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백야의 라마단에는 언제 식사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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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법학자들은 “해가 지지 않는 지역에서 라마단을 맞은 무슬림들은 메카의 시간을 따르거나 주변에서 가장 가까운 해가 지는 지역의 시간을 따라 단식을 풀어도 좋다”고 유권해석을 내려 두었다.

지난 6월 21일은 올해 낮이 가장 긴 날, 하지(夏至)였다. 북반구에서 태양이 가장 높이 남중하는 날이기도 하다. 현대인들은 계절의 감각을 잊고 살기 쉽지만 하지와 동지는 계절의 전환점이 되는 중요한 날이다. 특히 위도가 높은 지역일수록 햇빛이 비스듬히 들어오고 여름과 겨울의 차이가 크기 때문에 그곳에 살아온 사람들은 하지와 동지에도 더 많이 신경을 썼고 그 절기들을 기념하는 풍속을 발전시켜 왔다.

한 이란 여성이 라마단 기간에 코란을 머리에 얹고 기도를 하는 모습. / AP연합뉴스

한 이란 여성이 라마단 기간에 코란을 머리에 얹고 기도를 하는 모습. / AP연합뉴스

현대사회에서는 과거에 예상치 못했던 흥미로운 일들이 생기곤 한다. 이슬람의 성스러운 달인 ‘라마단’에는 건강상 보호 받아야 하는 이들을 빼고는 모든 무슬림들이 엄격한 단식의 의무를 진다. 한 달 동안 해가 뜰 때부터 질 때까지 물 한 모금도 입에 대지 않으면서 기도와 명상 등으로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다. 그런데 이 ‘해가 뜰 때부터 질 때까지’라는 규정이 지역에 따라 큰 차이를 낳기도 한다. 위도가 높아지면 계절에 따른 밤낮의 길이 차이도 커지기 때문에 실제로 금식해야 하는 시간도 눈에 띄게 달라진다.

태양력과 태음력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대략 계산해 보면, 올해 라마단의 마지막 밤이 되었을 6월 13일에 사우디아라비아 메카(북위 21도)의 낮 길이는 약 13시간 26분으로 밤에 비해 그다지 길지 않다. 이에 비해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북위 60도)는 같은 날 낮 길이가 18시간 45분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이름을 들어 보았을 도시 중 아마도 가장 북쪽에 있을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북위 64도)에서는 해가 새벽 2시 59분에 떠서 밤 11시 57분에 졌다. 순수한 낮만 21시간이고, 나머지 3시간도 여명이 남아있다. 캄캄한 밤은 전혀 없는 문자 그대로 흰 밤, 백야(白夜)의 계절이다.

물론 이슬람 법학자들은 이에 대해 “해가 지지 않는 지역에서 라마단을 맞은 무슬림들은 메카의 시간을 따르거나 주변에 가장 가까운 해가 지는 지역의 시간을 따라 단식을 풀어도 좋다”고 유권해석을 내려 두었다. 따라서 백야 지대의 무슬림들이 며칠씩 굶는 일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고위도 지역 무슬림들의 단식이 몇 시간씩 더 길어지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라마단이 어떤 계절에 돌아오는지가 해마다 달라진다는 사실이다. ‘백야의 라마단’ 같은 골치 아픈 상황이 매년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쓰는 태양력을 기준으로 따지면, 라마단은 매년 10일 정도 빨라진다. 2018년의 라마단은 5월 16일에 시작하여 6월 14일에 끝나지만, 2019년에는 5월 6일에 시작하고, 2026년에는 2월 18일에 시작하여 대략 한 철 정도 이르게 돌아온다. 약 33년이 지나면 한 바퀴 돌아 비슷한 양력 날짜에 시작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라마단의 (양력) 날짜가 매년 바뀌는 것은 이슬람 문명에서는 달의 움직임으로만 날짜를 계산하는 ‘순태음력’을 써 왔기 때문이다. 달이 차고 기우는 데 태양일로 약 29.5일이 걸리므로, 태음력에서는 29일과 30일을 번갈아 배열하여 열두 번의 음력 달(삭망월)을 1년으로 삼는다. 즉 순태음력의 1년은 열두 번의 삭망월, 즉 약 354일이다. 이것은 365.2425일이 1년이 되는 오늘날의 태양력과는 매년 10일 남짓 차이가 나므로, 8년에서 9년이 지나면 라마단은 다른 계절에 돌아오게 된다.

마음을 열면 선입견은 사라진다

오늘날처럼 온 나라와 온 세계가 정보를 바로바로 주고받지 않았던 시절, 한 자리에 뿌리 내리고 사는 이들에게는 태음력이 더 편했다. 달의 모양만 보면 날짜를 바로 알 수 있었고 밀물과 썰물의 때도 달을 보아야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계절의 변화가 심한 지역에서는 달만 보고 날짜를 따져서는 농사의 때를 놓칠 수 있으므로, 24절기와 같이 태양의 위치를 알려주는 날들을 따로 표시해 두었다. 흔히 한국의 전통 달력이 음력이라고 하는데, 사실은 음력과 양력을 절충한 형태다. 달의 움직임을 기반으로 삼고 해의 움직임도 표시하는 이와 같은 달력을 ‘태음태양력’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문명에서는 해와 달의 움직임을 모두 고려했으므로 순태음력은 세계 문명사에서는 특이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순태음력을 고수할 경우 계절의 변화와 어긋나는 것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태음력을 사용했던 문명들도 이 때문에 약 3년에 한 번(정확히는 19년에 7번) 윤달을 넣어 한 해의 길이를 조정해 주었다. 하지만 이슬람의 첫 지도자 무함마드는 윤달을 없애고 순태음력을 사용하기로 결정했고, 그 초창기의 결정을 이슬람 문명 전체가 충실히 따라 온 결과 오늘날까지도 20억명 가까운 전세계의 무슬림들이 이슬람력을 지키고 있다.

이슬람 문명 바깥의 사람들은 종종 라마단과 이슬람력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인다. 세계화 시대에 독특한 달력을 고수하여 매번 변환표를 들여다보아야 하는 일도 번거롭고, 단식을 여름에 했다가 겨울에 했다가 하는 것도 혼란스럽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명은 총체적인 삶의 방식이므로 한두 가지 요소만 떼어서 평가할 수 없다. 태양력에 익숙한 이들은 순태음력이 심지어 ‘비과학적’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이슬람의 천문학이 과거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했고 유럽과 중국에서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는 점을 돌이켜보면 그런 평가는 부당하다.

그리고 언론에서 극단주의자들만 부각하여 보도하는 것과는 달리, 20억 무슬림 가운데 절대다수는 교리가 생활을 과도하게 간섭하는 것에 반대하고 융통성 있게 살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라마단의 금식도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기 위한 것이지 자신을 괴롭히기 위한 것이 아니므로, 각자의 처지에 맞게 지키면 되는 일이다.

이슬람이 이렇다거나 무슬림이 저렇다거나, 우리가 막연하게 가져 온 선입견이야말로 비과학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위험하다, 무섭다, 다르다, 불편하다 손가락질하기 전에 내가 갖고 있는 선입견은 언제, 어떤 계기로, 누구의 영향을 받아 내 안에 똬리를 틀게 된 것인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만나본 적도 없는 이들을 미워하고 겪어본 적이 없는 문화를 폄하하다니, 기이한 일이 아닌가? 중동 출신의 한 위대한 성인이 갈파했듯, 남의 눈 속의 티끌을 열심히 찾는 내 눈 속에 사실은 들보가 끼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김태호 전북대 한국과학문명학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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