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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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은 박완서가 간직한 정서의 원형이었다

“나이 먹을수록 지난 시간을 공유한 가족이나 친구들하고 과거를 더듬는 얘기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 때마다 같이 겪은 일에 대한 기억이 서로 얼마나 다른지에 놀라면서 기억이라는 것도 결국은 각자의 상상력일 따름이다”

대가의 작품은 그 이야기 구성이 복잡하고 그 담은 내용이 난해한 경우가 많지만, 꼭 그렇지 않은 수도 있다. 보통 수준의 상식과 교양과 문장 해독력을 지닌 사람들도 다 읽을 수 있고 조금 일찍 문리가 트인 중·고생도 어지간하면 읽어낼 수 있는 작품들 중에서 불멸성을 획득한 대가의 작품들도 적지 않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나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이 그렇다. 전문가는 전문가의 수준에서, 중·고생이나 일반적인 독자로서는 또 저마다의 교양 수준이나 감각으로 얼마든지 읽을 수 있다.

[정윤수의 ‘서문이라도 읽자’]박완서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국내의 경우 단연 박완서가 그런 인물이다. 장편소설 <휘청거리는 오후>나 <나목>은 물론이고 대단히 정밀하게 읽어내야 하는 <엄마의 말뚝> 연작이나 <저문 날의 삽화> 연작 또한 한 시대의 거대한 집단 초상화로 읽을 수도 있고, 독자들 저마다의 마음의 풍경에 따라 얼마든지 변주하여 읽을 수 있다.

성장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보자. 그 서문에서 박완서는 “이런 글을 소설이라고 불러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순전히 기억에만 의지해서 써 보았다”고 하면서 그러나 “나이 먹을수록 지난 시간을 공유한 가족이나 친구들하고 과거를 더듬는 얘기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 때마다 같이 겪은 일에 대한 기억이 서로 얼마나 다른지에 놀라면서 기억이라는 것도 결국은 각자의 상상력일 따름”이라고 덧붙인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기본적으로 작가 자신의 유년기 체험이지만 그 기억을 단순히 회고하는 게 아니라 그런 기억의 시간들 속에서 어떤 ‘성장’이 있었는가에 주목해야 한다. 어린 시절을 회고하는, 매혹적인 대목을 읽어보자.

“우리는 그냥 자연의 일부였다. 자연이 한시도 정지해 있지 않고 살아 움직이고 변화하니까 우리도 심심할 겨를이 없었다. 농사꾼이 곡식이나 푸성귀를 씨 뿌리고, 싹 트고, 줄기 뻗고, 꽃 피고, 열매 맺는 동안 제아무리 부지런히 수고해봤자 결코 그것들이 스스로 그렇게 돼가는 부산함을 앞지르지 못한다.”

개성에서 자란 박완서의 성장소설

어린아이 박완서는 그렇게 황해도 개성의 박적골에서 자랐다. 자연은 박완서가 평생 간직하게 될 정서와 감각의 원형을 제공했다. 소나기가 쏟아지던 날의 회고다.

“우리가 노는 곳은 햇빛이 쨍쨍하건만 앞벌에 짙은 그림자가 짐과 동시에 소나기의 장막이 우리를 향해 쳐들어오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 우리는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기성을 지르며 마을을 향해 도망치기 시작한다(중략). 그러나 소나기의 장막은 언제나 우리가 마을 추녀 끝에 몸을 가리기 전에 우리를 덮치고 만다. 채찍처럼 세차고 폭포수처럼 시원한 빗줄기가 복더위와 달음박질로 불화로처럼 단 몸뚱이를 사정없이 후려치면 우리는 드디어 폭발하고 만다. 아아, 그건 실로 폭발적인 환호였다. 우리는 하늘을 향해 미친 듯한 환성을 지르며 비를 흠뻑 맞았고, 웅성대던 들판도 덩달아 환희의 춤을 추었다.”

이런 대목이 페이지 곳곳마다 펼쳐져 있지만, 그러나 반드시 그 시절을 풍요롭게만 기억하는 것은 아니다. 다섯 살쯤 된 꼬마아이 박완서는 엄마 등에 업혀 있다가 ‘하늘이 낭자하게 피를 흘리고 있는 것’ 같은 노을을 보고 생애 처음으로 ‘비애’를 느끼면서 갑자기 울음을 터트렸다. 바람이 세차게 몰아치던 날 혼자 집으로 돌아올 때도, 능선을 배경으로 하여 수수이삭이 텃밭에서 너울댈 때도 박완서는 ‘원초적인 비애’를 느꼈다. 그는 쓴다. “가슴에 고인 슬픔이 눈물이 되어 흐르길 가만히 기다렸다.”

박완서

박완서

이런 아이가 소녀가 되고 또 서울로 가서 여고생이 되고, 전쟁 때문에 제대로 다니지는 못했어도 잠시나마 대학생이 되는데, 그런 시기들마다 박완서는 인간의 삶에 드리워진 그림자들, 그 이면의 슬픈 풍경들, 때로는 비린내 나면서도 더욱 긴장하여 그 다음을 기다리게 하는 어른들의 세계를 묘사한다.

서울의 여학교를 다니게 된 박완서는 방학 때면 고향을 가게 되는데, 그때마다 개성에 있는 숙부의 소실 집에서 하루를 머물고 박적골에 가게 된다. 그런 날의 밤이면 여고생 박완서는 “그 여자하고 숙부하고 자는 방에서 같이 잠자는 데에는 거의 공포감”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박완서는 이렇게 쓴다. 호기심! “남자와 여자는 어떻게 사랑을 하는 것일까?” 하는 호기심 말이다.

“나는 이불을 푹 뒤집어쓰고 깊은 잠을 위장했다. 그러나 내 촉각은 낱낱이 곤두서 있었다. 나는 생전 처음 남자와 여자가 저지르는 어떤 일을 보게 되리라는 걸 의심하지 않았다. 나는 그걸 알게 됨으로써 내가 더럽혀질 것을 두려워하면서도 알고 싶었다.”

과제로 남은 전쟁 세대의 상처와 치유

물론 그 날 밤에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바로 이 문장, 즉 ‘두려하면서도 알고 싶었다’는 것은 예민한 감각을 지닌 작가의 각별한 표현이자 동시에 우리 같은 평범한 독자들이 대가 박완서를 통하여 깨닫게 되는, 우리 모두의 성장과정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니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는 ‘성장소설’이라는 좁은 틀 안에 우겨넣기에는 너무나 깊고 넓은 집단적 초상화라고 할 수 있다.

이 소설의 후반부는 전쟁과 그 파괴된 참상 속의 성장기다. 이미 박완서의 위대한 다른 작품들(예컨대 <엄마의 말뚝> 2)에서 처절하게 묘사된 바와 같이, 아슬아슬하게 유지된 박완서와 그 가족의 성장기는 한국전쟁과 더불어 잔혹하게 파괴된다. 짐승처럼, 오직 생존만이 유일선이었던 시기에 박완서와 그 가족은 짐승처럼 살아남았다. 그러나 오빠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것이 평생 상처가 되었으나 박완서는 2008년 9월에 발표한 에세이 ‘8월의 단상’에서 이렇게 썼다.

“나에게 6·25는 아직도 지혈이 안된 상처지만 그 다음 세대에게는 6·25를 아무리 설명을 해봤댔자 발굴한 유해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 골은 엄청나게 깊지만 다행히 우리는 사라져가는 세대이다.“

그렇게 전쟁 세대가 자연의 시간 저 너머로 흘러가고 있다. 그 흘러가는 시간의 뒤편으로 ‘4·27 판문점 회담’의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그러나 전쟁 세대가 역사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 상흔은 여전히 한반도에 남아있다. 남과 북 곳곳의 도시와 산야와 삶 전반에 드리워진 상흔을 제대로 기억하고 치유하는 과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박완서는 이 소설의 서문에서 이렇게 썼다.

“내가 생겨나고 영향 받은 피붙이들에 대한 애틋함도 여간 고통스럽지가 않았다. 뼛속의 진까지 다 빼 주다시피 힘들게 쓴 데 대해서는 아쉬운 것투성이지만 40년대에서 50년대로 들어서기까지의 사회상, 풍속, 인심 등은 이미 자료로서 정형화된 것보다 자상하고 진실된 인간적인 증언을 하고자 내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했다는 걸 덧붙이고 싶다. 잘난 척하는 것처럼 아니꼽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나는 지금 지쳐 있고 위안이 필요하다.”

<정윤수 성공회대 문화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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