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앞에 인간은 뭘 할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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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재난 앞에 인간은 뭘 할 수 있나

괴멸
안조 다다시 저·이규원 역·책이다·1만4800원

일본 관동 지방에 거대한 지진과 분화가 일어나는 재난을 그린 <괴멸>은 1973년에 나온 고마쓰 사쿄의 소설 <일본침몰>을 연상시킨다. <일본침몰>은 영화와 드라마로도 각색되어 대단한 반향을 일으켰고, 2006년에도 다시 영화로 만들어졌다. 지진과 화산, 태풍 등의 자연재해가 일상인 일본에서 재난물은 다른 나라에 비해 각별하다. 먼 곳의 이야기가 아니라 당장 내일이라도 실현될 수 있는 현실적인 위기로서 인식된다. 그렇기에 재난을 신으로 섬기기도 했고, 파괴의 신으로서 고질라도 존재할 수 있었다.

도쿄 앞바다에 지하 맨틀층의 지열을 이용하는 ‘바벨 시스템’ 지열발전소가 세워지고,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한 이산화탄소 저장소가 지하에 만들어지는 가까운 미래. 관동지역에서 강력한 지진과 분화 현상이 잇따른다. 관동지역 지하에 거대한 마그마방이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게 된 지진학자 우지쓰구는 정부의 요청에 따라 지진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다. 우지쓰구의 제자이며 지열발전소의 수직갱을 시공했던 기류가 대재앙을 막을 책임자로 영입된다.

재난물은 거대한 재난이 발생하고, 더 큰 피해를 막기 위해 주인공이 희생하는 이야기를 주로 그린다. 미증유의 재난 묘사와 재난을 맞은 사람들이 드라마 중 어디에 비중을 두는가가 다를 뿐 재난물은 거의 비슷하다. <괴멸>을 굳이 따지자면 재난의 묘사가 매우 뛰어난 소설이다. 그럼에도 결국 재난은 인간의 시선에서 그려질 수밖에 없다. 재난을 맞은 인간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 공학자이며 건설회사에서 일한 안조 다다시는 <괴멸>에서 재난상황을 맞은 기술자, 엔지니어의 책임과 결단을 감동적으로 그려낸다.

자연의 분노인 재난은 여전히 인간의 힘으로 원천봉쇄할 수 없다. 그럼에도 인간의 무지와 욕심은 자연의 분노를 부추기고 때로는 직접 방아쇠를 당기기도 한다. 그들의 우행이 미래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는다. 그들이 도전할 상대의 실체가 “지구 탄생부터 오늘날에 이르는 46억년의 역사”라는 것을 잊는다.

안조 다다시는 공학자 출신 작가답게 기술자에 대한 넘치는 애정을 드러낸다. “중요한 것은 타고난 재능이 아니라 넘치는 호기심이야. 그것이 기술자를 움직이는 힘이지. 또 하나, 지식은 밥벌이나 과시용으로 익히는 게 아니야.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어떻게 맞서야 하는지를 알기 위해서 익히는 거야 (…) 기술은 사람을 가린다. 근면, 성실, 겸손, 그리고 포용력. 이 중에 하나만 결여해도 인명을 책임질 자격이 없다. 과시욕, 무례, 오만. 이 중에 하나만 품어도 그 자는 인간을 배반하는 기술자가 된다.” 기류는 수직갱을 파던 중에 일어난 사고의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동료를 구하지 못한 트라우마는 지금도 남아있다. 그럼에도 기류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 다시 지하로 내려간다. “참된 기술자라면 자신이 해야 하는 일에 의문이나 두려움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관료와 기업가와 학자가 불러온 재앙을 기술자가 자신의 손으로 최소화시킨다. 기술자들의 헌신을 보는 것, 그리고 재앙이 어떻게 일어나고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세세하게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괴멸>은 흥미진진하다.

<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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