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수의 포항 땅 이야기> 펴낸 이석수씨 “지명 사라지면 우리 문화 없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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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는 저마다 이름이 있다. 고유한 ‘지명’이 생긴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생김새나 쓰임에 따라, 혹은 옛이야기를 토대로 만들어진다. 예부터 전해진 지명은 땅의 역사를 축약해 전해주는 역할을 했다.

[주목! 이 사람]<이석수의 포항 땅 이야기> 펴낸 이석수씨 “지명 사라지면 우리 문화 없어져”

시대가 변했다. 공장이 들어오고 아파트가 들어왔다. 사람들은 새로 생긴 건물과 도로를 중심으로 땅을 부르기 시작했다. 지명은 잊혀진 이름이 됐다. 이석수씨(87)는 사라지는 지명이 못내 안타까웠다. 적어도 이씨 자신의 고향, 포항의 지명만이라도 살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공직생활을 하는 틈틈이 지명과 관련된 자료를 모으고 땅과 연관된 이야기를 찾아다녔다. 작업이 고되어서 중간중간 손을 놓기도 했다. 작업을 마무리짓는 데 30년이 걸렸다. 공신력을 갖기 위해 관련기관과 협회를 통해 내용을 확인했다. 28권의 책을 참고해 대조작업도 벌였다.

지난한 작업의 결과물이 지난해 나온 책 <이석수의 포항 땅 이야기>이다. “지명이 없어지면 우리가 지켜온 문화가 없어지는 거예요. 조상들의 생활상도 볼 수 없게 되죠. 이렇게 땅 이름이 사라져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0년 동안 세 번 포기하고 또다시 도전해서 만든 책이에요.”

책은 모두 자비를 들여 출판했다. 포항 지역 도서관이나 학교, 관공서에는 무상으로 책을 기부했다. 자신의 책이 지역에 꼭 필요한 ‘사전’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1963년 영일군 면서기로 공직생활을 시작한 이씨는 이후 35년여간의 공직생활 대부분을 건설부에서 보냈다. 지명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던 것도 이른바 ‘건설통’이었던 덕이다. “건설부 원주지방국토관리청장을 거쳐 경상북도 정무부지사까지 했어요. 9급에서 시작해 1급 공무원 자리까지 올랐던 겁니다. 긴 세월 동안 저는 국토가 개발되고 변하는 과정의 한가운데 있었어요. 땅에 대한 지식, 개발에 대한 노하우도 그때 갖게 됐죠.”

개발전문가로 불리는 이씨의 개발철학은 ‘섣불리 땅을 헤집지 말라’는 것이다. 확고한 개발 마인드 없이 이뤄지는 개발은 오히려 한 지역의 장래를 송두리째 망쳐버릴 수 있다는 게 이씨의 생각이다. 이씨는 “특히 지방자치단체에서 추진하는 지역개발은 적당히 했다가는 엄청난 비용의 손실이 초래된다”며 “지자체장의 개발에 대한 마인드와 역량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씨가 지역 개발에 관심을 쏟는 이유는 고향에 남다른 열정이 있기 때문이다. 고향 땅에 대한 기록을 자서전 삼아 남긴 이유도 마찬가지다. 포항 사람 누구나 자신이 쓴 책을 통해 ‘고향’을 다시 한 번 생각하길 바라는 마음에 책을 썼다. 자신이 살고 있거나 살았던 땅의 유래를 아는 것만으로도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긴다고 믿는다.

“제가 만든 책은 적어도 포항 사람들이라면 버리지 않을 책이에요. 어떤 사람들은 내게 ‘이 책을 족보와 같이 놓겠다’고 하더군요. 나 개인의 삶을 돌아봤을 때 이 책을 쓴 것만큼 값 나가고 의미있는 일은 없었습니다.”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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