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팬지 시저는 왜 인간의 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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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폭스코리아

20세기폭스코리아

제목 혹성탈출: 종의 전쟁

원제 War for the Planet of the Apes

감독 맷 리브스

출연 시저_앤디 서키스, 대령_우디 해럴슨, 배드에이프_스티브 잔, 노바_아미아 밀러

미국 개봉 2017년 7월 14일

개봉 2017년 8월 15일

러닝타임 140분

등급 12세 관람가

‘협력적 눈 가설’이라는 진화심리학 학설이 있다. 사회적 존재인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마음과 의도를 알아채는 것이다. 다른 영장류와 다르게 발달한 것이 그래서 눈이다. 사람의 눈은 예외적으로 넓은 흰자를 가지고 있다. 장대익 교수의 책 <울트라 소셜>에서 이 대목을 읽고 컴퓨터에 저장해 놓았던 영장류를 다룬 다큐멘터리들을 다시 봤다. 정말이었다. 다른 동물 역시 눈동자와 눈자위가 있지만 거의 색깔이 구별되지 않는다. 개나 고양이와 같은 반려동물을 길러본 사람이라면 그 반려동물의 ‘얼굴표정’에서 풍부한 감정을 읽어낸다. 하지만 핵심은 다시 눈이다.

장 교수는 앞서의 책에서 이 영화 시리즈를 거론했다. 주인공 시저가 하고 있는 눈은 침팬지의 눈이 아니라고. 책을 덮고 생각해보니 과연 그랬다. 7월 31일, 시사회를 통해 이 3부작 영화의 마지막 편 <혹성탈출, 종의 전쟁>을 봤다. 장 교수의 언급 덕분에 계속 주의를 끄는 것은 시저의 얼굴표정, 특히 눈이었다. 그런데 왜 시저는 인간의 눈을 하고 있었던 걸까.

<혹성탈출>은 프랑스 작가 피에르 불의 1963년 소설 <원숭이들의 혹성(planet of the Ape)>이 원작이다. 원래 영화 제목은 그대로이지만 혹성탈출이라는 이름은 의역해 번안한 제목이다. 1968년부터 영화 시리즈가 만들어지기 시작해 ‘최후의 생존자’(1973)까지 총 5편이 만들어졌다. 2001년 <혹성탈출>의 리메이크가 만들어졌고, 2011년부터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을 시작으로 이 영화까지 총 3편의 리부트 영화가 나왔다.

시저가 인간의 눈을 하게 된 것은 애초의 설정 때문이다. 진화는 이렇게 ‘시작’된다. 글로벌 기업 ‘젠-시스’는 치매치료제를 개발 중이다. 새로 개발된 신약 ALZ-112를 주사받은 침팬지의 이름은 ‘밝은 눈’이다. 시저는 그의 아들이다. 약물의 영향으로 태어날 때부터 높은 지능과 특히 밝은 녹색의 눈동자를 가진 것이 특징이었다. 시저가 인간의 언어 “No!”를 처음하기 전 그는 ALZ-113을 훔쳐 동료 유인원에게 뿌린다. 유인원들의 지능 향상엔 인간이 개발한 약물이 있었던 것이다. 설정이 처음부터 그랬으니 옥의 티라든가, 진화심리학적으로 오류를 말하긴 그렇다.

3부작의 주인공은 처음부터 끝까지 시저다. 유년기와 청년기, 그리고 장년·노년기가 그려진다. 영웅서사다. 인류가 발달시켜온 이 영웅서사를 침팬지 시저를 중심으로 다시 풀어내는 것이다. 3편의 주제는 ‘엑소더스’다. 인류를 멸절 상대로 보았던 과격파들과 달리, 공존을 말하는 시저의 이상이 왜 도달하기 힘든 목표인지를 그리고 있다. 그리고 고난. 시저는 다시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유인원들, 그리고 말하는 능력이 쇠퇴하기 시작한 인간 소녀를 ‘대의’해 투쟁에 나선다. 시저는 약자들의 영웅이다. 유명한 엑소더스 서사에 맞춰 이야기하자면 모세이고. 영화가 공들여 묘사하고 있는 것은 시저의 고뇌다. 중요한 선택의 국면에서, 과격파 코바의 원령이 나타나 “당신이 하는 짓 역시 나와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명백히 감독이 의식한 것은 셰익스피어의 고전 희곡들이다. ‘시저’라는 이름에서 ‘브루투스 너마저’의 케이사르가 떠오를 텐데, 브루투스는 전작에 나오는 코바로 충분했던 것 같다. 앞의 리부트 두 작품을 먼저 보고 극장에 가면 좋긴 하겠지만, 딱히 전작을 보지 않더라도 크게 부담은 없는 수준의 완결성을 가진 작품이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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