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구의 <관촌수필> “두만강 눈송이를 바라보며 한없이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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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 두만강 철교를 근너가는디… 오! 두만강… 오 두만강! 내 눈에는 무엇이 보였겄네? 눈! 그저 그 눈! 쌓인 눈, 쌓이는 눈… 아무것두 안 보이구 눈 천지더라. 그 눈을 쳐다보는 내 마음은 워땠겄네? 이 내 심정이 워땠겄어?”

이문구의 <관촌수필>

이문구의 <관촌수필>

이문구의 <관촌수필>, 그 중 한 편인 ‘공산토월’은 한국문학사의 독보적이고 위엄 있는 단편으로 1973년에 발표되었다. 그 시절의 문단 풍습대로 늘 갑작스레 손님이 찾아들고, 늘 밥 대신 술국을 말아먹고, 그러다가 밤을 함께 보내게 되고, 또 아침이면 해장술을 하던 풍경이 그려진다. 대전의 시인 박용래가 서울의 친우 이문구를 만나러 온 것이다. 이문구는 박용래를 ‘정과 한에 어혈이 든 눈물의 시인’이라고 묘사한다. 그 눈물의 시인과 함께 아침 9시부터 ‘난로가 후끈한 중국집 식탁에 늘어붙어 창밖에 쏟아지는 함박눈을 내다보며 고량주를’ 마시고 있는데, 갑자기 시인이 ‘불쑥 밑동 없는 말’을 한다.

“왜정 때, 내가 조선은행(한국은행)에 댕길 적에 말여….” 박씨는 전재민같이 야윈 손가락으로 고량주 잔을 삼키고 나서 말했다.

“조선은행권 현찰을 곳간차에 가득 싣고 경원선을 달리는디, 블라디보스톡까지 논스톱으루 달리는디 말여….”

“경비원으루 묻어갔었다, 그 말이라….”

“야, 너 웨 그러네? 웨 그려? 이래봬두 무장 경호원이 본인을 경호하던 시절이 있어야. 현찰 운송 책임을 내가 자원해서 했던 거여. 너 참 이상해졌다야. 웨 그려? 오~ 그 눈 … 그 눈송이… 그 두만강….”

‘정과 한에 어혈이 든 눈물의 시인’ 박용래

블라디보스톡까지 논스톱으로 달리는 경원선 기차! 안타깝게도 ‘왜정’ 때 일이다. 해방이 되었으나 전쟁이 일어났고 곧 분단이 되어 경의선이며 경원선이며 다 끊겨버려서 우리는 ‘블라디보스톡까지 논스톱’으로 달리는 기차에 의한 그 대륙적인 상상력을 다 잃어버리고 말았다. 휴전선으로 인한 지리적 상상력의 한계. 서울에서 북쪽으로 한두 시간이면 이 상상력은 끝나고 만다.

공간지리학의 관점에서 기차는 근대의 탄생이며 그 속도이며 그 상징이다. 이런 관점의 고전이 볼프강 쉬벨부쉬의 <철도 여행의 역사>다. 기차가 도입된 19세기 유럽을 시공간적 배경으로 하여 이 새로운 교통수단에 의하여 유럽(훗날에는 세계 전역)이 어떻게 지리적으로 재편되었는지, 그리고 기존의 시공간적 개념이나 일상생활의 테두리가 어떻게 급변하게 되었는지를 대중적으로 풀어 썼다. 이 책에서도 인용되고, 또 여러 학자들에 의하여 19세기 유럽 문화사를 다룰 때 반드시 인용되는, 하인리히 하이네의 진술이 있다. 1843년 파리에서 루앙 사이, 오를레앙 노선을 탄 경험을 바탕으로 시인 하이네는 다음과 같이 썼다.

“무시무시한 전율, 결과를 예상할 수 없고 예측할 수도 없는 엄청난 일이 일어났을 때 우리가 느끼는 그런 무시무시한 느낌이었다. 철도의 등장은 인류에게 커다란 변화를 가져오고, 삶의 색채와 형태를 바꾸어 놓는 숙명적인 사건이다. 이제 우리의 직관 방식과 우리의 표상에 어떤 변화가 생길 것임에 틀림없다! 심지어 시간과 공간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들도 흔들리게 되었다. 철도를 통해서 공간은 살해당했다.”

여기서 ‘살해’라는 용어는 이중적이다. 이 말을 즉각적으로 들으면 기존의 ‘평화로운 농촌 공동체의 풍경’이 작살난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조금 골똘히 생각한다면 농촌경제 기반의 지리적 한계와 낡은 습속이 사라지고 근대문명이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고 볼 수 있다.

윌리엄 터너의 <Rain steam and speed>

윌리엄 터너의

하이네는 음풍과 농월을 즐긴 고답적인 시인이 아니었다. 비록 ‘살해’라는 표현을 썼지만, 그것은 윌리엄 터너가 1844년에 그린 ‘비, 증기 그리고 속도’라는 그림과 같은 맥락이다. 그림의 왼쪽 하단에 보면, 엄청난 속도에 깜짝 놀라는 낚시꾼이 보인다. 기차는, 근대는 바로 그러한 목가적인 풍경을 ‘살해’한 것이다.

우리에게도 기차는 문명의 충격이고 충돌이었다. 이 분야의 독보적인 저작은 박천홍의 <매혹의 질주, 근대의 횡단>이다. 구한말에 부설된 각종 철도 노선에 의하여 이 한반도가 어떻게 재편되는지, 경성역(오늘의 서울역)을 중심으로 각지의 기차역들이 근대문명의 어떤 교두보가 되었는지, 그리하여 봉건과 근대, 식민과 독립의 모순과 긴장이 어떻게 철로 위에서 빚어졌는지 알 수 있다. 그 서문에서 박천홍은 “철도는 이성과 합리성의 세계를 열었다. 합리적 이성이 봉건적 전통과 관습을 짓누르며 우위를 점했다”고 썼다. 그러나 다만 그뿐일까. 박천홍은 그 압도적인 근대의 속도와 힘에 의하여 새로운 삶을 살게 된 이 한반도의 작은 삶에 대해서도 바로 그 서문에서 애틋하게 덧붙였다.

‘블라디보스톡까지 논스톱’으로 달려

“기차는 내 어린 시절 기억의 서랍에 들어 있다. 내 고향은 전라남도 승주(현재 순천시)다. 고향마을의 맨 끝에 위치한 집에서 바라보면 멀리 기찻길이 보인다. 구례와 순천 사이를 굽이굽이 지나가는 전라선이다. 덜컹거리는 기차 소리는 논과 밭을 건너 희미하게 들려왔다. 어린 시절 아버지는 철도공무원이었다(중략). 그에게는 유랑민의 흔적 같은 바람 냄새가 묻어 있었다. 아버지의 서늘한 품에 안기면 왠지 모를 서러움이 돋아났다.”

아 참, 이른 아침부터 중국집에 앉아서 술을 마시던 소설가와 시인 얘기를 마저 해야겠다. 실은 ‘4·27 판문점 선언’ 때문에 기차 타고 개성 거쳐 평양 가고 금강산 지나서 원산 가는 생각을 하다가 이문구의 소설을 떠올린 참이었다.

소설 속에서 박용래는 ‘블라디보스톡까지 논스톱’으로 가는 경원선을 추억하며 눈물을 흘린다. 아! 그렇게 먼 곳까지, 하염없이 내리는 거대한 폭설의 대륙을 가로지르는 기차를 타고 싶다. 조금 길지만 인용한다. 모두들 정독하여 훗날 ‘블라디보스톡까지 논스톱’으로 달리는 상상을 해보자.

“이까짓 눈두 눈인 중 아네? 눈인 중 알어? 너두 한심허구나야…. 원산역을 지날 때 눈발이 비치더니, 청진을 지나니께 정신없이 쏟어지는디, 아, 그런 눈은 처음이었었어…. 아, 그 눈….”

박천홍의 <매혹의 질주 근대의 횡단>

박천홍의 <매혹의 질주 근대의 횡단>

그는 이미 떨리는 음성이었고 두 눈시울에는 벌써 삼수갑산 저문 산자락에 붐비던 눈송이가 녹으며 모여 토담 부엌 두멍처럼 넘실거리고 있었다.

“차가 두만강 철교를 근너가는디…. 오! 두만강…, 오 두만강! 내 눈에는 무엇이 보였겄네? 눈! 그저 그 눈! 쌓인 눈, 쌓이는 눈…. 아무것두 안 보이구 눈 천지더라. 그 눈을 쳐다보는 내 마음은 워땠겄네? 이 내 심정이 워땠겄어?”

“워땠는지 내가 봤으야 알지유.”

“그러냐. 야. 너두 되게 한심허구나야. 그래 가지구 무슨 문학을 헌다구. 나는… 나는 울었다. 그냥 울었다. 두만강 눈송이를 바라보며 한없이 한없이 그냥 울었단 말여….”

어느덧 그의 양어깨에 두만강 물너울이 실리면서 두 불에는 강이 흐르고 있었다. 식민지 시대의 두만강이 흐르고 있었다.

<정윤수 성공회대 문화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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