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련님의 시대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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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일본의 어두운 근대

<도련님의 시대> 세키가와 나쓰오 지음·다니구치 지로 그림 | 오주원 옮김·세미콜론·각권 1만1000원

지금이 최악의 격동기라는 인식은 유사 이래 변함없는 진실이다. 오늘은 매번 버겁고 내일은 늘상 불확실하다. 북핵위기가 물러가는가 했더니 경제위기라는 파도가 밀려온다. 행복해지기 위해 인류가 수천 년 동안 피땀을 흘린 결과가 고작(!) 지금의 세계인지 아득한 심정이다. 글로벌 지구촌에서 민족과 종교 간 갈등은 더 만연하고 자본이 약속한 풍요는 양극화로, 자유는 고립감을 한층 조장하는 역설이 펼쳐지고 있다.

[북리뷰]도련님의 시대 外

선의가 악행으로 탈바꿈한 근저에 근대가 있다. 근대야말로 현재의 삶을 짓누르는 난제들의 출발점이다. <도련님의 시대>는 일본의 국민소설가 나쓰메 소세키를 프리즘으로 내세워 ‘저팬(Japan)’을 만든 메이지 시대를 들여다보는 극화다. <고독한 미식가>의 다니구치 지로가 그림을, 세키가와 나쓰오가 대본을 맡아 장장 10여년에 걸쳐 5권으로 완성했다. 우리 역사에 결정적인 영향(악영향)을 끼친 메이지 시대가 현대 일본의 원형질을 형성한다는 측면에서도 흥미로운 작품이다.

‘혹독한 근대 및 생기 넘치는 메이지인’이라는 부제처럼, 새로운 소설을 구상하는 나쓰메 소세키의 창작 과정을 실마리로 당시를 살아간 지식인(도련님)들의 고뇌와 대응이 펼쳐진다.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군국주의의 가속도를 올릴 때, 구시대의 도련님들은 애인에게 버림받고 시대에도 뒤처진다. 본래 세상 물정에 어두운 도련님이 현실에 지는 것은 당연하다. 죽어서 국민시인으로 추앙받는 이시카와 다쿠보쿠도 마음 내키는 대로 ‘지르면서’ 가족과 친지를 고생시키다 요절했다.

그럼에도 시대를 이기려면? 혁명의 길을 걷는 것이다. ‘아담이 밭을 갈고 이브가 실을 잣는 시대에 귀족이 있었던가’라는 구호를 외치며 경찰과 대립하는 일본 사회주의자들의 시위는 인상적이다. 군사문화가 확산되는 만큼 반체제 풍조도 물결치는 것이다. 투사가 된 도련님들은 메이지 일왕을 암살하려는 ‘대역사건’으로 나아간다. 핼리혜성이 찾아온 1910년 무정부주의자인 고토쿠 슈스이를 주범으로 해서 12명이 밤하늘의 유성우처럼 사라진 것이다.

대역사건이야말로 침소봉대의 전형이며 이후 일본 제국주의와 한반도에서 일어난 온갖 조작사건의 장본인이다. 당시 일본 권력층은 조잡했던 암살 모의를 전국적 조직 사건으로 확대시키면서 사회주의의 싹을 깡그리 뽑아버리려고 작정했다. 즉 일본의 근대는 서로 알지도, 만나지도 못한 사람을 엮어서 일종의 ‘사법살인’을 자행한 것이다. 이 혹독한 폭력과 억압에 순응했던 일본 국민들은 끝내 비참한 몰락과 파국을 맞게 된다.

부국강병을 모토로 출발한 일본적 근대는 폭주기관차처럼 맹목적으로 내달렸고 그 변화의 속도에 적응하지 못하면 시인이든 혁명가든 예외 없이 도태됐다. 지금 또한 근대가 낳은 한반도 냉전구조의 해체와 주기적 경제위기의 도래로 대변혁이 일어나고 있고, 바로 이 지점에서 100년 전 일본 도련님들의 발자취가 이곳에 사는 우리와 교차하게 된다.

<정승민 독서팟캐스트 일당백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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