 결과를 실험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환자들은 수많은 약을 동시에 복용한다.
16세기 의학자인 파라셀수스는 “모든 약은 독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몸에 어떤 작용을 일으키는 성분이기 때문에 잠재적으로는 몸을 해칠 수 있는 독성을 가진 것이다. 만약 아무런 독성도 없다면 그것은 아무런 작용도 하지 않는다는 의미나 다름없다. 효과는 불분명하지만 부작용이 있는 약들을 환자에게 잔뜩 먹여서 돈을 버는 제약회사들도 적지 않다. 그리고 거기에 이용당하는 의사들도 많다. 본인은 매우 이성적인 사람이고 교묘한 리베이트로부터 자유롭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고 많은 통계 결과들이 말해주고 있다.
미국의 의과대학협회는 모든 의사, 교수, 직원, 심지어 실습생까지 제약회사로부터 ‘선물’을 받는 것을 금지하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김영란법’ 도입 이후 이런 것들이 그래도 꽤 사라진 것 같다. 영리 추구가 목적인 기업의 사주를 받은 과학은 더 이상 객관적이지도 ‘과학적’이지도 않다. 나아가 이들은 과학의 탈을 쓰고 합법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죽게 할 수 있다. 과학의 영역 중에서도 의학은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으며 인간의 생명에 매우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병원은 병원을 믿고 자신의 몸을 기꺼이 맡긴 환자들에게 최선의 치료를 해주는 곳이 되어야 한다. 의료와 영리는 절대 양립할 수 없는 단어다.
<최원영 ‘행동하는 간호사회’ 간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