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서구는 문명이고 비서구는 미개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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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세기에 걸쳐 서구가 생성하여 교육하고 전파해온 인류의 집단적 착각, 즉 ‘서구는 계몽적이고 도덕적이며 현대화된 우월한 문명이고, 비서구는 야만이거나 미개하거나 심지어 부도덕하다’는 거대한 사고체계를 뒤집어버린 책이다.

2002년 10월, 스페인 북부의 고도 오비에도 캄포 아모르 극장. 말쑥하게 차려입은 두 명의 저명인사가 수많은 인파의 박수를 받으며 들어섰다. 그들은 스페인 왕실이 수여하는 아스투리아스 왕자상을 수상하러 온 것이다.

노벨상의 여러 수상자들과 그 명단이 겹치는 이 상은 스페인 펠리페 왕세자의 공식 칭호인 ‘아스투리아스’를 따서 1981년부터 시상하는 것으로 사회운동, 문화예술, 사회과학, 스포츠 등 8개 분야에서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사람들에게 수여해 왔다. 노벨상에는 없는 스포츠 분야가 특징인데 육상의 칼 루이스(미국·1996년), f1 그랑프리의 미하엘 슈마허(독일·2007년), 테니스 스타 라파엘 나달(스페인·2008년) 등이 수상했다. 러시아의 높이뛰기 선수 옐레나 이신바예바도 2009년에 받았다. 과학자 스티븐 호킹, 음악가 밥 딜런과 레너드 코헨, 닌텐도사의 미야모토 시게루,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 건축가 프랭크 게리 등 그 명단이 ‘역대급’이다.

팔레스타인 출신의 문명비판론자이자 영문학자였던 에드워드 사이드(1935~2003).

팔레스타인 출신의 문명비판론자이자 영문학자였던 에드워드 사이드(1935~2003).

스페인 왕실 아스투리아스 왕자상 수상

프랭크 게리는 2014년 10월 23일 거행된 시상식 후 기자회견에서 “건축은 똥이다”라는 답변을 하여 충격을 던진 바도 있다. 이 정도는 아니지만, 2002년에 시상식에 참석한 두 사람은 수상연설에서 그들이 할 만한 말, 아니 반드시 해야만 하는 말을 단호하게 천명했다.

“스페인의 역사 곧 이슬람과 유대교와 기독교의 역사는 전통과 신념의 공존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는 넓게는 문화, 좁게는 음악이 갈등을 해결할 대안이라 믿는다. 우리는 정치보다는 사람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살아남기 위해서 계속 모른 체해서는 안 된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여 우리는 하나의 공동체가 되었다.”

어떤 공동체? 다름 아닌 두 명의 수상자, 즉 비판적 문화이론가 에드워드 사이드와 탁월한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이 함께 조직한 ‘서동시집 오케스트라’다. 유럽(서양·West)과 아시아(동양·East·보다 정확히는 중동지역을 가리킴)의 문명적 대화와 연대를 200여년 전에 추구했던 독일의 문호 괴테의 시집에서 따온 이 ‘서동시집 오케스트라’는 사이드와 바렌보임이 끝없는 갈등과 유혈사태로 치닫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문제를, 나아가 인종·종교·문화의 ‘다름’이 빚어낸 ‘차이’의 억압과 투쟁과 권력 경쟁의 세계를 조금이라도 치유하기 위해 전개한 문화운동이다.

그들 자신이 이중의 정체성을 갖고 있다. 세계적인 지성으로 꼽히는 사이드는 팔레스타인 출신이고, 지휘자 바렌보임은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났지만 10살 때 이스라엘로 이주한 유대인이다. 이들은 자신들과 같은 출신 배경을 가진 젊은 음악가들을 ‘서동시집 오케스트라’로 조직하여 유럽 각국은 물론 분쟁지역까지 돌아다니면서 연주를 했다. 2011년 8월에는 한국을 방문하여 서울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베토벤의 주요 교향곡을 연주하고, 마지막 날에는 파주 임진각 평화누리 야외 공연장에서 베토벤의 9번 ‘합창’을 공연하기도 했다.

에드워드 사이드의 저서 「오리엔탈리즘」 책 표지 이미지.

에드워드 사이드의 저서 「오리엔탈리즘」 책 표지 이미지.

그들의 공연은 그 연주의 수준 여부를 차치하고, 문화·정치적 의미가 큰 행동이었다. 분쟁지역에서의 공연은 원만하게 진행되지 못했으며 신변 위협을 받았다. 2006년 8월의 베를린 공연 때는 중동 정세의 악화에 따른 유럽 주요 도시의 위험경보 때문에 몇몇 단원들이 빠져나가기도 했다. 2005년 8월,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분쟁과 공격과 저항의 장소인 팔레스타인의 라말라 지역 공연은 단원 전부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스페인 정부가 발행한 여권을 써야 했고, 무장경찰의 엄격한 경호(동시에 통제)를 받으며 진행되었다. 현지에서의 외출은 일절 허용되지 않았다. 이 과정을 파울 슈마츠니 감독이 다큐멘터리 영화로 제작했다.

그 화면에서, 아스투리아스 왕자상을 수상하는 사이드의 묵직한 연설을 들을 수 있다. 조금 더 보면 이번에는 바렌보임의 연설 장면을 볼 수 있다. 2004년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의회에서 열린 울프재단 시상식. 음악분야 수상자로 선정된 바렌보임이 이스라엘 대통령과 울프재단 이사장이자 이스라엘 정부의 교육문화체육부 장관이 냉랭하게 지켜보는 가운데 감동적인 연설을 한다.

“이스라엘 독립선언문에는 모든 접경국 그리고 그 국민들과 평화와 우호를 유지할 것을 약속한다고 적혀 있다. 현재 상황에 대해 질문을 하고 싶다. 남의 땅을 점령하고 그 국민을 지배하는 것이 독립정신에 부합하는 것인가? 독립이라는 미명 하에 다른 나라의 기본권을 희생시키는 것이 합당한 일인가? 우리 유대민족이 고난과 박해의 역사를 보냈다고 이웃국가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그들의 고통을 모르는 척하는 것이 합당한 일인가?”

1970년대 후반에 던진 이 책의 충격파

장내는 술렁인다. 교육문화부 장관이 마이크를 잡았다. “오랜 논의와 토론 끝에 어렵게 바렌보임씨를 수상자로 결정했으나 그는 이 자리에서 국가를 공격하고 있다.” 지휘자 바렌보임이 마이크를 요청한다. 그는 “국가를 공격한 것이 아니라 독립선언의 정신을 돌이켜보고 싶다”고 말한다.

이 다큐멘터리를 보면 바렌보임은 매우 진지하고 학구적인 자세로 사이드를 회고한다. ‘서동시집 오케스트라’ 운동을 함께 한 사이드가 2003년에 타계하였기 때문이다. 바렌보임이 묵직하게 회고한대로 “없어서는 안될 친구이자 지적인 자극을 준” 사이드는 단지 바렌보임만이 아니라 인류 전체에게도 그와 같은 무게를 지닌 지식인이다.

수 세기에 걸쳐 서구가 생성하여 교육하고 전파해온 인류의 집단적 착각, 즉 ‘서구는 계몽적이고 도덕적이며 현대화된 우월한 문명이고, 비서구는 야만이거나 미개하거나 심지어 부도덕하다’는 거대한 사고체계를 뒤집어버린 학자다. 그 대표작이 <오리엔탈리즘>이다.

이 책에 대한 비판적 검토가 숱하게 제출되었지만 1970년대 후반에 던진 이 책의 의미와 충격파는 여전히 유효하다. 앞서 언급한 서구문명 우월성의 허구는 물론이고 이 ‘서구/비서구’라는 차별적 이분법을 ‘도시/농촌’, ‘남성/여성’, ‘기독교/기타 종교’, ‘백인/비백인’ 등으로 확장해도 동일한 사고방식의 억압구조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뜻밖의 재미’도 많다. 근대 서구의 저명한 학자, 소설가, 과학자들이 얼마나 비서구 사회를 잘못 알았는지, 또 왜곡했는지, 그러면서도 매혹당했는지 볼 수 있다. 이를테면 프랑스의 소설가 플로베르는 이집트를 여행하면서 그곳의 ‘밤의 문화’에 빠져들었다가 정신적 혼란에 빠지기도 한다. 대립과 전쟁의 20세기는 물론 편견과 차별과 테러가 빈번하는 21세기에도 여전히 이 세계의 본질을 파헤치는 데 열쇠가 되는 책이 바로 <오리엔탈리즘>이다. 사이드 자신이 ‘서설’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지 않은가. “만일 이 지식이 동양에 대한 새로운 자세의 확립에 하나의 도움이 된다면, 참으로 ‘동양’과 ‘서양’이라는 관념을 같이 소멸시키는 것이 된다면, 그때 우리는 레이먼드 윌리엄스가 ‘고유한 지배양식’을 ‘버리는 것’이라고 부른 과정으로 조금 더 진전하게 될 것이다.”

<성공회대 문화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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