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 ‘9일간의 감동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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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식의 사회]문재인 대통령 ‘9일간의 감동 스토리’

지난 9일간 펼쳐진 문 대통령의 이야기가 국민들을 감동시킨 것은 그 이야기가 거창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너무 소박하고 당연했기 때문이다. 국민이 원했고, 국민이 해왔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2017년 5월 18일, 5·18 민주화운동 37주년 기념식에선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퍼졌다. 기념식에 참석한 사람들도, 라디오로 듣던 사람들도, TV로 보던 사람들도, 모바일을 통해 생중계를 보던 사람들도, 광주에 있던 사람들도, 서울에 있던 사람들도, 대구에 있던 사람들도, 국내에 있던 사람들도, 해외에 있던 사람들도 함께 부르며 함께 울었다. 나는 일본 삿포로의 한 카페에서 거리를 오가는 일본 사람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이 노래를 흥얼거렸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다. “동지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던 맹세다. 1980년 오늘, 국민의 생명을 지켜야 할 군대가 국민의 가슴에 총칼을 휘두르고 헬기에서 사격을 가할 때, 이에 굴하지 않고 목숨을 바쳐 민주주의를 지켜냈던 그 맹세다.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맹세”다.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던 맹세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첫 번째 절정이었다

그 날의 맹세를 함께 부르며 국민들은 가슴속 어디에선가 복받쳐오르는 뜨거움을 삼켰다. 아버지를 떠나보낸 딸의 추념사를 눈물로 듣던 문 대통령은 연단을 내려가는 그 유가족을 기어이 불러세워 부둥켜 안았다. 긴 세월, 벌써 이뤄졌어야 할 위대한 풍경이 2017년 오월에 실현되고야 말았다.

문 대통령의 기념사엔 진심이 담겨 있었다. “광주의 진실은 저에게 외면할 수 없는 분노였고, 아픔을 함께 나누지 못했다는 크나큰 부채감이었습니다.” 광주의 정신은 87년 6월항쟁을 거쳐 2017년 촛불혁명으로 이어졌다. 문재인 정부는 그 정신을 계승하겠다고 했다. 그 진심은 네 명의 열사를 호명할 때 정점에 달했다. 박관현, 표정두, 조성만, 박래전…. 나는 이국땅 삿포로에서, 삿포로의 털리스 카페에 앉아 눈물을 훔쳤다. 왜 네 명뿐이겠는가. 그 네 명의 이름은 수백, 수천 명 광주의 이름들을 호명했고,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한 위대한 열사들을 불러냈다. 민주주의는 이 거룩한 헌신 위에 피로 쓰여진 역사다. 그것을 단숨에 일깨웠다.

우리는 이 슬프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듣기 위해 9년의 그 참혹한 세월을 견뎠는지도 모른다. 미래를 위한 소박한 헌사는 봄햇살처럼 눈물을 어루만졌다. “서로가 서로를 위하고 서로의 아픔을 어루만져주는 대한민국이 새로운 대한민국입니다.” 이것은 민주공화국에 대한 가장 따뜻하고 위대한 규정이다. 그 어떤 구체적인 계획보다도 아름다운 가치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문재인 정부 9일을 아로새긴 첫 번째 절정이었다.

음습하고 폐쇄적인 권위주의의 상징인 청와대 앞 계단을 느닷없이 해방시켜 전혀 새로운 수평적 권력의 이미지를 만들어낸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인천공항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검찰 내 우병우 사단에 대한 강력한 개혁의지 역시 국민이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였다. 미·중·러·일 4대 주변국가와의 당당한 외교와 북한 미사일 발사에 대한 단호한 대응, 부드러우면서도 위엄있는 국방 메시지 역시 새로운 정치지도자에게 듣고 싶은 메시지였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과 피우진 국가보훈처장 임명도 ‘준비된 대통령’이라는 슬로건이 틀린 말이 아니었음을 입증했다.

검찰, 재벌, 언론, 정치 등 산적한 과제

지난 9일간 펼쳐진 문 대통령의 이야기가 국민들을 감동시킨 것은 그 이야기가 거창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너무 소박하고 당연했기 때문이다. 국민이 원했고, 국민이 해왔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위대한 촛불혁명을 만든 국민들의 이야기를 새로운 대통령이 대신 전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두려움 없이 전했기 때문이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단호하게 혁신의 길 위에서 이야기를 펼쳐놓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이야기가 모든 국민을 한 사람도 빠짐없이 감동시키진 못할 것이다. 그것은 허구다. 그렇다고 이 이야기가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한 40%만 만족시킨 것도 결코 아니다. 80%가 훨씬 넘는 국민이 문재인 정부를 지지한다. 80%는 박근혜 탄핵을 찬성했던 숫자다. 박근혜 구속을 원했던 숫자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지금의 국민을 과거의 관성대로 보수, 중도, 진보로 나누어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 기계적 구분은 이미 현실이 아니다. 지금의 이야기는 이념의 도그마가 아니라 비상식을 상식으로 전환하는 이야기이고, 비정상을 정상으로 환원하는 이야기이다. 정치세력의 이야기가 아니라 국민의 이야기다. 문재인 대통령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촛불 시민혁명의 이야기이다. 과거의 관성대로 이 이야기에 도전하는 정치세력은 필연적으로 쇠락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촛불 시민혁명은 대한민국을 성큼 전진시켰다. 하버드대 로베르트 웅거 교수에 따르면 “오늘날 이론의 영역에서든 정치의 영역에서든 원대한 기획에 대한 자신감을 상실하면서 사람들은 그 기획들을 더욱 희망적인 형태로 복원하고 변혁하는 방법을 찾기보다는 기획 없이도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해 왔다.” 하지만 2017년 오월의 대한민국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문 대통령의 이야기는 일단 대통령으로서 할 수 있는 혁신을 단행하는 것이다.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않는 것이다. 두려움 없이 눈치보지 않고 해치우는 것이다. 변화를 위한 용감한 실행이다.

하지만 앞으로 이야기는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검찰개혁, 재벌개혁, 언론개혁, 정치개혁 등의 산적한 과제는 법제화라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조만간 정부의 혁신과 의회의 협력 사이에 첨예한 긴장이 생길 것이다. 혁신은 속도를 원하고 협력은 기다림을 원한다. 웅거에 따르면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은 혁신지향적 협력이다.

문 대통령이 9일 동안 펼쳐놓은 이야기의 골자는 혁신이다. 혁신엔 위기가 따른다. 혁신을 위한 협력을 방해하는 세력이 있을 것이다. 국회선진화법을 무기로 혁신을 좌절시키려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야기는 결코 이 장벽에서 멈추지 않을 것이다.

국민은 이미 어제의 국민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이 강력한 혁신의지와 진심을 담은 이야기를 계속 써내려간다면,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국민이 길을 열어줄 것이다. 기득권을 무기로 이를 방해하는 정치세력은 대한민국 국민이 지난겨울에 세운 ‘새로운 표준’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져내릴 것이다.

<유승찬 스토리닷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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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최정예 겁쟁이들
오늘을 생각한다
대한민국 최정예 겁쟁이들
제2차 세계대전 전범의 아들 노다 마사아키가 쓴 <전쟁과 죄책>에는 포로의 목을 베라는 상관의 명령을 거부한 병사의 이야기가 나온다. 일본 관동군 중대장으로 근무했던 도미나가 쇼조의 증언에 따르면 중국 후베이성에서 포로를 베는 ‘담력’ 교육 도중 한 초년 병사가 “불교도로서 할 수 없습니다”라며 명령을 거부했다. 불교도로서 ‘살생하지 말라’는 계율을 지키려 했던 이 병사에게는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홀로코스트 연구자 크리스토퍼 R. 브라우닝이 쓴 <아주 평범한 사람들>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학살 임무를 거부하고 총기를 반납한 나치 대원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독일 101예비경찰대대 빌헬름 프라프 대대장은 유대인 학살 임무에 투입되기 직전 병사들에게 “임무를 감당할 자신이 없다면 앞으로 나오라”고 지시했다. 그러자 10명 남짓 병사가 앞으로 나왔고, 그들은 소총을 반납하고 대기했다. 그 병사들에게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각 부대에서 학살 임무를 거부한 병사와 장교들이 속출했지만, 나치 독일의 가혹했던 군형법은 이들에게 명령불복종죄를 비롯한 어떠한 형사처벌이나 징계도 내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