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국장에 담긴 사회주의 국가들의 ‘풍요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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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국가들은 봉건시대의 유산을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유물론 철학의 가르침에 충실하게 새로운 시대의 국장을 만들고자 했다. 사회주의를 상징하는 별과 혁명적 구호들, 그리고 농업과 공업의 상징들로 채워진 이유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8년 5월 초 중국 다롄(大連)을 방문할 때 전용기 ‘참매1호’를 언론에 공개했다. 북한 지도자들은 우방국을 방문할 때에도 비행기를 타는 일이 드물었기에, 이렇게 최고지도자가 전용기로 해외를 찾은 모습을 언론에 공개한 것은 북한이 ‘정상국가’로의 전환을 꾀한다는 신호로 해석되었다.

전용기 편으로 중국을 방문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5월 7일 랴오닝성 다롄 공항에서 수행원들과 함께 비행기 트랩을 내려오고 있다. 전용기 문 옆에 북한의 국장이 그려져 있다.

전용기 편으로 중국을 방문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5월 7일 랴오닝성 다롄 공항에서 수행원들과 함께 비행기 트랩을 내려오고 있다. 전용기 문 옆에 북한의 국장이 그려져 있다.

특히 전용기 외면에 북한의 국장(國章)을 그려 넣은 것이 언론의 관심을 끌었다. 북한의 국장은 관련 전문가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만 일반인들은 볼 기회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장의 모습도 흥미롭다. 남한 국장이 태극기와 무궁화만 담겨 있는 추상적이고 절제된 모습인 데 비해 북한 국장은 백두산, 벼, 댐과 수력발전소, 송전탑 등 대단히 구체적인 소재들을 그리고 있다.

백두산부터 송전탑까지, 북한의 국장

붉은 별은 사회주의 국가의 국장이나 국기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상징이고, 백두산은 민족주의의 상징이다. 이들 요소가 전하는 메시지를 한마디로 간추리면 ‘농업과 공업이 발달한 사회주의 조국’쯤이 될 것이다. 사자나 용 같은 멋진 동물이 나오는 유럽 나라들의 국장과 비교하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직설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 북한 국장을 낯설게 느낄 독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북한 국장과 상당히 닮은 국장을 쓰는 나라들이 여럿 있다.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벨라루스, 투르크메니스탄 등 중앙아시아 여러 나라들의 국장은 하나같이 황금빛 밀이삭이나 목화로 둘러싸여 있다. 아시아에서도 중국, 베트남, 라오스 등의 국장은 북한과 마찬가지로 볏단으로 가장자리를 두르고 있으며, 아프리카 모잠비크의 국장의 둘레도 옥수수와 사탕수수가 차지하고 있다.

쉽게 알 수 있듯이, 이들 나라의 공통점은 과거에 사회주의 국가였거나 현재 사회주의 국가라는 점이다. 사회주의 국가의 국장에서 농업과 공업의 생산력을 직설적으로 강조하는 까닭은 역사적 맥락 안에서 이해해야 한다. 국장이란 원래 유럽 왕가의 문장(紋章)이었다. 전쟁터에서 적과 아군을 구별하기 위해 가문을 상징하는 그림을 방패나 깃발에 그려 넣었던 것이 근대 국민국가의 시대에도 살아남아 그 나라를 대표하는 휘장으로 정착된 것이다.

사회주의 국가들도 국제외교의 관례에 따라 국장이라는 것을 만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들은 봉건시대의 유산을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유물론 철학의 가르침에 충실하게 새로운 시대의 국장을 만들고자 했다. 봉건시대에 뿌리를 둔 다른 유럽 나라들의 국장이 왕가의 상징이나 종교적 기호들로 채워져 있는 데 비해 사회주의 국가의 국장은 사회주의를 상징하는 별과 혁명적 구호들, 그리고 농업과 공업의 상징들로 채워진 이유다. 오래된 국장의 가장자리에 그려 넣는 식물은 대체로 월계수나 올리브 가지 등 신화나 성서에서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 것들이었지만 사회주의 국가의 국장은 벼, 밀, 목화, 담배 등 국민 경제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 식물들로 테를 둘렀다.

이런 변화를 처음 시도한 것은 당연하게도 구 소비에트연방이었다. 소련은 혁명 직후인 1923년, 지구 위에 낫과 망치를 그려 넣고 밀이삭으로 가장자리를 두른 국장을 발표하였다. 유물론에 입각한 사회주의 혁명을 전세계로 펼쳐 나가겠다는 이상이 분명하게 담겨 있었다.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도 소련풍의 국장을 만들기 시작했고 이 ‘사회주의 국장’은 다른 나라들과 확연히 구별되는 양식이 되었다.

차례대로 구소련, 벨라루스, 타지키스탄의 국장. 오른쪽 끝 사진은 북한이 1948년 단독정부 헌법 반포를 전후하여 잠시 사용했던 국장으로, 수풍댐 대신 화학공장 설비를 그려 넣었다.

차례대로 구소련, 벨라루스, 타지키스탄의 국장. 오른쪽 끝 사진은 북한이 1948년 단독정부 헌법 반포를 전후하여 잠시 사용했던 국장으로, 수풍댐 대신 화학공장 설비를 그려 넣었다.

구소련이 1991년 해체된 뒤 러시아와 동유럽 여러 나라들은 공식적으로 사회주의와 결별했다. 이들 중 대다수는 혁명 전에 쓰던 국장으로 돌아갔다. 러시아는 차르 시대의 쌍두독수리를 다시 국장으로 삼았고, 헝가리와 체코 등도 예전 왕조시대의 국장을 되살렸다. (이에 비해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 이탈리아는 사회주의 국가가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패전 후 오늘날까지 가운데 톱니바퀴를 그려 넣은 사회주의 양식의 국장을 쓰고 있어 흥미롭다.)

하지만 구소련에 속했던 공화국 가운데에서도 중앙아시아 쪽 나라들은 사회주의 시절의 국장을 계속 쓰고 있다. 공식적으로 사회주의를 폐기한 적 없는 아시아의 나라들도 마찬가지고, 북한도 그 가운데 하나다.

이제는 퇴색된 북한의 ‘세계 제2의 댐’

사회주의 양식의 국장이라고 해도 그 안에 들어가는 상징물은 조금씩 다르다. 공업과 노동을 상징하는 톱니바퀴를 넣은 나라들은 제법 있지만, 북한처럼 구체적인 산업설비를 국장에 넣은 것은 사회주의 나라 중에도 별로 없다.

북한의 국장에 들어 있는 댐은 압록강의 수풍(水豊)댐이다. 일제강점기 한반도 북부지역에서 많은 사업을 벌였던 재벌 노구치 시타가우(野口遵)가 자신의 비료공장에 전력을 대기 위해 댐의 건설을 추진했다. 압록강 반대편의 만주국도 전기가 부족한 상황이었으므로 댐 건설계획을 환영했다.

노구치는 1937년 ‘압록강 수력발전주식회사’를 세웠다. 1939년에는 공사장까지의 운송을 위해 평북선 철로도 개통하였다. 만주국의 허수아비 황제 푸이도 공사장을 방문할 정도로 중요한 사업이었다. 1943년 완공되었을 당시 수풍댐은 아시아 최대, 세계 제2의 댐으로 명성을 떨쳤다. 발전용량으로도 미국의 후버댐과 윌슨댐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발전소였다.

광복 후 한반도가 분단되면서 수풍댐은 우리에게는 안타까운 역사로 남게 되었다. 남북한이 각각 단독정부를 수립하는 것이 사실상 확정된 1948년 5월, 북한은 “미군정이 전기사용료를 내지 않았다”는 이유를 내세워 일방적으로 38선 이남으로 보내던 전기를 끊어 버렸다. 남한은 이후 한동안 극심한 전력난에 시달렸다. 한국전쟁 중에는 수풍댐을 파괴하기 위해 유엔군이 세 차례에 걸쳐 수백 톤의 폭탄을 쏟아부으며 대대적인 공습을 감행하기도 했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압록강은 여전히 흐르고 수풍댐은 지금도 건재하다. 생산하는 전기의 일부를 중국으로 수출하여 외화를 벌어들이기도 한다. 일본 재벌의 손에서 태어났지만 사회주의 국가의 상징이 되었고, 분단의 무기가 되기도 했던 거대한 산업시설. 북한이 개방의 길을 순조롭게 걷게 된다면 이 댐을 국장 속에서 보게 될 기회가 더 늘어날지도 모르겠다.

<김태호 전북대 한국과학문명학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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