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땅 이 나라의 과부와 고아는 누구인가? 어느 날 갑자기 정리해고당한 노동자요, 아무리 일해도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저임금과 온갖 차별에 시달려야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보면, 제왕적 지위를 넘어 살아있는 신을 뽑는 대통령 선거가 절정에 이르고 있다. 출마자들은 저마다 자기가 생각하는 최고의 공약을 그럴 듯하게 포장해서 유권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그러면서 아직도 구시대의 작태인 남북관계를 악용한 과도한 안보논리나 색깔론이 횡행하고, 상대를 헐뜯고 모함하는 흑색선전 전술도 여전히 선거판을 혼탁하게 하고 있다. 이번 대통령선거는 현직 대통령이 파면된 상황에서 치러지는 특별한 선거인데, 그전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새로운 시대, 새 질서가 오기를 기대했던 국민들만 답답하고 안타까울 뿐이다.
사실 이번 선거는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에 따른 보궐선거이다. 또 직접 거리로 나선 수많은 촛불시민들의 요구에 의한, ‘혁명적’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특별한 선거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겉으로 보기에는 그런 정신이 살아있는 분위기가 아니다. 화들짝 놀란 정치인들이 갑자기 찾아온 기회를 마치 자기 것인 양 어떻게 주워 먹을까 허둥대는 모습만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의 결정적 계기는 최순실과의 국정농단이었지만, 실질적 이유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대응 잘못이었다. 진도 앞바다 맹골수도에서 억울하게 수장당하며 죽어간 304명의 원혼과 가족들, 그 광경을 실시간 생중계로 지켜보던 국민들의 부르짖음을 대통령으로서 외면한 것이 결국 탄핵의 가장 큰 이유가 된 것이다. 사실 삼성 등 재벌들로부터 엄청난 뇌물을 받아 최순실과 함께 사적으로 챙기기는 했지만, 재벌 등 대기업과의 정경유착 성격의 거래에 자유로울 정당이나 정치인이 몇이나 되겠느냐는 물음에, 우리는 아니라고 누가 자신 있게 대답하겠는가? 그래서 그 부분에 대해서는 박근혜도 그렇게 억울해 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억울한 자들의 ‘부르짖음’
그러나 헌법재판소의 판결문에도 얼버무려 넘어가긴 했지만, 세월호 참사에서 대통령의 책무인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지 못한 것은 입이 열이라도 할 말이 없다. 하물며 골든타임 7시간의 처신은, 스스로의 해명을 그대로 다 인정한다 하더라도, 직무유기를 넘어 미필적 고의의 살인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수장된 세월호에 대한 조사 및 인양 방해를 통한 원인규명 저지 등 이후의 대응은 처음의 잘못을 감추기 위한 직권남용의 추가적 범죄행위가 분명하다. 당연히 가중처벌의 요건에 해당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죄질이 아주 나빠 정상참작의 여지가 전혀 없는 것이다.
기독교 경전인 성서 구약 편에 보면 ‘쩨아카’라는 말이 나온다. 그대로 옮기면 ‘부르짖음’이라 할 수 있는데, 조선시대의 신문고나 요즘의 119 긴급 구조신고 같은 것이었다. 이스라엘 역사에 의하면 기독교의 신인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이집트의 지배에서 해방시키고 새나라를 건설한다. 민중적 관점에서 보면 민중해방혁명에 성공한 것이다.
그런데도 여기저기서 억울한 사람들의 부르짖음이 들렸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백성과 지도자에게 경고한다. “너희가 새롭게 이루는 나라에서 다시 쩨아카가 들리게 되면, 나는 너희를 가차 없이 벌하겠다. 너희가 과부와 고아들을 돌보지 않으면 내가 칼을 들 것이다. 그러면 너희 아내는 과부가 되고 너희 자식들은 고아가 될 것이다.” 실로 엄중한 경고이다. 정의가 무엇이며 어디에서 비롯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당시의 과부나 고아는 자기 잘못 없는 전쟁 피해자들로서, 그 시대에 가장 불쌍하고 억울한 사람들이었다. 가장 힘없고 약한 억눌린 자들이었다. 이런 약하고 억울한 민중을 나라가 돌보지 않으면, 그것은 나라가 아니라고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 박근혜는 억울하게 죽어가는 사람들의 ‘쩨아카’를 외면하고 무시했다. 역사의 신이며 광장의 신인 촛불시민은 정의의 칼을 휘두를 수밖에 없었다. 통치자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한 박근혜를 벌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순리이며 정의라고 역사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 후보 누구도 그들의 소리를 듣지 않아
지금 이 땅 이 나라의 과부와 고아는 누구인가? 어느 날 갑자기 정리해고당한 노동자요, 아무리 일해도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저임금과 온갖 차별에 시달려야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오늘도 거리 미화를 위해 쫓겨 다녀야 하는 노점상, 지을수록 빚만 느는 농민이요, 수입의 대부분을 집세로 바쳐야 하는 영세 자영업자들이다. 장애인과 소수자들이 그들이고, 특수고용노동자들이나 단시간 노동자, 실업자가 그들이다. 모든 걸 포기하고 길거리를 배회하고 있는 청년백수들이 바로 현대판 과부와 고아들이다.
오늘도 이 땅 곳곳에서 과부와 고아들이 ‘쩨아카’를 외치고 있다. 광화문 지하도에서는 장애인들이 수년째 농성을 하며 잘못된 등급제와 의무부양제도를 고쳐달라고 부르짖고 있고, 지난겨울 촛불이 타오르던 광화문광장 한편 광고탑 위에서는 불법으로 정리해고당한 노동자나 차별을 감당하지 못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보름째 단식을 하며 울부짖고 있다. 손배 가압류의 폭탄을 맞은 투쟁 사업장 노동자들은 망연자실 대책 없이 넋을 잃고 부르짖을 힘조차 잃은 채, 죽음을 생각하고 있다.
대선에 출마해서 대통령이 되려고 하는 정치인들은 이 쩨아카를 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 부르짖음이 울려 퍼지고 있는 곳으로 달려가야 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는 대통령 후보 누구도 쩨아카를 외치고 있는 그들을 찾아가 이야기를 들어주고 위로하며 대책을 같이 고민하는, 그런 후보가 있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진정한 정치라고, 그렇게 하지 않을 때 어떻게 되는가를 박근혜는 철창 안에서 증언하고 있고, 기독교의 역사는 경전에 기록하고 있는데도 밀이다.
다시 한 번 대선 출마자들에게 호소드린다. 이번 선거에는 적폐를 청산해서 낡은 시대를 마감하고, 새 질서의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려는 우리 민중의 염원이 담겨 있다. 그것이 촛불시민의 정신이다. 그 정신은 이번 대통령선거 기간에서도 관철되고 있다. 출마자들이나 정치인들은 이 엄중하고 엄연한 사실을 직시하고, 그에 맞는 선거운동을 해 주었으면 좋겠다. 아직도 박근혜 적폐를 버리거나 반성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에 기대어 일부 국민을 속이고 이간질하며, 공개토론 자리에서까지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막말이나 하고 있는 후보는 지금이라도 사퇴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