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블랙-‘신화’가 될 뻔한 박근혜 정권 탄생의 흑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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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 쪽은 경제민주화 공약만이 아니라 ‘촛불’도 도둑맞은 셈이라고 감독은 영화를 통해 말하고 있다.

제목 더 블랙(The Black)

감독 이마리오

프로듀서 이상욱

출연 박주민, 김창일, 안근영, 이상훈, 전직검사 X(김중기 분)

개봉 2018년 9월 13일

상영시간 68분

관람등급 전체관람가

아나레스, 이달투

아나레스, 이달투

그를 다시 만난 곳은 정권이 바뀌고 난 뒤, 경북 성주 소성리였다. 다큐를 찍는 것은 아니고 그냥 돕고 있다고 했다. 이마리오 감독. 그와 그의 작업에 대해 <주간경향>의 ‘주목! 이 사람’ 코너에서 소개했었다. 당시 작업명은 ‘메멘토모리’(죽음을 기억하라)였다. 누구의? 이남종씨다. 1973년 광주 출생. 조선대 영어영문학과 졸업.

영화는 감독이 강원도 시골에 낙향해 있다가 우연히 라디오에서 들은 이씨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로부터 시작한다. 전혀 면식이 없던 사람이었다. 감독이 의아해했던 것은 대통령 선거 부정을 이야기하며 분신한 이씨의 죽음은 분명 사회적 자살인데도 거의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경찰은 보도자료에 이씨가 신용불량자였고, 직업이 불분명한 백수 상태라고 기재했다. 사회낙오자의 비관자살쯤으로 포장됐다.

故 이남종씨가 분노했던 것은

감독은 그가 분노했던 그 사건, 국정원 대선 댓글조작사건을 추적했다. 감독이 기자를 찾아온 시점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벌어지고, 주말마다 광화문에서 대규모 촛불시위가 벌어지던 때였다. 감독의 말이 인상 깊게 뇌리에 남아있다. 누군가는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기록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맞다. 이남종씨의 49재 행사 후 이번에는 기자가 과거에 취재했던 한 ‘촛불시민’이 서울역 그 고가다리에 올라섰다. 싸울아비라는 닉네임으로 다음 아고라에서 활동하던 김창건씨였다. 그가 불을 댕긴 경위는 의혹의 대상이었다. 이남종씨의 분신자살을 기억하는 경찰특공대가 김씨를 덮쳤고, 그 와중에 그가 지니고 있던 번개탄에 불이 붙었고, 몸에 옮겨 붙었다.

기자와 인터뷰할 당시 감독이 설정한 영화의 개봉시한은 2017년 4월이었다. 그 시점을 넘어가면 선거법 위반이기 때문이라고 감독은 설명했다. 역사는 일정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12월에 예정되어 있던 대선은 믿기지 않게도 8대 0 탄핵으로 5월로 당겨졌고, 영화는 애초에 정한 시한을 훨씬 넘겨 이제야 공개되었다. 이 감독의 영화에 대한 이야기는 그 후로도 전혀 엉뚱한 곳에서 종종 들었다. 영화가 끝난 뒤 올라간 자막에 언급되어 있는 ‘도움을 주신 분들’ 명단에서 기억은 고스란히 되살아났다.

여러 모로 아쉬움은 남는다. 국정원 댓글사건 청문회를 보면서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 장면은 당시 수서경찰서 형사과장이었던 권은희씨-현재는 국회의원이다-의 증언에 대해, 마치 왜 저렇게 분란을 일으키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부인하던 동료 경찰들의 표정이었다. 당시 권 과장이 변호사 특채 출신 경찰 간부라서 자신들과는 가는 길이 다르다고 생각했을까. 영화에서 사건의 전모는 당시 검찰 특별수사팀의 멤버로, 옷 벗은 한 검사의 수사 후일담으로 대체된다. 그 수사 후일담조차도 배우의 대역연기로 갈음된다. 국정원 댓글사건의 중심인물이었던 김하영 스토리는 그녀의 경찰대 출신 경찰 애인, 그리고 당일까지 그 오피스텔에 들락거렸던 그녀의 상관과 민간인 조력자, 그리고 이들과 학맥으로 이어진 정치권 인사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하다만 느낌이다. 새로 붙인 영화 제목 ‘더 블랙’은 이들의 신분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국정원 심리전단 블랙요원이라는 이들의 신분에 막혀 ‘기록’은 더 진전될 수 없었던 것일까.

도둑맞은 2012년 대선

영화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2012년 박근혜 후보의 선거CF 영상의 인용이었다. 2006년, 이른바 면도칼 테러로 남은 얼굴의 흉터조차 2012년 박근혜 후보는 선거운동의 수단으로 활용했다. 아이들, 그리고 아이들의 엄마가 촛불을 들고 그녀의 안녕을 빌고 있었다. 그녀의 반대진영, 그러니까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 쪽은 경제민주화 공약만이 아니라 ‘촛불’도 도둑맞은 셈이라고 감독은 영화를 통해 말하고 있다. 물론, 2012년 대선이 ‘도둑맞은 대선’이라고 했을 때 미묘한 지점이 있다. 그해 대선이 끝난 뒤 매주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 나오던 사람들을 기억하고 있다. 이씨의 죽음을 추모하며 서울역에 모이던 분들도. 박근혜의 51.6% 득표에는 선관위가 개입된 광범위한 개표부정이 있었다는 주장이다.

개인적으로 거기까지는 아니라고 봤다. 이남종씨의 죽음에 대해 감독이 가지고 있던 의문, 이 분노와 무기력의 정체는 무엇일까라는 것에 대해 감독을 만났을 때 나름으로 생각하고 있던 답과 우려를 전했다. 만들어진 결과물을 보니 감독의 의문은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과거가 햇볕에 바래면 역사가 되고, 달빛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고 했던가.(소설가 이병주씨의 말) 보수정권 10년의 ‘흑역사’ 중 아직 어둠에 묻혀 있는 이야기는 많다. 신화조차 못된 채.

이남종씨의 분신, 그 후 탄핵 촛불

2013년 12월, 이남종씨가 분신하며 남겼던 유서의 일부. | 이남종열사정신계승사업회

2013년 12월, 이남종씨가 분신하며 남겼던 유서의 일부. | 이남종열사정신계승사업회

이남종씨의 분신은 영화에 등장한 그의 지인들이 토로하는 것처럼 그 어떤 부채의식을 불러일으켰다. 작으나마 단체도 만들어졌다. 횃불시민연대. ‘촛불이 아니라 이젠 횃불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추모기념사업회도 만들어졌다. 그 단체는 어떻게 되었을까. 기억을 더듬어 온라인 카페에 들어갔다. 활동은 박근혜 탄핵과 더불어 종료되었다. 해단식 사진이 올라 있었다. 그 중 몇몇은 아는 얼굴이다. 국정농단 국면엔 회사에 찾아와 중요한 제보를 한 사람도 있다.

역사사회학자 로버트 단턴에 따르면 흔한 믿음처럼 프랑스 혁명의 사상적 기원은 계몽사상이 아니라 듣기에도 생소한 메스머리즘, 포르노 소설 따위였다. 프랑스 혁명의 실질적인 지도자들은 생체자기주의 정도로 번역될 수 있는 메스머리즘의 신봉자였다. 유사과학적 주장이었지만 당시는 최신의 과학이론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정부가 금하고 있는 포르노 팸플릿도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계몽사상은 이 인민 봉기를 사후적으로 정당화하면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촛불혁명’ 전후로 기자가 만난 ‘촛불시민’들의 주장엔 황당한 음모론도 섞여 있었다. 정식으로 활자화되지는 않았지만 ‘최태민 부활을 위한 세월호 인신공양설’과 같은 괴담도 광화문 공식행사가 끝나면 인근의 술집에 흩어진 시민들의 뒤풀이 안줏거리였다.

분명, 이런 사정 역시 촛불혁명의 역사를 기록하는 데 빠지지 않아야 할 ‘신화’다. 그렇다고 실제의 역사적 사실을 폄훼하는 수단이 된다면 곤란하다. 그건 기득권 보수가 즐겨 사용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가까이는 2008년 촛불시위는 광우병 괴담 ‘선동’이 일으켰고, 80년 5월 광주는 불순분자의 유언비어에 속은 시민들의 과격시위 때문에 일어났다는 식의 이야기 말이다. 이남종씨의 분신에 대한 경찰 보도자료도 마찬가지다. 아니, 신용불량자는 사회문제나 정치현실에 분노할 자격조차 없다는 것일까. 돌이켜 생각해보면 정말 어이없는 일이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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