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원의 <길 위의 독서> - ‘삼중당문고’를 기억하는 사람을 만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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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글 사이 그리고 문장과 문장 사이에는 수많은 웜홀이 있다. 이 책에 담긴 글이 여러분의 어느 곳에 스며들었다가 어느 곳으로 빠져나올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들 사이에 함께 공감하고 공명할 수 있는 것이 있기를 바랄 뿐이다.”

[정윤수의 ‘서문이라도 읽자’]전성원의 <길 위의 독서> - ‘삼중당문고’를 기억하는 사람을 만나면

엇비슷한 유전자를 가진 사람을 만날 때가 있다. 의학적 기호, 그러니까 A형, B형, AB형 같은 유전자 말고 생애주기의 문화적 체험이 엇비슷한 유전자 말이다. 엇비슷한 시기에 엇비슷한 음악을 듣고 엇비슷한 책을 읽고, 그래서 엇비슷한 감수성을 형성한 사람이라면 ‘만나면 좋은 친구’가 되어야 할 텐데, 그 문화적 체험이 단순히 시간 많고 경제적 여유도 있어서 여가 취미로 한 것이라면 모르되, 학연이든 지연이든 뭐 하나 없이 허기 들린 듯 온갖 문화를 섭취하지 않으면 스스로 ‘단독자’가 될 수 없는 자가 내면을 독하게 담금질하는 과정이라면, 그런 동류의 사람들은 ‘만나면 어색한 친구’가 된다.

사춘기 때나 20대 초반이었다면 스스로 자립할 정도의 ‘단독자’가 아니기에 엇비슷한 체험과 감수성을 가진 친구들끼리 밤새 술도 마시고 여행도 가고, 그렇게 하여 오랫동안 도반의 길을 걸을 수도 있을 텐데, 다 커서 우연히 생의 어떤 교차로에 들어섰다가 엇비슷한 유전자와 만나게 되면, 어색하다. 어떤 이들은 애써 고르고 고른 귀한 옷을 입고 전철을 탔다가 똑같은 옷을 입은 사람을 보게 되면 슬쩍 다른 칸으로 이동을 한다던데, 그 정도보다는 훨씬 더 무거운 감정이겠으나, 일단 그리 비유를 들 수 있다.

그러니까 나는 다음과 같은 사람을 만나면, 어색하다.

‘삼중당문고’를 기억하는, 단순히 기억하는 게 아니라 성장기 내내 지속된 원치 않은 상황들로 인하여 내내 빈혈을 앓다가 우연히 그 작은 책을 알게 되어 수혈을 받듯이 읽고 또 읽어서 마침내 그 전권에 손때를 묻힌 사람을 만나면, 어색하다. 이런 사람이 초등학교 다닐 무렵에는 아마도 100권짜리 ‘딱따구리북스’ 같은 거 없었을 게다. 그런 책을 갖고 있는 친구 집에 가서 친구 어머니가 “저녁은… 집에 가서 먹을 거지?”라고 말씀하실 때까지 읽고 또 읽었을 게다.

또 이런 사람.

중3이나 고1 때쯤 ‘삼중당문고’도 슬슬 시들해지기 시작할 무렵, 우연히 국어 선생님이나 한문 선생님이 ‘최인훈’이나 ‘황동규’, ‘황석영’, ‘정현종’, ‘신경림’ 같은 책을 권하면, 이건 또 무슨 세계인가 하고 곧장 종로서적이나 교보문고로 가서 서점 문이 닫힐 때까지 죽치고 앉아서 읽고 또 읽은 사람 말이다. 이쯤 되면 사람 눈빛이 묘하게 뒤틀리기 시작해서 학교에서 ‘열외인간’이 된다.

서점 문이 닫힐 때까지 죽치고 앉아서

이 정도면 그나마 괜찮다. 문학이라든가 혹은 출판업 전반에 걸쳐 이 정도 체험을 가진 사람 적지 않다. 그런데 여기서 멈추지 않은 다음과 같은 사람을 만나면, 나는 어색하다. 이런 예민한 감수성의 소유자들은 가뜩이나 세상의 그 어떤 관습이나 권위에 대해 동물적으로 회피하기 시작하여 책은 놓는 순간 음악을 듣고, 그것을 끄는 순간 영화관에 들락거리고, 동네 헌책방을 제 집처럼 드나들면서 서서히 세상의 그 어떤 권유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게 된다.

세상이 일러준 길로 따라가면 일정 시점마다 나타나는 생애주기의 이정표가 보이지만 그런 권유를 듣지 않고 아예 들이받아 벌이는 순간, 이정표 없는 황야로 혼자 걸어가야 한다. 퇴학이나 자퇴가 마지막 이정표다.

가사 곤란 등의 사유로 어쩔 수 없이 들판으로 나간 경우야 더 말할 것 없이 안타깝지만, 어려서 책을 읽고 책 속에 뭐라도 있는 듯하여 필사적으로 탐독한 끝에 스스로 이정표 없는 길을 나선 사람도, 돌아보면 안쓰럽다. 겨우 17살, 18살인데 찬바람 부는 항구까지 혼자 걸어가고 있지 않은가.

그 후 그의 생애주기는 완전히 단독 행군이다. 남들 다 가는 대학을 스스로 외면하게 되면, 그렇게 되면 ‘낭만의 방황’은커녕 휴학 같은 걸 할 수 없는 신분이기에 어김없이 조기에 군에 입대하게 된다. 훗날에 어떤 필요에 의하여 대학이나 그밖의 학문적 경로를 최소한으로 지켜서 겨우 바늘 한 땀 채우는 정도가 되지만, 그는 결코 그것을 자기 삶의 지렛대로 삼지 않는다. 또래 친구들이 ‘아르바이트’를 할 때 ‘노동’을 해야 했던 것처럼, 이정표를 따라온 사람들이 일정한 템포에 따라 읽거나 써야 했던 루트를 완전히 거절하며 북벽의 험로로 등정을 했기 때문에 이미 그의 배낭에는 졸업장이라든가 학위증명서 같은 것을 대체하고도 남을 만큼의 엄청난 식량이 비축되어 있다.

여기서부터 문제다. 그 비축식량으로 ‘모르는 게 없는 사람’ 시늉을 하며 사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그것은 그가 처음 ‘삼중당문고’를 펼쳐들었을 때 생각했던 미래는 아니다. 어떤 증명서의 부재를 만회하기 위하여 과도하게 ‘모르는 게 없는 사람’이라는 캐릭터를 연기할 때가 있지만 그가 소년이었을 때 변두리 도시의 헌책방에서 꿈꾸었던 것은 대학 나온 사람보다 ‘더 많이 아는 사람’은 결코 아니었다. 어떤 기벽이나 수집 취향의 대가로 불리는 것도 아니었다. 만약 그랬더라면 그는 막노동을 더 하다가 건설업자가 되어 큰돈을 벌어서 귀한 것이라면 앞뒤 가리지 않고 수집하는 삶을 살았을 것이다.

밥보다 책을 더 먹고 싶었을 뿐이다

그는 단지 밥보다 책을 더 먹고 싶었을 뿐이다. 누구도 안 읽은 책까지 다 읽고 싶었고, 누구도 안 쓴 글을 맨처음으로 쓰고 싶었다. 그는 비축식량을 ‘생계수단’으로는 삼되, 그것을 삶의 지향으로 여기지는 않는다. 그래서 또 책을 읽고 공부를 한다. 사춘기 이후 늘 하던 일이지만, 사회가 권유하고 허락하고 인정한 이정표대로 따라오지 않았기 때문에 결코 쉽지는 않다. 십진분류표를 따라 읽지 않았기 때문에 자유로웠고, 그래서 자기만의 십진분류표, 자기만의 독자적이며 독창적인 지식의 지도, 자기만이 해독할 수 있는 미묘한 스침과 설렘의 지점을 잘 알고 있지만, 그 길은 스스로 걸어온 길조차 스스로 지울 수밖에 없는 길이었기에 뒤늦게 시작한 공부는 좌충우돌이 된다.

비록 그런 길을 걷지는 않았어도 그렇게 걸어온 독학자의 독서가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잘 아는 몇 분의 스승들이 일일이 참견하기보다는 곁에서 든든히 지켜보기 때문에 이제는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혼자 걷는 길은 아니지만, 그래도 ‘사회생활에 필요한 인간관계’를 형성한 적은 단 한 번도 없기에, 실은 여전히 그는 혼자 읽고 혼자 걷는다.

이런 사람을 만나면 어색하다. 북벽의 다른 코스로 누군가 또 기어오르고 있는 게 아닌가. 이런 길은 단독 행군이어야 아름다운 것이거늘. 더욱이 어쩌다 행로는 엇비슷하였어도 김수영 시인이 ‘거대한 뿌리’에서 해방 직후의 시인 김병욱을 회고하면서 “제철회사에서 노동을 한 강자(强者)다”라고 표현한 것 그대로인 사람, 그를 만나면 나는 어색하다.

그 사람 이름은 전성원. 최근 <길 위의 독서>를 출간하였으며 인천에서 계간 <황해문화> 편집장을 맡고 있다. 그는 서문 ‘읽고 쓰고 나는 산다’에서 이렇게 썼다.

“책을 악보 삼아 ‘나’란 존재를 울림통(공명통·共鳴筒) 삼아 내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담았다. 나를 관통하며 그 안에서 공명했떤 이야기들이다. 미약한 잔향과 공명은 복잡한 사유의 결과물이지만, 글쟁이가 하나의 단어를 선택하는 순간 그것은 지나치게 선명한 입장이 되기도 한다. 저자와 독자는 서로 다른 공간에 존재하며, 글과 글 사이 그리고 문장과 문장 사이에는 수많은 웜홀(worm hole)이 있다. 이 책에 담긴 글이 여러분의 어느 곳에 스며들었다가 어느 곳으로 빠져나올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들 사이에 함께 공감하고 공명할 수 있는 것이 있기를 바랄 뿐이다.”

이 책에 대하여 <황해문화> 주간인 문학평론가 김명인은 “사람과 세상이 책을 매개로 하여 종횡으로 얽힌 수많은 작은 구조물들로 이루어져 있는 소우주”라고 했다. 어떤가? 스스로 단독군장을 메고 길 없는 길로 오랫동안 걸어왔다고 생각하는 독자라면 꼭 한 번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지 않은가.

<정윤수 성공회대 문화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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