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태연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장 “노동자와 싸우면 대기업만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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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 이 사람]인태연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장 “노동자와 싸우면 대기업만 좋아”

인태연씨(55)가 인천 부평에서 장사를 시작한 건 1989년이었다. 10년쯤 지나자 인씨 점포가 있던 곳은 ‘부평 문화의 거리’라는 이름이 붙었다. 지금껏 인씨는 문화의 거리를 떠나지 않고 물건을 팔고 있다. 처음엔 그릇을 팔았고 지금은 옷을 판다. 경기가 좋을 때도 그렇지 않을 때도 그는 줄곧 한자리를 지키며 장사를 했다.

매장에서는 친절한 ‘사장님’이지만 거리에서 목소리를 낼 때는 불친절한 싸움꾼이다.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장. 인태연씨의 또다른 직함이다. 인씨는 최저임금 인상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소장파’ 자영업자다. 많은 자영업자들이 ‘최저임금 인상’으로 상인들의 생존권 박탈을 운운할 때 인씨는 최저임금 인상이야말로 모두가 살 수 있는 길이라고 말한다. 인씨는 “우리 물건 사주는 손님 대부분이 중하층 서민과 노동자들”이라며 “그분들 상대로 장사하는데, 그분들 최저임금 반대하면 잠재고객들의 주머니 채워지는 걸 반대한다는 얘기다. 그렇게 해서 그분들에게 우리 물건을 사달라고 할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 지금 자신은 장사를 하고 있지만 취업할 당신 자식들을 생각해서라도 노동자 임금이 좋아지는 걸 반대할 수 없다는 게 인씨의 생각이다.

인씨는 자영업자들이 힘든 이유를 최저임금이나 카드수수료처럼 개별 사안으로 좁혀 봐서는 안된다는 입장이다. 중소자영업자의 살림살이는 최저임금 인상 폭이 높지 않았을 때도 팍팍했다. 최저임금으로 노동자와 중소자영업자가 싸우면 결국 득을 보는 건 대기업, 특히 대형 유통 재벌들이라고 생각한다. “대기업이 자기들 곳간 채우기 위해서 우리 같은 중소자영업자들과 노동자들이 싸우게 만들고 있다”며 “최저임금 인상에 갇혀서 두 집단이 싸우면 적은 시급으로 노동자를 이용하는 기업만 웃게 만들어 주는 셈”이라고 말했다.

인씨가 보기에 최저임금을 올려주기 힘든 이 지경까지 온 가장 큰 이유는 ‘대형 유통 재벌’들의 시장 파괴 때문이다. 해외 사업에서 실패한 대형 유통 업체들이 국내에서 밥그릇 싸움을 하면서 중소 자영업자들이 피해를 떠안고 있다는 얘기다. 대기업이 대형 마트와 프랜차이즈 가맹사업으로 자영업자 영역을 침범하면서 문제가 생긴 것으로 보고 있다. “카드 수수료 낮추고 임대료 낮추고 다 좋다. 하지만 장사가 안되면 말짱 도루묵이다. 손님이 없으면 수수료 낮추고 임대료를 거저로 해도 안된다. 청년창업자들을 보라. 수수료, 임대료 지원해주는데도 다 망하고 있지 않나.”

인씨가 자영업자의 삶에 대해 고민하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건 지난 2006년부터다. 대형마트가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대기업들이 중소자영업자 시장을 다 빼앗을 것 같다는 위기의식을 갖게 됐다. 당시 인씨는 4%대 카드수수료를 내고 있었는데, 대형마트 수수료가 1.8%에 불과하는 소식을 듣고 뭔가 한참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카드 수수료 인하를 내걸고 싸움을 시작했고, 대형마트 규제라는 나름의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인씨는 “우리가 저항하지 않으면 누구도 저항할 수 없는 상황이 오기 때문에 거리에 나선다”며 “중소자영업자를 경제를 이끄는 주체가 아니라 대상으로 보는 사회적인 인식이 무척 안타깝다”고 말했다.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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