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산-삶을 바라보는 너그럽고 따뜻한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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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칫 구세대적으로 읽힐 수 있는 이야기와 교훈을 랩이라는 소재를 통해 좀 더 넓은 세대와 함께 공유하고 소통하려 한 노력은 이 영화의 또 다른 장점이다.

제목 변산 (Sunset in My Hometown)

제작연도 2018년

제작국 한국

러닝타임 123분

장르 드라마/ 코미디

감독 이준익

출연 박정민, 김고은, 고준, 신현빈, 김준한, 장항선

개봉 2018년 7월 4일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평가에는 이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한국영화계에 있어 이준익 감독과 그의 작품들은 분명한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그는 1993년 아동영화 <키드캅>으로 데뷔한 이후 두 번째 작품

<황산벌>을 기점으로 현재까지 거의 1년에 한 편 정도씩 작품을 내놓는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작품들의 경향도 사극부터 현대극까지 다양한 시대와 장르를 넘나들며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자유로운 양상을 보인다. 심지어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시인 윤동주의 일생을 그린 <동주>

(2015)는 현대 한국 상업영화로서는 좀처럼 선택하기 힘든 흑백영화이기도 했다. 평소 유쾌하고 부지런하기로 소문난 그는 연출가라는 직업을 창작가의 입장에서 온전히 즐기는 몇 안 되는 사람 중에 하나임이 분명하다.

현재 할리우드에 안착해 맹활약 중인 촬영감독 정정훈은 <평양성> 참여 당시인 2010년 이준익을 주인공으로 단편영화 <농반진반>을 연출했다. 정정훈은 이준익에게 촬영이 없는 하루 동안 숙소인 모텔 밖으로 나오지 않으면 최신 휴대폰을 주겠다고 제안하고 이준익의 흔쾌한 수락에 두 사람의 내기가 성사된다. 하지만 감독 이준익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하루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유튜브를 통해서도 무료로 볼 수 있는 이 작품은 마치 실제상황처럼 보이는 가짜 다큐멘터리지만 현실 속 이준익이라는 인물에서 아이디어가 시작됐음은 분명하다. 평소 부지런하고 역동적인 그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화라 하겠다.

부지런한 이준익 감독의 행복한 신작

다양한 내용과 영화적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는 이준익 감독의 작품들은 그만큼 다양한 완성도와 평가로 회자된다. 어떤 이는 농담처럼 이준익 감독은 하나 건너 한 편씩 범작과 수작을 번갈아 내놓는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작품들의 목록을 펼쳐놓고 평가와 흥행 추이를 비교해보면 어느 정도는 억지스러운 얘기만은 아닌 것 같다.

고시원 쪽방에 살며 편의점 아르바이트와 발렛 파킹으로 도시생활을 이어가는 학수는 래퍼의 꿈을 안고 6년째 오디션 프로그램에 도전 중이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실수로 낙방하고 때마침 고향에서 걸려온 전화 속 목소리는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전한다. 망설임 끝에 학수는 죽기보다 싫은 귀향길을 결정한다.

모처럼 만나는 재미있고 따뜻한 영화다. 다소 과장된 사건들과 기성세대적 교훈이 눈에 거슬린다는 의견들도 있지만 장르 안에서 허용될 만한 범위를 넘어서지는 않는다.

<변산>은 여러 모로 2006년 공개됐던 <라디오 스타>(2006)를 떠올리게 한다. 일단 주인공이 평소 무시하고 애써 피하려 했던 공간에 내몰리게 되고, 그곳에서 점차 잊고 있던 소중한 가치를 깨달으며 성장하게 된다는 내용이 그렇다. 또 음악이 중요한 소재로 사용된다는 점도 유사하다. 자칫 구세대적으로 읽힐 수 있는 이야기와 교훈을 랩이라는 소재를 통해 좀 더 넓은 세대와 함께 공유하고 소통하려 한 노력은 이 영화의 또 다른 장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와 주변인들의 삶에 따뜻하게 다가서는 너그러운 시선이 닮아 있다.

연출과 어우러진 배우들의 편안한 변신

이 작품이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요소들 중 뛰어난 기량을 펼쳐놓는 배우들의 몫도 크다. 이미 <동주>에서 이준익 감독과 합을 맞췄던 박정민은 이번 영화에서는 출중한 랩 실력을 발휘한다. 이병헌과 형제로 출연했던 <그것만이 내 세상>(2017)에서 서번트증후군을 가진 천재 피아니스트 진태 역을 맡으며 각고의 노력 끝에 놀라운 피아노 연주를 직접 펼쳐 관객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던 그는 이번 작품에서도 무명 래퍼 학수를 연기하기 위해 장기간 프로 래퍼들에게 수업을 들으며 연습을 감내했다고 한다.

순수하고 풋풋한 시골 문학처녀 선미 역을 맡은 김고은 역시 이제까지와 다른 모습으로 새로운 매력을 발산한다. 2012년 파격적 멜로영화 <은교>를 통해 인상적인 데뷔를 했던 그녀는 이후 강렬하고 무거운 인상의 캐릭터를 주로 연기해 패턴이 굳어지는 것 같다는 아쉬움도 있었는데 몸무게를 늘려가며 즐겁게 촬영했다는 이번 작품을 통해 이전의 우려를 거뜬히 상쇄시키고 있다. 모처럼 스크린을 통해 만나는 중견배우 장항선의 얼굴도 반갑다. 젊은 시절을 호기로 살다가 이제는 나이 들고 병들었지만 여전히 대쪽 같은 성격과 체면이 우선인 보통의 아버지는 그만의 독특한 분위기와 섬세하면서도 선 굵은 연기로 생명력을 얻었다.

인내와 하늘의 선물 ‘매직 아워’

[터치스크린]변산-삶을 바라보는 너그럽고 따뜻한 시선

과거로부터 많은 작품들이 ‘아름다운 장면’을 추구해왔다. 다양한 연출과 효과를 통해 공들여 만들어진 인상적인 장면은 어울리는 이야기와 맞물려 깊은 여운을 남긴다. 그 중에서도 일출과 일몰 배경은 영화뿐 아니라 수많은 이미지에 등장하는 대표적인 인상 샷 중 하나다. 김대승 감독의 <번지점프를 하다>(2000), 이윤기 감독의 <어느 날>(2016), 그리고 얼마 전 개봉한 이창동 감독의 <버닝> 같은 작품들은 매직 아워를 인상적으로 사용한 대표적 작품으로 기억된다.

이런 장면은 해가 뜨고 지는 1시간 내외의 짧은 시간인 박명(薄明·Twilight), 일명 ‘매직 아워’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시간에 맞춰 장소를 선택한다 해도 그날의 기상조건에 따라 원하는 그림을 얻게 된다는 장담을 할 수가 없다. 때에 따라서는 이 한 장면을 위해 몇 개월을 소요하는 경우도 있어 제작현장에서 매직 아워 촬영은 돈 많이 들고 힘든 촬영 중 하나로 통한다.

장비와 기술의 발달은 비현실적인 상상 속의 공간과 동물까지도 구현해내는 현재에 이르렀지만 아직까지도 일출, 일몰 장면은 직접 찍는 영화들이 많다. 아무래도 특성상 가공된 인공미보다는 현실적 아름다움이 더 설득력을 갖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 <변산>에서도 폐항(전라북도 부안군 하리항)의 노을은 아름다운 공간으로서의 배경뿐 아니라 인물과 시간을 연결하는 매개체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촬영팀은 두 달여에 걸린 각고의 노력과 인내 끝에 마치 CG로 보일 정도로 환상적인 노을 장면을 담아낼 수 있었다고 한다.

<최원균 무비가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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