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치-인터넷·CCTV 뿐인 새 ‘영화문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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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사는 한국계 가족. PC 화면과 CCTV, 인터넷커뮤니케이션이 진행되는 장면만으로 영화를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니! 전형적인 서스펜스 스릴러다. 귀에 익은 통화연결음. 관객들은 큰 문제가 생겼음을 눈치챈다.

제목 서치

원제 Searching

감독 아니쉬 차간티

주연 존 조, 데브라 메싱, 조셉 리 외

러닝타임 101분

개봉 2018년 8월 29일

관람등급 12세 관람가

소니픽처스

소니픽처스

옆좌석에 앉은 젊은 흑인 친구는 이륙한 지 한참 뒤까지 휴대폰을 놓지 않았다. 좁은 기내창을 배경으로 인증 셀카를 인스타그램에 막 올린 참이었다. 곁눈질로 살짝 봤다. “OoooooA!”라는 감탄사를 입으로 내는 대신 그 조그만 휴대폰 창에 손가락을 놀려 써놓았다. 약 2시간이 지나고 다른 공항에 비행기가 도착하자 이 친구가 제일 먼저 한 일은 다시 인스타그램에 접속한 일이었다. 그의 인터넷 친구들이 주렁주렁 품평을 달아놓은 것을 미소 띤 얼굴로 보다가 히죽히죽 웃곤 했다.

지난주 지구 반대편 브라질 출장에서 겪은 일이다. 비록 그 청년과 나는 한 공간에 있었지만 커뮤니케이션은 각자의 친구들과 따로 하고 있었다. 비행기에서만이 아니었다. 어딜 가든 마찬가지였다. 틈만 나면 사람들의 시선이 쏠리는 곳은 휴대폰이다. 나도 그렇지만 그의 세상과 네트워크는 각각 따로, 휴대폰 속에 존재했다.

텀블러·구글·페이스북 모두가 체크 대상

<서치>를 보는 것은 놀라운 경험이었다. 사전에 영화에 대한 정보를 전혀 읽지 않고 시사회에 참석했다. 공동으로 쓰는 PC 접속화면으로 보여주는 한 가족의 역사. 미국에 사는 한국계 가족이다. 71년생 엄마는 암으로 죽고 아버지와 딸만 남는다. 그저 오프닝시퀀스인 줄 알았다. 그런데 쭉 이어진다! PC 화면과 CCTV, 인터넷커뮤니케이션이 진행되는 장면만으로 영화를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니! 영화의 스토리는 전형적인 서스펜스 스릴러다. 심야에 아버지에게 걸려오는 딸의 전화. 귀에 익은 통화연결음이다. 아이폰이 제공하는 그 소리. 통화가 안 되자 이번에는 페이스타임 전화창이 화면에 뜬다.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딸의 신상에 뭔가 큰 문제가 생겼음을 눈치챈다.

딸이 실종된 뒤, 아버지는 PC에 남겨진 단서로 딸의 행방을 추적한다. 텀블러의 사진, 구글 위치추적, 페이스북 포스팅 모두가 체크 대상이다. 이들이 사는 지역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다. 실리콘밸리다. 미국 굴지의 IT기업 본사가 거기 있다. 아버지의 직업이 자연스레 유추된다. 거기서 살아남는 데 성공한 IT개발자다. 당연, 아버지 데이빗은 인터넷문화나 최신 커뮤니케이션 수단에 통달해 있다. 딸 수사를 담당하는 여형사가 ‘배정’되자 페이스북과 지역언론 보도, 구글링을 통해 평판 조회를 하는 게 물 마시듯 자연스럽다.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에스닉적 배경은 실리콘밸리의 동료들과 다르게 가정을 중시하는 보수적 스타일이라는 것을 예상하게 한다(실제 실리콘밸리의 문화는 마약이나 프리섹스에 매우 관대하다).

2~3년 전쯤인가, 미국의 10대·20대가 페이스북을 떠난다는 트렌드 보도가 있었다. 그럴 만도 한 게, 또래 친구들과 소통 네트워크에 불쑥불쑥 끼어드는 부모나 학교 교사의 ‘친구신청’이 아마 처치 곤란했기 때문이다. 그때 청소년들이 대거 이동한 곳은 스냅챗이었다. 스냅챗의 특징은 대화내용이 일정시간이 되면 자동 폭파된다는 것이다. 결국 페이스북도 고육지책으로 24시간 동안 노출되는 ‘스토리’를 도입했지만 그렇다고 한 번 떠난 젊은 사용자들이 돌아왔을지는 모르겠다.

PC에서 딸 마곳의 흔적을 찾던 아버지는 그렇게 다른 플랫폼 속에서 개인방송을 했던 딸의 흔적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15년 동안 한 공간에서 살았건만 전혀 눈치채지 못했던 그녀의 고민, 우울하면 가곤 하는 새너제이 인근의 혼자만의 장소, 그리고 SNS를 통해 맺어진 익명의 친구들을 발견한다. 그녀의 실종엔 그 장소와 친구들이 관련이 있었던 것일까.

스토리를 엮는 또 하나의 공통점 ‘미디어’

앞서 영화의 스토리가 PC와 CCTV 인터넷을 통해 전개된다고 했는데 더 중요한 것이 하나 더 있다. 미디어다. 그녀의 실종은 지역매체의 뜨거운 관심이 된다. 동시에 시공간을 초월한 인터넷에서도 마찬가지다. 유튜버들은 그녀의 실종에 눈물짓는다든가, 기존 정보를 업계 용어로 ‘우라까이’해서 보여주는 것으로 ‘좋아요’를 모으고 수익을 얻는다. 레딧에는 실종괴담이 올라가고, 전문가들의 추론을 불신하는 아마추어 탐정들이 대안적인 가설을 내세우고 있다. 모든 스토리가 전개되는 무대는 미디어와 착종된 인터넷이다.

이 ‘아마추어 전문가’에는 그녀의 아버지 역시 포함된다. 형사가 놓친 단서를 통해 그는 독자적 추리를 전개하고 일정한 부분에서는 공식 시스템의 탐사능력을 뛰어넘는다. 그리고 인터넷을 활용한 그의 수사는 은폐하려는 체계의 틈을 파고들어 마침내 사건의 진실을 드러내게 한다. 그리고 이건 수천 년 동안 인류가 축적한 ‘놀라운 이야기’에서 익숙한 스토리 전개다. 어쨌든 <서치>는 지금까지 거의 보지 못했던 독특한 스토리텔링 기법 또는 영화문법을 도입했고, 성공했다. 영화사에 기록될 기념비적 사건이다. 영화가 담고 있는 현대사회의 커뮤니케이션의 변화, 세태에 대한 풍자는 별도로 리뷰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추천할 만한 영화다.

<서치> 이후… 장르적 한계 넘을 수 있을까

이른바 ‘파운드 푸티지’ 물의 기원이 된 영화 <블레어위치 프로젝트>의 포스터.

이른바 ‘파운드 푸티지’ 물의 기원이 된 영화 <블레어위치 프로젝트>의 포스터.

<서치>의 감독 아니쉬 차간티라는 이름이 낯설지 않아 보도자료를 보니 구글 글래스 단편영화 <시드>를 만든 친구다. 지금도 비메오 등에서 볼 수 있는 2분짜리 영화다. 말하자면 영화 <서치>는 이 아이디어의 확장판으로 그의 장편영화 데뷔작이다.

새로운 영화문법을 쓴 장르적 혁신은 약 10년 전에도 일어났다. 바로 <블레어위치 프로젝트>(1999·다니엘 뮈릭, 에두아르도 산체스 감독)다. 영화의 두 감독은 이 영화가 담고 있는 내용은 ‘진짜’이며, 영화는 미국 매릴랜드주 버키츠빌에서 실제 실종된 젊은이들이 남긴 필름을 편집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물론 진짜, 아니다. 이후 만들어진 유사한 성격의 영화들은 모큐멘타리 등의 이름이 붙여지다가 10여년이 지난 지금은 ‘파운드푸티지’라는 장르 이름으로 굳어지고 있다. <파라노멀 액티비티>(2007), <클로버필드>(2008), <아폴로18>(2011) 등의 작품이 대표적이다.

이들 영화목록을 보면 뭔가 유사점을 못 느끼겠는가. 맞다. 주로 공포-스릴러 장르다. 촬영자는 어떤 이유로 행방불명이 되었거나 더 이상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인데, 그들에게 그 불행을 안겨준 ‘사건’의 진실을 담은 필름을 공개한다는 형식이다. 역설적으로 그러기 때문에 담을 수 있는 내용도 한계지어진다. 물론, 이 계열영화의 형식실험이 계속된다면 지금까지 없던 장르가 앞으로 개척될 수도 있을 것이다.

<서치>는 어떨까. 영화를 보면서 떠오르는 건 ‘분명 기발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장르가 탄생한 것이지만, 과연 아니쉬 차간티 감독은 이 재기발랄한 첫 영화를 넘어서는 영화적 혁신을 이룰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었다. ‘원히트 원더’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다. <서치> 이후에 나올 비슷한 장르의 영화도 애초의 착상이 그어놓은 장르적 한계를 탈출하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 <블레어위치 프로젝트>의 두 감독들 자신이나, 이후의 파운드 푸티지 장르 영화들도 마찬가지였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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