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인간이 고안한 ‘칼로리’, 인간을 지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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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개념을 적용하면, 우리의 몸은 기계와 다를 것이 없다. 대단히 복잡하고 정교하지만, 결국은 땔감(영양소)을 공급받아 그것을 운동 또는 열의 형태로 변환하여 각 기관에서 필요한 일을 하는 것이다.

프리츠 칸 ‘인체라는 산업 궁전’(1926). 1920년대 무렵이면 서구에서는 인간의 몸을 기계 또는 기계의 집합인 공장으로, 인간이 섭취하는 음식물을 그 기계를 돌리는 연료로 여기는 사고방식이 널리 퍼졌다. 칼로리 등 숫자로 음식의 영양가를 따지는 생각도 이때 확고하게 뿌리를 내렸다. / 위키피디아

프리츠 칸 ‘인체라는 산업 궁전’(1926). 1920년대 무렵이면 서구에서는 인간의 몸을 기계 또는 기계의 집합인 공장으로, 인간이 섭취하는 음식물을 그 기계를 돌리는 연료로 여기는 사고방식이 널리 퍼졌다. 칼로리 등 숫자로 음식의 영양가를 따지는 생각도 이때 확고하게 뿌리를 내렸다. / 위키피디아

인간은 먹어야 산다. 하지만 왜, 어떻게 그런가? 우리가 먹은 음식은 어떻게 우리 몸을 지탱하고 힘을 주는가? 이 당연해 보이는 일을 아귀가 잘 맞게 설명하기 위해 예로부터 수많은 현인들이 여러 가지 궁리를 했다. 고대 그리스의 갈레노스는 인간이 먹은 음식물이 정맥을 따라 간에서 ‘자연의 영’으로 바뀌고, 이것이 심장에서 깨끗한 공기와 만나 ‘생명의 영’이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동맥을 따라 뇌로 간 생명의 영은 다시 정화되어 ‘운동의 영’이 되고, 신경계를 따라 흐르며 우리 몸 각 부분에 명령을 내려준다는 것이다.

열과 에너지, 그리고 영양

한편 동아시아 전통의학에서는 인간이 음식을 먹으면 그 안에 담겨 있던 정(精)과 기(氣)가 우리 몸으로 들어오고, 그것을 토대로 혈액이나 진액 같은 물질적 구성 성분과 신(神) 등 비물질적 작용이 나타난다고 설명해 왔다. 동양이든 서양이든, 형체 있는 음식이 우리 몸 안에 들어가면 형체 없는 뭔가로 바뀌고, 거기에서 나오는 힘이 우리를 지탱해 준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다만 그것을 표현할 적절한 개념은 한참 뒤에야 예상치 못한 영역으로부터 등장했다.

건강이나 몸매에 신경을 쓰는 이들의 뇌리를 떠나지 않는 낱말 가운데 하나가 바로 ‘칼로리’일 것이다. ‘백미밥 한 공기는 280㎉, 콜라 한 캔은 130㎉…’ 등의 숫자를 외우다시피 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런데 이 숫자는 대체 어디서, 어떻게 나온 것일까?

‘칼로리(calorie)’라는 말은 라틴어로 열을 뜻하는 ‘칼로르(calor)’에 프랑스어 어미 ‘-ie’를 붙여 만든 낱말로, 오늘날 열의 단위로 쓰인다. 구체적으로는 1g의 물의 온도를 섭씨 1도 높일 만큼의 열을 뜻한다. 학교 수업시간에 칼로리라는 말은 물리학, 생물학, 체육, 가정·가사 등 여러 과목의 교과서에 뿔뿔이 흩어져 등장한다. 하지만 그 역사는 사실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칼로리라는 말이 생겨나기 전에 먼저 생겨난 말이 ‘칼로릭(caloric)’이다. 아마도 ‘열소(열의 원소)’라는 이름으로 번역할 수 있을 텐데, 근대 화학의 기초를 닦은 라부아지에(1743∼1794)가 만들어낸 말이다. 그는 <화학원론>(1789)에서 서양에서 예부터 내려온 4원소설을 거부하고, 모두 33개의 원소를 새롭게 이름 지었다. 그 중에서 산소, 수소, 질소 등은 오늘날까지 원소로 인정받고 있지만, 빛(lumiere)과 열소(caloric)는 뒷날 원소가 아니라는 것이 판명되었다.

열이 물질의 한 갈래라는 라부아지에의 가설은 곧 기각되었지만, 칼로릭이라는 이름은 후대의 학자들에게 여러 갈래로 영감을 주었다. 프랑스의 니콜라 클레망은 1824년 ‘칼로리’라는 단위로 열을 측정하자고 제안했다. 칼로리는 역시 프랑스에서 만든 미터법과 깊이 결부된 단위였으므로(‘물 1g’ 또는 ‘가로, 세로, 높이 1㎥ 부피의 물’은 모두 미터법을 기반으로 정한 양이다.) 미터법과 더불어 점점 널리 보급되었다. 1860년대 무렵이면 유럽 대륙과 영국의 사전들에 칼로리라는 신조어가 추가되었다.

한편 바다 건너 영국에서는 물리학자 제임스 프레스콧 줄(1818∼1889)이 운동과 열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연결고리를 찾기 위해 까다로운 실험을 반복하고 있었다. 줄은 1840년대 초반, 무거운 추가 낙하하는 운동을 이용하여 단열된 통 안의 물을 휘젓고, 그 물의 온도가 얼마나 올라가는지 측정하는 실험을 설계했다. 반복된 실험을 통해 그는 물 1g의 온도를 섭씨 1도 올리기 위해서는 ‘1뉴턴(N)의 힘을 받은 물체가 1m 움직일 때 필요한 에너지’(이것은 뒷날 줄의 이름을 따서 ‘1줄(J)’로 명명되었다)의 약 4.2배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냈다. 중·고등학교 시간에 억지로 외우곤 하는 ‘열의 일당량’, 즉 ‘1cal=4.2J’이라는 공식은 이렇게 유래한 것이다.

줄의 실험은 물리학뿐 아니라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운동, 열, 전기와 자기, 화학반응 등은 수천 년 동안 별개의 범주로 이해되어 왔다. 하지만 ‘에너지’라는 큰 틀 안에서 이제 이 모든 현상을 하나로 묶어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예를 들어 보일러는 석유나 석탄 속에 숨어 있던 화학에너지를 열에너지로 변환하고, 증기기관이나 가솔린엔진은 열에너지를 운동에너지로 변환한다. 전동기는 전기에너지를 운동에너지로, 발전기는 운동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바꿔 준다. 이제 이 모든 반응을 줄 또는 칼로리라는 하나의 물리량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칼로리가 알려주는 것, 알려주지 않는 것

그러면 생명체가 음식을 먹으면, 그 몸 안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역시 칼로리가 모든 것을 설명해 준다. 음식에 담겨 있던 화학에너지는 소화기관에서 잘게 쪼개져 흡수되고, 순환기관(혈관)을 타고 온몸 구석구석의 세포까지 전해진다. 세포의 소기관들은 영양소들을 열에너지 또는 운동에너지로 바꾸어 근육을 움직이고, 체온을 높이며, 신경세포 사이에 신호를 주고받는다. 칼로리로 표현되는 에너지 개념을 적용하면, 우리의 몸은 기계와 다를 것이 없다. 대단히 복잡하고 정교하지만, 결국은 땔감(영양소)을 공급받아 그것을 운동 또는 열의 형태로 변환하여 각 기관에서 필요한 일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줄이 물을 휘젓는 실험을 거듭했듯이, 인간이라는 기계의 열효율도 측정할 수 있지 않을까? 미국의 화학자 윌버 애트워터(1844∼1907)는 인간 기계의 에너지 대사를 측정하기 위해 폭 4피트, 높이 8피트의 단열된 방을 만들었다. 그 안의 실험자가 들이마시는 산소의 양과 섭취한 음식의 양을 측정하고, 내놓는 이산화탄소와 땀과 배설물의 양과 온도를 측정하여, 인간이 음식물로 받아들인 화학적 에너지의 양과 체온으로 내놓는 열에너지의 양 사이의 관계를 알기 위해서였다.

애트워터는 수백 건의 실험을 거듭한 결과 오늘날 우리에게도 매우 친숙한 통계를 얻었다. 인체의 소화흡수를 거쳐 탄수화물과 단백질은 1g이 4㎉의 열량을, 지방은 9㎉의 열량을 낸다는 이른바 ‘4-9-4 법칙’ 또는 ‘애트워터 시스템’이 바로 이때 탄생한 것이다. 칼로리는 이제 열의 단위일 뿐 아니라 영양의 지표가 되었다.

음식물의 가치를 숫자로 잴 수 있다는 생각은 당시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1900년대가 되면 미국의 영양학 교과서들은 무게나 부피가 아니라 ‘100칼로리를 얻을 수 있는 분량’ 같은 식으로 여러 가지 식품을 비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몸무게를 줄이려면 얼마나 적은 칼로리를 섭취해야 한다든가, 몸무게를 늘리려면 칼로리 섭취를 얼마나 늘려야 한다든가 등의 지침이 대중매체에 범람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00여년 후, 현대인들은 각자 하루에 먹은 음식들을 검색해 보고 칼로리를 계산한다거나, 편의점에서 음료수를 집어들다가 칼로리를 확인하는 일에 익숙해졌다. 칼로리라는 개념은 인간이 자연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만들어낸 것이지만, 이제는 그 개념이 인간의 행동과 생각을 지배하게 된 것이다.

<김태호 교수(전북대 한국과학문명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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