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에 걸린 연쇄살인범의 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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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쇼박스

(주)쇼박스

제목 살인자의 기억법 (Memoir Of A Murderer)

제작연도 2017년

제작국 한국

러닝타임 118분

장르 범죄, 스릴러

감독 원신연

출연 설경구, 김남길, 설현, 오달수, 길해연

개봉 2017년 9월 7일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개인적인 취향이겠지만 누군가의 ‘기억’ 또는 ‘고백’을 중요 모티브로 전면에 내건 작품들은 그리 호감이 가지 않는다. 오랫동안 적잖은 영화들을 봐오며 시나브로 쌓인 후천적 방어본능이라고나 할까. 돌이켜보면 당대 걸작 칭호를 받았던 유사 소재 영화들에서 그리 큰 감흥을 받지 못한 탓이 클 것이다. 기억에 남는 작품으로는 <엑스맨> 시리즈를 연출한 브라이언 싱어 감독의 초기작 <유주얼 서스펙트>(1995)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범죄현장의 유일한 생존자가 털어놓는 진술과 회고로 진행되는 이 영화는 성공한 저예산 상업영화의 전형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이후 숱한 영화에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기발한 반전으로 평가받는 마지막 장면은 앞서 장황하게 늘어놓았던 이야기에 집중해 귀 기울였던 관객들의 맥을 빼고 기만하는 무책임함으로까지 느껴지기도 한다.

지금은 장인의 경지로 대접받고 있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초기작 <메멘토>(2000) 역시 독창성과 기교는 인정하지만 작품에 부여된 화려하고 과도한 평가는 다소 극성스런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평행선상의 시간을 분해해 재조립하는 <메멘토>의 과감한 실험성이 동반한 생경함과 위태로움은 최근작 <덩케르크>에서 규모는 다르지만 다시 한 번 반복된다.

영화 자체가 이미 허구이지만 ‘기억’과 ‘고백’을 소재로 전면에 내건 작품들이란 허구의 영화가 동반하는 현실적 허무함을 시작부터 대놓고 인정하는, 또는 작정하고 이용하는 작품들이다. 전부는 아니라 해도 대부분이 그렇다. 이런 작품들과 비교하자면 차라리 아예 허무맹랑한 판타지나 공포영화가 더 현실적으로 보이고, 적어도 관객들을 배려하는 작품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작가 김영하가 2013년 내놓은 동명의 소설을 각색한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 역시 치매에 걸린 연쇄살인범의 혼란스런 사고능력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주인공이 자신의 혼란스런 기억에 대해 느끼는 불안과 불신은 스크린 밖에서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심정과 다르지 않다. 두 시간 남짓 진행되는 이야기는 언제든지 망상이나 거짓으로 돌변할 수 있고, 때로는 반전이라는 이름으로 뒤통수를 칠지 모르기 때문이다. 다행히 영화는 우려 이상의 만용까지 발휘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획기적 혁신으로 나아가지도 않는다. 특별한 소재의 장단점이 두루두루 예상했던 만큼 공존하는 작품이다. 독특한 설정이나 배우들의 노력한 연기,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일관된 분위기는 눈에 띄지만 매력으로까지 치환되지는 않아 아쉽다.

어린 시절의 아픈 과거로 인해 한때는 사회악을 처단하겠다는 명목 하에 연쇄살인을 일삼았던 병수(설경구 분)는 17년 전 뜻밖의 사고를 당한 후 살인을 멈췄다. 이후 지방 소도시에서 동물병원을 운영하며 금지옥엽 외동딸 은희(설현 분)와 조용히 살고 있던 그가 치매 판정을 받으면서 평온한 일상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설상가상으로 우연히 마주친 태주(김남길 분)가 또 다른 연쇄살인자임을 직감한 뒤부터 위태롭던 그의 영혼은 더 깊은 나락으로 추락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려는 몸부림은 잊고 있던 과거의 쓰라린 진실로 그를 이끈다.

여담으로 한 주 앞서 개봉한 <브이아이피>와 연계해 왜 한국영화 속에는 연쇄살인범, 또는 잔인한 살인 장면이 이리도 많이 등장하는지 새삼 진지하게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최원균 무비가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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