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적폐는 아직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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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엣나인필름

㈜엣나인필름

제목 공범자들

영제 Criminal Conspiracy

감독 최승호

출연 최승호, 김경래, 김보슬, 이용마, 김민식, 김장겸, 고대영, 김재철, 백종문, 길환영, 이명박

상영시간 105분

개봉 2017년 8월 17일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한 달쯤 전이던가. 땡볕이 내리쬐는 여의도 KBS 사옥 앞에서 그를 봤다. 최승호 PD. 같은 행사를 ‘취재’하러 온 것이었다. KBS 새노조가 점심시간을 이용해 연 고대영 사장 퇴진 집회였다. 무더운 날씨에 카메라 삼각대를 어깨에 메고 행사장으로 걸어가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영화 <공범자>들의 영문제목은 ‘criminal conspiracy’다. 형사정책 이론에서 흔히 ‘범죄 공동모의’로 번역하는 단어다. 영화는 묻는다. 누가 ‘범죄’를 기획했는가. 기획자는 누구이며, 공동모의한 하수인들은 누구인가. 영화를 만든 최승호 PD는 지난 2012년 해고되었다. 그는 범죄의 피해자다. MBC 노동조합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좌측 상단에서 그의 이름을 만날 수 있다. 기사를 쓰는 8월 11일, 그는 해고된 지 1879일째다. ‘범죄’는 해고만이 아니다.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는 언론인들을 해고하고, 비제작부서로 발령을 내면서 공영방송을 망가뜨렸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끝난 것이 아니다. 그 전 정권에서 방송의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놓은 장치는 이제 구체제의 수호자들이 버티는 무기가 됐다. 설사 그들이 물러난다고 하더라도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낸 생채기를 치유하는 데는 또 얼마의 시간이 필요할까.

영화는 시작장면부터 ‘피해자’인 최 PD가 가해자인 자신의 해고 윗선을 찾아가 질문을 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가해자로서는 불쾌할 수 있겠다. 프레스센터를 빌려 연 출판기념회에 난데없는 불청객이 찾아와 불쑥 ‘왜 그러셨냐’고 질문을 던지는 식이니. 영화는 연출 때부터 종종 봐온 그런 스릴로 가득하다.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최종적인 범죄의 기획자, 말하자면 끝판왕 격인 MB를 만나러 가는 장면이다. 최 PD는 두 번 MB를 찾아간다. 한 번은 퇴임식을 마치고 이명박 전 대통령 부부가 논현동 사저에 돌아갔을 때다. 동네 주민들의 환영인파 속에서 최 PD가 던진 질문은 PD수첩을 연출할 당시 꼭 그에게 묻고 싶었던 질문이다. “4대강 수심 6m, 대통령께서 지시하셨습니까.” 경호원들이 그를 제지했고, MB는 웃으면서 그의 옆을 지나친다. 경호원에 막힌 그는 이렇게 소리친다. “언론이 질문을 못하게 하면 나라가 망합니다.” 정말 그랬다.

영화의 마지막, 다시 대치동의 MB를 만나러 간 최 PD의 계획은 치밀했다. 건너편 빌딩에 2대의 카메라를 숨겨두고, 같은 팀의 휴대폰은 제지되도록 놔뒀다. 이 전 대통령에게 살갑게 인사를 건넨 그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언론을 파괴한 주범이라는 비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카메라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차에 탄 MB는 답을 한다. 이 ‘백미’는 부디 극장에서 확인하시길.

정권이 바뀌었건만 범죄의 기획자·공범자들은 아직도 고개를 뻣뻣이 들고 있다. 영화의 개봉을 앞두고 MBC의 전·현직 사장들은 “영화 내용 중 상당 부분이 허위이며 명예를 훼손했다”면서 상영금지 가처분신청을 냈다. 영화 <공범자>들이 다루는 언론 잔혹사의 공범들은 정권과 MBC·KBS의 방송사 간부들이다. 다른 ‘공범자들’은 없었을까. 조선일보는 이 영화의 리뷰기사 제목을 이렇게 뽑았다. “상영금지 가처분소송 중인데… ‘공범자들’ 보러 간 방통위원장.”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이 이 영화 시사회에 참석한 것을 두고 한 소리다. 불편부당해야 할 방통위원장이 편파적인 행보를 보인다는 거다. 교묘한 말장난이다. 언론적폐는 아직 살아있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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