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망하지 말고 다시 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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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실망하지 말고 다시 해보세요

다시, 연습이다
글렌 커츠 저·이경아 역·뮤진트리·1만5000원

한 문장도 쓰지 못하는 날이 열흘이 넘었다. 이럴 땐 일종의 글쓰기 연습으로 이 책 저 책 부지런히 읽는다. 읽기로 쓰기를 자극하고 글 쓰는 법을 익히려는 것인데 모든 책이 소용이 되진 않는다. 아무것도 안 쓰는 게 낫지 싶은 책이 있는가 하면, 아예 쓸 엄두조차 못 내게 기를 죽이는 책도 있다. 하지만 <다시, 연습이다> 같은 책을 만나면 연습에 불이 붙는다. ‘연습’을 주제로 350쪽 넘게 글을 풀어가는 필력과 거기 담긴 깊고 풍부하고 가슴 아린 이야기까지, 놓치고 싶지 않은 문장들이 이어진다.

저자 글렌 커츠는 전문 연주자를 꿈꾸며 15년을 매일같이 연습했던 전직 음악가다. 연습에 이골이 났을 법하다. 한데 그가 말하는 연습은 ‘지루하고 고되지만 성취를 위해 감내해야 하는 과정’이란 통념을 넘어선다. 그는 연습이란 “당신이 스스로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이고, “당신이 이상으로 여기는 것, 즉 당신이 열망하는 장엄함을 향해 손을 뻗지만 끝내 움켜쥐지 못하고 놓쳐버리는 감각을 느끼려는 행위”라고 정의한다.

책은 연습이 마지못한 과정이 아니라 특별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과정임을 보여준다. 연습을 하려면 우선 꿈이 있어야 하고, 이를 표현하려는 열망과 실행하는 추진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하고 싶은 일이 있고 못하는 걸 하려는 용기가 있어야만 연습을 시작할 수 있다. 하여 연습을 한다는 건 그 자체로 기쁨이다. 그럼에도 연습은 힘들다. 반복되는 일상이 그렇듯 따분한 시간을 견뎌야 하고 몸을 쓰는 일이라 육체적 고통도 따른다. 가장 힘든 건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자신의 한계를 끊임없이 느껴야 한다는 것. 머릿속으로 그리는 완벽함은 연습하는 순간 사라지고 아무리 애써도 안 될 거라는 좌절감이 밀려든다. 연습의 동력이었던 이상은 약해지고 분노와 절망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그리고 어느 날, 연습 대신 후회를 곱씹는 자신을 발견한다. 이것은 커츠 자신의 이야기고, 예술이든 운동이든 공부든 뭔가를 간절히 꿈꾸었으되 그로 인해 상처 입은 이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익숙한 이야기다. 하지만 책은 연습의 시절은 끝났다는 쓸쓸한 회고담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야기는 다시 시작된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그는 한때 자신의 과거이자 미래였으나 끝내 현재로 만들지는 못했던 기타를 꺼내 든다. 그리고 더 이상 음악가가 되겠다는 꿈 없이, 20년 전 젊은 자신을 열광시켰던 바흐의 파르티타를 연습하기 시작한다. 손은 무뎌졌지만 그는 절망하지 않는다. 이번엔 단지 바흐를 연습하는 것이 아니므로. 이제 그는 “사랑과 상실에 관한 이야기를 연습이라는 형태로 자신에게 들려주는 법을 배워가면서 자신에 대한 실망을 극복”하기 위해 연주한다. 이렇게 “새사람이 되려고 애쓰는” 순간 “연습이 자신의 진실한 모습을 보여줄” 것을 믿으면서.

그러므로 “정말 중요한 것은 계속하는 것”이고, “모든 것은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연습하느냐에 달렸다.” 그가 말했듯, 우리는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할 때 항상 능력의 한계에 부딪힌다.” 지금 당신이 자신의 한계에 절망한다면 그것은 당신이 열망하기 때문이니, 간절히 원하는 것이 있는 인생보다 빛나는 것은 없다.

<김이경 소설가·독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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