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한 해의 시작 1월 1일, 천문학적으로 특별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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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과 지구의 위치만 고려하면 모든 것이 새로 시작하는 동지를 한 해의 시작으로 잡는 것이 합리적일 듯도 한데 어째서 우리는 천문학적으로는 별반 특별할 것 없는 날 새해를 시작할까?

서울 충무로의 한 인쇄소 직원들이 2017년 정유년 달력을 제작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서울 충무로의 한 인쇄소 직원들이 2017년 정유년 달력을 제작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동지, 1년 중 낮의 길이가 가장 짧은 날이며 태양의 남중고도가 가장 낮은 날이다. 실제 날씨는 1월이나 2월에 더 춥게 느끼기는 하지만, 천문학적으로는 겨울이 그 끝에 다다른 날이어서 ‘동지(冬至)’라고 부른다.

반복되는 운동에서 한쪽 방향으로 끝에 다다르면 그 순간 반대방향으로 운동을 시작한다. 동지는 겨울의 절정이자 동시에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여정의 시작이다. 태양의 남중고도가 가장 낮은 날이므로 그 다음날부터는 날마다 태양의 고도가 높아지고 낮도 점점 길어진다.

이런 특징 때문에 여러 문명권에서 동지는 각별한 의미를 가진다. 태양의 남중고도가 가장 높아지는 하지도 중요하지만, 따뜻한 여름의 절정인 하지는 동지만큼 절실한 느낌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동지는 새로운 희망의 절기라는 의미가 있다. 추운 겨울이 반환점을 돌았다는 것은 황량하고 삭막한 겨울도 끝이 있으니 조금만 더 버티면 살아남아 돌아오는 봄을 맞을 수 있다는 뜻이다. 우리가 벽사의 의미를 담아 팥죽을 먹고(사실은 그런 의미는 나중에 붙인 것이고, 겨울에 구할 수 있는 식재료로 따스함을 즐긴다는 의미가 더 클 수도 있지만) 새로운 시작을 기원하듯, 겨울이 추운 나라들에서 동지는 새출발의 희망을 전하는 절기였다.

그런데 한 해가 시작하는 것은 1월 1일이다. 이렇게 보면 동지는 12월 22일 또는 23일이라는 참으로 애매한 날짜에 오는 듯하다. 태양과 지구의 위치만 고려하면 모든 것이 새로 시작하는 동지를 한 해의 시작으로 잡는 것이 합리적일 듯도 한데 어째서 우리는 천문학적으로는 별반 특별할 것 없는 날 새해를 시작할까? 물론 이란처럼 춘분을 새해의 시작으로 삼는 나라도 있다.

문화와 종교에 따라 바뀐 한 해의 시작
태양력을 썼던 고대이집트에서는 가장 밝은 별인 시리우스가 태양이 떠오르기 직전에 떠오르는 날을 새해의 시작으로 삼았다. 봄은 나일강이 범람하기 시작하는 시기이며, 범람 후 시작될 한 해의 농사를 준비하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이집트 태양력을 로마에 도입하면서 1년의 시작을 봄에서 겨울로 옮기는 등 몇 가지를 바꾸었는데, 이때 춘분을 3월 25일로 정하고 그에 따라 역산한 1월 1일이 새해가 되었다.

로마제국이 유럽 문명의 표준을 확립하면서 로마의 달력은 전 유럽으로 퍼져 나갔고, 카이사르의 이름을 따서 ‘율리우스력’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하지만 천체의 움직임이라는 것이 인간이 지각하는 시간의 단위와 딱 맞아 떨어지지 않는 법이어서 미세한 오차가 누적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기원전 45년 정한 율리우스력을 16세기까지 그대로 쓰다 보니, 달력의 날짜와 천체가 알려주는 계절이 열흘 가까이 차이가 나게 되었다.

열흘이 뭐 대수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중세유럽은 종교가 지배하던 사회였고 종교적인 날짜는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것이었다. 유럽은 로마제국 이래로 태양력을 썼지만 예수가 활동할 당시의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태음력을 따랐기 때문에 성서에 나오는 날짜들의 해석을 두고 논의가 분분했다. 특히 부활절의 날짜가 골칫거리가 되었다. 요한복음의 기록에 따르면 예수가 부활한 것은 ‘유월절 뒤 첫 안식일’인데, 유월절은 춘분이 들어 있는 달(니산)의 보름날이다. 따라서 부활절은 춘분 뒤 첫 보름 뒤 첫 일요일이 되므로 춘분의 날짜가 열흘씩 바뀌어 버리면 기독교 전례에 혼란이 일어날 수 있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가톨릭교회는 트리엔트공의회(1545∼1563)에서 역법의 개정을 결의했다. 1582년, 여러 해의 연구 끝에 1년의 길이를 365.25일에서 365.2425일로 줄인 새 달력이 나왔고, 교황 그레고리오 13세가 반포한 이 달력은 ‘그레고리력’이라는 이름으로 보급되었다. 율리우스력 1582년 10월 4일 다음 날은 열흘을 건너뛰어 그레고리력 1582년 10월 15일이 되었고, 2017년 현재까지 서양식의 달력을 쓰는 나라들은 이 그레고리력 안에서 살고 있다. 잠깐씩 벗어나기도 했지만 대체로 그렇다.

‘잠깐씩 벗어났던’ 사례 중 하나는 프랑스 대혁명기의 혁명력이다. 계몽사상의 세례를 받은 프랑스의 혁명가들은 모든 것을 일목요연하게 수학적으로 정리하고자 했다. 시간과 날짜를 세는 방식도 예외가 아니었다. 인치, 실링, 온스, 피트 등으로 12진법과 60진법 등이 뒤섞인 길이와 무게의 단위를 10진법으로 모두 통일하는 것이 더 편리하다면, 시간은 왜 안 그렇겠는가? 하루를 10시간으로, 한 시간을 100분으로 나누면 일, 시, 분 사이의 환산이 훨씬 편해지지 않겠는가?

세상이 바뀌면 달력도 바뀌더라
이에 따라 프랑스 혁명정부는 1793년 새로운 달력과 시간 제도를 선포했다. 하루는 10시간, 한 시간은 100분, 1분은 100초가 되었다. 열두 달의 이름도 로마 신의 이름을 딴 것에서 벗어나 가을에는 ‘포도달’(방데미에르), 여름에는 ‘열의 달’(테르미도르), 봄에는 ‘새싹의 달’(제르미날) 등 더 합리적이라고 여기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한 해의 시작은 포도달의 첫날이자 추분이었다.

미터법이 성공한 것과는 달리 달력은 민중의 문화와 깊이 얽혀 있기 때문에 이렇게 하루아침에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혁명력은 일상생활의 혼란만 야기한 채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1805년 폐지되고 말았다. ‘브뤼메르 18일의 쿠데타’와 같은 역사적 사건의 이름으로서만 오늘날 간간이 입에 오르내릴 뿐이다.

그레고리력은 프랑스 혁명가들의 눈에는 낡고 비과학적으로 보였을지 모르지만, 어쨌든 근대 서구사회의 달력으로 살아남았다. 서양이 다른 문명들에게 과학기술의 힘을 과시하는 시절이 되자 그레고리력은 다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달력으로 여겨졌다. 일본은 메이지유신 직후 음력을 철폐하고 그레고리력을 받아들였으며 조선에도 압력을 넣어 1895년 말 소위 을미개혁의 일환으로 태양력을 도입하도록 했다. 음력 1895년 11월 16일의 바로 다음날은 양력 1896년 1월 1일이 되었고, 이렇게 갑작스럽게 우리는 양력 세상으로 내던져졌다.

다가오는 1월 1일은 이런 우여곡절을 거쳐 한국인이 122번째로 맞는 양력설이다. 1월 1일이 천문학적으로 큰 의미를 지닌 날이 아니라 해도, 지구가 365번 남짓 자전할 동안 모두들 분주하게 살아왔고, 앞으로 다시 지구가 한 바퀴 공전할 동안 삶을 이어나갈 것이다. 이제 태양의 고도도 다시 올라가기 시작하는데, 수고했다고 잘해 주었다고 스스로와 서로를 다독여주기 적절한 때가 아닐까.

<김태호 (전북대 한국과학문명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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