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와 우유를 권장하면 국민들이 키가 쑥쑥 커져서 서양인과 어깨를 나란히 하리라는 정치지도자들의 바람과는 달리, 하루아침에 식단을 바꾼 동아시아의 민중들은 소화불량과 배탈 등 여러 가지 문제를 호소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보기 어렵게 된 풍속 가운데 ‘우량아 선발대회’라는 행사가 있다. 분유회사가 후원하던 대회였는데, 덩치 큰 유아들을 선발해 상품을 주고, 아이들을 자기 회사 분유의 모델로 쓰기도 했다. 뒷날 모유의 가치를 재평가하게 되고 아이나 어른이나 덩치가 큰 것보다는 균형 잡힌 몸매를 선호하게 되면서 이 대회도 슬그머니 사라져 갔지만 고도성장기에 어린 시절을 보냈거나 아이를 키웠던 이들은 많이들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서양인의 몸, 서양인의 음식
한국뿐 아니라 동아시아 여러 나라들에서 근대로 접어들면서 큰 신체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었다. 단순히 키가 큰 사람이 인기가 많다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 한 명 한 명의 신체가 크고 건장해야 국가가 주권을 지키며 근대화를 달성할 수 있다는 일종의 위기감 같은 것이 이들 나라에 만연했기 때문이다. 덩치 큰 서양인들이 크고 강력한 무기를 들고 나타난 새로운 시대를 맞아 동아시아 나라들은 각종 제도를 서양식으로 고치는 동시에 국민 개개인의 몸도 서구화 또는 근대화하고자 했다.
서양인의 몸을 갖기 위해 가장 먼저 시도해볼 수 있는 것은 서양음식을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1868년 메이지유신을 통해 서구화의 기틀을 닦은 일본은 ‘양식’을 받아들이는 데에도 가장 열성적이었다. 메이지 덴노(天皇)는 1872년 공식석상에서 고기요리를 먹음으로써 불교문화에 길들어 있던 일본인들에게 충격을 주었고, 그 이후 일본인들은 일종의 사명감을 갖고 고기와 우유를 열심히 먹기 시작했다. 스키야키를 비롯해 고로케, 카레라이스, 함박스테이크, 돈가스 등 일식풍을 가미해 고기를 먹는 다양한 방법이 개발됐다.
우유도 근대화를 위해 숙제처럼 마셔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낙농업을 진흥하고 우유 소비를 촉진하는 것은 국민 개인의 건강을 위한 일일 뿐 아니라 20세기 초 일본의 홋카이도나 20세기 중반 한국의 강원도처럼 상대적으로 낙후한 지역의 경제를 발전시키는 일로도 여겨졌다. 일본의 홋카이도청 장관 미야오 지(宮尾舜治)는 1921년 “홋카이도를 일본의 덴마크로 만들 것”이라고 주장했고, 우유는 일본 전역에 공급되어 학교의 의무급식으로 소비됐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문제가 불거졌다. 고기와 우유를 권장하면 국민들이 키가 쑥쑥 커져서 서양인과 어깨를 나란히 하리라는 정치지도자들의 바람과는 달리, 하루아침에 식단을 바꾼 동아시아의 민중들은 소화불량과 배탈 등 여러 가지 문제를 호소하기 시작했다. 애써 비싼 돈을 내고 고기와 유제품을 열심히 사먹었건만 소화가 잘 되지 않다니 이런 아까운 일이 어디 있는가?
속이 더부룩하고 소화가 잘 안 되는 느낌이 들거나 신트림이 자주 나는 따위 증상은 실은 의학적으로는 특정한 질환이라고 규정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이런 증상을 호소하는 환자들이 많기 때문에 이들 증상을 ‘기능성 위장장애’라고 통칭하기도 한다. 다시 말해 기능성 위장장애란 의사가 보기에는 위나 장에 특별한 이상이 없지만 환자가 느끼기에는 음식물을 소화하는 능력이 떨어진 상태라고 대략 설명할 수 있다.
몸이라는 기계의 엔진을 청소하자?
바라던 만큼 고기와 유제품을 소화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된 이들은 이를 설명하고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다. 그 결과 20세기 초반 일본과 뒤이어 20세기 중반 한국에서 장(腸) 관련 제품의 시장이 크게 열리게 됐다.
왜 장인가? 몸을 자동차에 비유하면, 음식물은 가솔린이고 위와 장은 그 연료를 태워 에너지를 얻는 엔진이다. 양질의 원료를 넣는 것도 중요하지만 엔진에 기름때와 찌꺼기가 끼어 있으면 질 좋은 휘발유를 넣어도 제 몫을 다하지 못한다. 따라서 자동차 연료에 엔진을 세척해 주는 첨가제를 넣듯 위와 장의 활동을 돕고 노폐물을 제거해 주는 보조제를 먹으면 애써 먹은 고기와 우유의 효율을 높일 수 있으리라는 것이 동아시아 사람들이 근대의학과 생리학을 받아들인 뒤 하게 된 생각이다.
이런 생각의 연장선상에서 출현한 것이 ‘소화제’ 또는 ‘위장약’이라는 범주의 약품이다. 물론 소화를 돕는 약품이 다른 나라에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동아시아 바깥에서는 이들 약품을 대체로 ‘제산제’라든가 ‘가스제거제’와 같이 구체적인 작용에 따라 분류하고 있는 데 비해, 동아시아에서는 위와 장에 여러 가지 다른 작용을 하는 약품을 효과에 따라 뭉뚱그려 소화제라고 부르는 것은 흥미로운 차이점이다. 오늘날 일본과 한국 등 동아시아의 약국에는 다른 지역 사람들이 보면 놀랄 만큼 많은 종류의 소화제가 진열되어 있고, 그 소비량도 높은 편이다.
이 맥락에서 소화제 못지않게 중요한 범주의 약품이 ‘정장제(整腸劑)’일 것이다. 장을 깨끗이 해야 하는 이유는 위에서 설명한 대로다. 정장제는 소극적으로는 설사를 막는 것에서부터 적극적으로는 장 속의 노폐물을 비우고 새로운 영양분을 흡수하기 좋은 상태로 만드는 것까지 여러 가지 역할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 또한 구체적인 작용보다는 결과적인 효과에 따른 분류이므로, 정장제도 식이섬유나 효모 등등 여러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약은 아니지만 정장제로 동아시아에 소개된 것 중 가장 성공한 제품은 실은 유산균이다. 동아시아 인구의 대다수가 생우유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발효유가 대안으로 떠올랐다. 러시아의 생리학자 일리야 메치니코프(1845~1916)는 유산균이 인간의 노화를 늦추는 효과가 있다고 주장했고, 이에 주목한 일본인 과학자들은 중앙아시아의 유목민족을 찾아가 발효유의 제조기술을 배우고 그 특징을 연구했다.
그 결과 미야이리 치카지(宮入近治·1896~1963)는 일본인의 몸속에서 추출한 유산균주(菌株)를 분리하는 데 성공했고, 그것을 1933년 ‘미야리산’이라는 이름의 유산균 보충 식품으로 시판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시로타 미노루(代田稔·1899~1982)는 탈지분유와 당과 유산균 등을 혼합해 마시기 편한 새콤달콤한 음료를 만들고, 1935년 ‘야쿠르트’라는 이름으로 시장에 내놓았다. 미야리산과 야쿠르트는 일본뿐 아니라 아시아 전역에서 오늘날까지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결국 성장을 향한 욕구는 식생활의 변화를 추동했고 그것은 다시 소화제, 정장제, 유산균음료 등 20세기 전까지는 동아시아 사람들이 전혀 알지 못했던 제품들이 생산되고 소비되는 거대한 시장을 낳았다. 사실 우리는 무슨 물질이 우리 몸안에서 무슨 작용을 하는지 큰 관심이 없을지도 모른다. 우리를 이끌어 가는 것은 성장을 향한 욕망이고 우리는 반신반의하면서도 손해볼 것 없다는 마음으로 그 욕망에 기꺼이 돈을 투자할 뿐이다. 그것이 20세기 이후 형성된 동아시아 사람의 몸과, 그 몸을 형성하지만 동시에 그 몸에 의해 움직이는 마음이다.
<김태호 (전북대 한국과학문명학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