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셀 호네트의 <인정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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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없는 생명들은 왜 생명을 걸고 투쟁하나

이 책은 지금 당장 우리 사회 도처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투쟁들, 그야말로 ‘죽음의 공포에 의해 파멸에 직면한’ 수많은 힘없는 생명들이 스스로의 생명을 걸고 벌이는 투쟁의 의미를 깊이 있게 이해하게 해준다.

[정윤수의 ‘서문이라도 읽자’]악셀 호네트의 <인정투쟁>

“예속된 의식이 안고 있는 불안은 단지 우발적으로 나타난 어떤 것에 관한 불안도 그리고 특정한 순간에 닥치는 불안도 아닌, 그야말로 자기의 존재에 흠뻑 닥쳐오는 불안으로서 무한정한 힘을 지닌 주인에게서 닥쳐오는 죽음의 공포라는 것이다. 이러한 공포 속에서 내면으로부터의 파멸에 직면한 노예는 걷잡을 수 없는 전율을 느끼면서 그를 지탱해왔던 모든 것이 동요를 일으킨다.”

헤겔이 <정신현상학> 중 ‘자기확신의 진리’에 대해 쓴 문장이다. 물론 이런 식의 인용은 위험하다. 지금 당장의 일을 설명하기 위해 위대한 사상가의 복잡한 책에서 문장 몇 개를 뽑아 인용하는 것은 편리한대로 코끼리의 꼬리를 스치듯 살피는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기는 해도 장강대하의 사상에서 물 한 바가지 퍼서 목마름을 해결하는 것 또한 의미있다. 나는 지금 ‘조재범 전 빙상코치의 성폭력 가해사건’을 생각하며 몇 문장 인용하는 중이다.

위에 인용했듯이, 이 ‘자기확신의 진리’에서 헤겔은 그 유명한 ‘주인과 노예’ 상태를 설명하면서 인간의 생명, 자기 보존, 인정 욕망 등의 개념을 확장한다. 인간은 일차적인 본능과 욕망의 충족을 넘어 스스로의 가치와 존엄을 인정받고 싶어하는 존재다. 생명이란 무엇인가. 헤겔에 따르면 이렇다. “생명이 ‘있다’는 것은 결코 뭔가가 추상적으로 있다는 것이 아니며 또한 생명의 순수한 본질은 추상적 보편성을 띤 그런 것도 아니다. 생명이 있다는 것은 바로 순수한 운동을 행하는 단일하고 유동적인 실체가 자기 자체 내에서 꿈틀거리는 것이다.”

바로 이 생명의 꿈틀거림! 이는 자기와 타자(혹은 세계)와의 변증법적 인식작용과 거의 생명 그 자체를 다 거는 인정투쟁을 벌이게 된다. 이는 개인의 일상생활에서도 발견되며 집단적 사회행위에서도 발견된다. 때로 그 둘은 겹쳐진다. 한 인간의 인정투쟁은 단지 그의 어떤 정서적 욕망의 충족이 아니라 그 사회 전체가 반드시 극복해야만 하는 중요한 과제 위에서 벌어지는 투쟁이 된다. 박찬국에 따르면 “노예들은 자신의 생명을 걸고 죽음에 대한 공포를 극복”한다. 프랑스 혁명이 그 예다.

악셀 호네트의 <인정투쟁>은 인간이 긍정적 자기의식을 찾아낼 수 있는 사회심리적 조건, 즉 인정 욕망의 철학적·사회적 근거를 밝힌 책이다. 기본적으로 헤겔의 생명과 인정 개념에서 출발해 조지 허버트 미드와 위르겐 하버마스의 개념을 활용하여 인정이라는 단어에서 연상되는 통속적이고 개인화된 것을 넘어 이 현실세계의 격렬한 사회 갈등과 투쟁의 이론적 근거를 찾아내고 있다.

호네트는 ‘머리말’에서 “오늘날 페미니즘의 정치철학적 작업이 인정이론과 접목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데도 나는 이러한 토론과 부딪쳐보는 작업을 하지는 않았다”고 쓰고 있지만, 모든 이론과 개념이 그렇듯이 이 책은 비단 철학 아카데미즘의 오랜 담론 과제를 파악하는 일만이 아니라 지금 당장 우리 사회 도처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투쟁들, 그야말로 ‘죽음의 공포에 의해 파멸에 직면한’(헤겔) 수많은 힘없는 생명들이 스스로의 생명을 걸고 벌이는 투쟁의 의미를 깊이 있게 이해하게 해준다. 호네트로부터 배우고 그의 사상을 우리 사회에 확산해 <인정의 시대>를 쓰기도 한 번역자 문성훈이 <인정투쟁>의 ‘옮긴이 서문’에 쓴 다음과 같은 말이 그 증거다.

“인정관계를 둘러싼 무시나 모욕행위는 일종의 ‘도덕적 훼손’으로 이해될 수 있다. 만약 ‘도덕적 관점’이라는 것이 인간의 삶의 실현을 이러한 훼손행위로부터 보호하는 데 목적이 있다면, 이러한 훼손행위를 극복하려는 사회적 투쟁 역시 도덕적으로 정당하다. 이런 점에서 ‘인정투쟁’은 이 책의 부제가 지적하고 있듯이 사회적 투쟁의 ‘도덕적 형식’이다.”

<정윤수 성공회대 문화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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