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캠페인은 안 바뀌는데 정치는 바뀔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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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식의 사회]선거 캠페인은 안 바뀌는데 정치는 바뀔까?

유권자를 위한 정치 축제는 이번 대선에도 없었다. 축제처럼 펼쳐진 로고송과 춤은 그저 포장일 뿐이었다. 대선 과정은 여전히 살벌했고, 여전히 흉측했고, 여전히 전쟁터였다.

모처럼 날이 좋아 꽃구경하러 나들이를 떠났다. 오래 전 이맘때쯤 가봤던 지방의 작은 마을에 흐드러지게 피었던 봄꽃의 기억을 떠올리며 자동차로 몇 시간을 달려 다시 그곳을 찾았다. 여전히 꽃은 더할 나위 없이 만개했지만 꽃밭에서의 감흥은 예전 같지 않았다. 조용했던 마을은 지자체가 주관하는 소란스러운 축제 행사장으로 바뀌어 있었다. 곳곳마다 노점상들이 틀어놓은 트로트 메들리 음악 소리에 분위기는 어수선했다. 전국 장터를 떠돌아다니는 각설이 공연단들이 여기저기서 두드려대는 꽹과리 소음으로 귀만 따가웠을 뿐 정작 꽃은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날 나는 SNS에 이런 글을 남겼다. “꽃보다 뽕짝, 쇼미더 트로트.”

모처럼 날이 좋아 대선후보의 연설을 구경하러 유세장에 나갔다. 마침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유세장이 펼쳐진다기에 작은 생수병 하나 손에 들고 가벼운 마음으로 그곳을 찾았다. 수많은 지지 인파로 유세장의 열기는 더할 나위 없이 뜨거웠지만 유세 차량에 달린 스피커가 쏟아내는 로고송은 얼마 전 꽃구경 나들이에서 소음으로 인해 겪었던 유쾌하지 못한 기억을 다시 끄집어내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시끄러운 로고송 가락에 맞춰 어설픈 몸동작으로 춤추는 연단 위의 국회의원들의 모습을 보며 느긋한 꽃구경을 방해했던 각설이 공연단을 떠올렸다. 그날 나는 SNS에 이런 글을 남기려다 괜히 선거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것 같아 그만뒀다. “연설보다 공연, 쇼미더 댄스.”

로고송과 춤을 앞세운 자기과시형 캠페인

이런 요란한 선거 캠페인 문화에 대해 한 번쯤은 냉정히 되짚어 볼 때가 됐다. 당연히 선거는 시민들의 정치 축제다. 그리고 로고송과 춤은 이목을 이끌어 청중들을 모으기에 꽤나 효과적인 유세 수단임에 틀림없다. 흥겹고 유쾌한 선거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은 권장할 일이지 나무랄 일은 결코 아니다. 그렇지만 정치 축제라고 해서 선거 캠페인이 꼭 로고송과 춤이 난무한 공연장처럼 꾸며질 필요는 없으며 그리 바람직하지도 않다.

대규모 청중들을 모아놓고 후보자가 열변을 토하는 선거 캠페인은 과거 미디어가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의 유물이다. 1956년 제3대 대선에서 30만명의 인파가 모인 민주당 신익희 후보의 한강 백사장 유세에서부터 1987년 제13대 대선에서 수백만의 인파가 노란 손수건을 흔드는 장관을 연출해 낸 평민당 김대중 후보의 보라매공원 유세에 이르기까지 대규모 청중을 동원한 후보자 연설은 분명 가장 강력한 선거 캠페인 수단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미디어 선거 시대다. TV 토론에 따라 후보자의 지지율이 등락을 거듭하고,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유권자들이 직접 후보자를 검증하고 지지와 반대의 의견을 분출하는 그런 시대다. 로고송과 춤으로 청중들을 모으는 요란한 거리 유세는 후보자의 지지세를 과시하고 선거 운동원들의 사기를 북돋우는 효과는 있을지언정 유권자들로부터 표를 모으는 일에는 별 영향력이 없다. 국회의원들이 교대로 무대 위에 올라가 춤을 추는 행위도 삼권분립이라는 민주정치의 기본 원칙에서 보면 매우 어색한 풍경이다.

국회의원 개개인은 입법부를 구성하는 독자적인 헌법기관으로서의 지위를 갖고 행정부를 견제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국회의원들이 행정부의 수반으로 선출되고자 하는 대통령 후보를 위해 춤추며 청중 동원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정상적인 모습이 아니다. 물론 국회의원이 아닌 당원의 자격으로 소속 정당의 후보를 위해 선거운동에 나선 것이라고 강변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거리 유세에서든 이들이 무대에 오를 때 자신을 국회의원 아무개가 아닌 당원 아무개라고 소개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정책 비전보다 상대 네거티브 공세에 주력

사실 로고송과 춤을 앞세워 축제처럼 연출된 거리 유세는 전체 선거 캠페인 중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흥겨운 한판 공연이 끝나면 연단에 오른 후보자들의 입에서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정책 비전보다는 경쟁 후보를 향한 네거티브 공세가 더 많이 쏟아져 나오고는 했다. 축제 같은 거리 유세가 펼쳐지던 바로 그 시각에도 각 후보 캠프의 대변인실에서는 다음날 언론 보도에 실릴 만한 경쟁 후보 비난 성명을 쏟아내기에 바빴다. 덩달아 각 후보자의 지지자들도 SNS와 문자메시지를 통해 상대 후보를 겨냥한 날선 공격에 합세했다. 그러다보니 선거운동 기간 내내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상위 순위를 장악한 대선 관련 키워드는 주요 정책이나 핵심 공약이 아니라 엉뚱하게도 후보자들의 자녀 이름, 오거리파 같은 지방 조직폭력배, 그리고 입에 담기도 민망한 돼지발정제 따위였다. 유권자를 위한 정치 축제는 이번 대선에도 없었다. 축제처럼 펼쳐진 로고송과 춤은 그저 포장일 뿐이었다. 대선 과정은 여전히 살벌했고, 여전히 흉측했고, 여전히 전쟁터였다. 그래서 유권자들도 여전히 눈살을 찌푸렸다.

아무리 잘 만든 로고송이라도 국보급 가수들의 열창에 한껏 익숙해진 유권자들의 귀를 만족시키기는 힘들다. 아무리 열심히 추는 춤이라도 아이돌 한류 스타들의 현란한 안무에 한껏 익숙해진 유권자들의 눈을 만족시키기엔 역부족이다. 그러니 후보자들이 선거라는 정치 축제의 무대에 올려서 유권자들에게 보여줘야 할 것은 시끄러운 로고송과 어설픈 춤 동작이 아니라 치밀한 정책 개발과 치열한 토론이어야 마땅하다. 당선자를 포함한 모든 후보자들은 이번 대선 기간 중에도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정치를 바꾸고 대한민국을 바꾸겠다고 어김없이 말했다.

하지만 대통령으로 가기 위한 관문인 선거 캠페인 과정에서 진정 새롭게 바뀐 모습을 보여준 후보자는 단 한 명도 찾아볼 수 없었다. 수십 년째 이어지고 있는 청중 동원형 캠페인, 갈수록 강도가 심해지고 있는 네거티브 캠페인, 정책과 토론보다 로고송과 춤을 앞세운 자기 과시형 캠페인은 여전히 바뀌지 않았다. 낡은 선거 캠페인 방식조차 바꾸지 못했는데 과연 제대로 정치를 혁신하고 대한민국을 혁신할 수 있으리라 기대해도 좋을지 모르겠다. 그래서 새 희망 가득 안고 힘차게 첫 발을 내딛는 새 대통령에게 이렇게 작은 견제구 하나 따끔하게 던져본다. “공연보다 정책, 쇼미더 혁신.”

<민경배 경희사이버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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