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은 비극이고 슬픈 일은 슬픈 것이지만 주민의 일상은 또 다른 결이 있었다. 늘 테러의 잔해와 추모시설을 보면서 살아야 하는 ‘시각적 불편함’ 말이다.
2001년 9월 11일, 오사마 빈 라덴과 무장조직 알 카에다의 자폭 테러로 워싱턴의 펜타곤과 뉴욕의 세계무역센터가 공격을 받았다. 그 이후 무슨 일이 있었던가.
미국은 테러 9일 만에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했다. 탈레반은 산으로 올라가 게릴라전을 펼쳤고 오사마 빈 라덴과 알카에다는 파키스탄 접경지역으로 숨었다. 이어 미국은 ‘대량살상무기’를 명분으로 이라크를 침공했다.
그렇다면 뉴욕은? 도시사회학자 그레고리 스미스사이먼은 <9·12>를 썼다. 테러 이후 도시는 무엇을 어떻게 기억하는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주 정부와 시 당국, 그리고 주민들은 어떻게 서로의 입장에서 격렬한 논의를 했는가. 이를 살피는 데 있어 그는 최적의 연구자였다. 그는 1999년 봄과 2001년 8월, 두 차례에 걸쳐 이 지역을 분석했고, 테러 이후 2005년 4월까지 심도 깊은 연구를 했다. 그는 ‘공식회의에 참석하기, 지역사회 행사에 참석하기, 공공공간의 즉흥적인 삶에 참여관찰자로 방문하기, 특정 공간에 대한 반복 관찰과 정량적 측정’ 등을 구사했다. 우리의 도시 재생 연구자들이나 실천가들이 본받을 만한 태도다.
<9·12>가 출간된 2011년 이후 이 폐허 일대는 쓰라린 테러를 기억하면서도 동시에 새 출발을 하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2011년 9월 12일, 건물이 무너진 자리에 추모 박물관과 숲으로 조성된 8에이커(3만2000㎡)의 공원이 완공되었다. 건물이 있던 자리에는 정사각형의 추모의 ‘풀(pool)’이 들어섰다. 화강암벽을 따라 물줄기가 흘러내린다. 가장자리에는 희생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지하의 추모시설에 이르는 통로에는 건물 잔해들과 불에 탄 소방차가 전시되어 있다. 11명의 소방관 전원이 탑승했다가 사망한 차량이다.
주 건물 ‘원 월드 트레이드센터(1WTC)’도 2014년 11월에 개장했다. 99년간 토지 임대권을 보유한 래리 실버스틴이 건축가 데이비드 차일즈가에게 의뢰한 건물로 102층의 거대한 빌딩이 추모 기념비처럼 보인다. 그밖에도 여러 추모시설이 도심 공원을 배경으로 더 만들어졌다.
그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이 지역을 ‘배터리파크시티’라고 부른다. 뉴욕의 거점이 맨해튼이요, 맨해튼의 핵심이 배터리파크시티다. 1966년 시작된 도시계획이 2015년에야 끝났다. 그 사이에 테러를 겪었다. 끔찍한 ‘9·11’이었지만 ‘9·12’, 즉 잔해 위에 도시를 재생하는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비극은 비극이고 슬픈 일은 슬픈 것이지만 주민의 일상은 또 다른 결이 있었다. 스미스사이먼은 주민의 일상에 밀착해 그들의 ‘공간을 통한 구별짓기’를 분석해낸다. 늘 테러의 잔해와 추모시설을 보면서 살아야 하는 ‘시각적 불편함’ 말이다. 어떤 주민은 스미스사이먼에게 “평범한 삶을 사는 건데 매일같이 그런 물건들을 지나는 일”은 괴롭다고 호소한다.
이 책은 2011년 출간됐다. 그러니까 이 책은 테러 이후 10년 가까운 논쟁과 갈등의 보고서다. 그 이후 기념비와 추모공원과 새 건물 1WTC가 들어섰다. 그 이후 주민들의 심정과 반응이 어떤지는 알기 어렵다. 그럼에도 스미스사이먼이 한국의 독자들을 위해 쓴 ‘한국어판 서문’의 전언은 온 국토가 갑자기 ‘도시재생’ 신드롬에 들뜨고 있는 요즘에 오히려 더 중요하다.
“우리는 물리적 회복력과 사회적 회복력 모두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며, 양쪽의 형평성 문제를 고려해야 한다. 인재와 자연재해를 마주하며 배터리파크시티 주민이 겪은 일은 물리적 회복력과 사회적 회복력 모두 중요함을 보여준다. 위기에 처한 지역사회에는 제대로 설계되고 주민들의 요구를 수용하기에 충분할 만큼 물리적으로 탄력 있는 회복성을 갖춘 공간이 필요하다.” ※정윤수의 ‘서문이라도 읽자’는 이번 호로 연재를 마칩니다.
<정윤수 성공회대 문화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