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 말하기엔 너무 기름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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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치스크린]‘차별’ 말하기엔 너무 기름진 영화

제목 히든 피겨스 (Hidden Figures)

제작연도 2016년

제작국 미국

러닝타임 127분

장르 드라마, 코미디

감독 테오도어 멜피

출연 타라지 P. 헨슨, 옥타비아 스펜서, 자넬 모네, 메어샬라 알리

개봉 2017년 3월 23일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지난해 88회 아카데미 시상식의 가장 큰 이슈는 ‘차별’이었다. 수상작과 수상자 후보 대부분이 백인 위주로 선정되는 바람에 한동안 잠잠했던 ‘인종차별’ 논란이 다시 불거졌다. 하지만 깊게 들여다보면 문제의 제기와 비난에 거론되는 유색인종의 범위가 아시아계, 히스패닉, 아메리카 원주민 등 다른 소수민족을 소외시킨 아프리카계 미국인에 집중된 것이어서 엄밀히는 인종차별이 아닌 ‘흑인차별’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편협한 항변이었다는 새로운 지적을 받기도 했다.

설상가상으로 진행을 맡은 흑인 코미디언 크리스 락은 진행 중간에 동양인 아이 3명을 무대에 등장시켜 동양인과 유태인을 조롱하고 아동노동 문제까지 비하하는 농담을 해 논란을 확장시켰다. 또 영화 <캐롤>을 소개하면서는 여성 동성애를 저급한 눈요깃감 정도로 취급하는 듯한 발언으로 성소수자들의 원성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올해 치러진 89회 행사는 주최 측이 작정이나 한듯 그 어느 때보다 흑인 작품에 후한 대접을 했다.

마치 나눠주기로 계산이라도 한 듯 수상이 이어졌는데, 특히 큰 화제가 된 해프닝인 작품상 수상작 정정 사건은 이런 경향을 더욱 부각시켰다.

여러 모로 이번 행사는 아카데미 시상식이 익히 알려진 대로 얼마나 정치적으로 섬세하게 짜인 쇼 비즈니스인지를 면밀히 증명하는 시간이 되고 말았다. 작품상 후보 9개 중 흑인이 부각된 3편에는 이 영화 <히든 피겨스>도 포함됐다.

1960년대 초 치열했던 우주개발 경쟁에서 소련에 뒤지고 있던 미국의 항공우주국(나사)은 유인위성 ‘프랜드십 7호’ 개발에 사활을 건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편견과 차별을 묵묵히 이겨낸 뛰어난 흑인여성들의 공로가 숨어 있었다. 실제인물과 사건을 바탕으로 제작된 작품인 만큼 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장점과 감동은 어느 정도 예상이 된다.

하지만 이 작품은 당황스러울 만큼 딱 그 정도의 결과물만을 보여주고 있다. 당시의 척박하고 드센 현실을 전달하기에는 연출과 연기를 포함한 영화 안팎의 모든 요소들이 너무 기름지고 매끄러우며 말쑥하다. 표면상 흑인과 여성 차별에 대한 메시지가 워낙 강렬한 작품이다 보니 되레 조용히 뒤를 받쳐주는 백인배우들의 존재감이 더 따뜻해 보이기까지 한다.

오래간만에 만나는 케빈 코스트너나 커스틴 던스트는 과거의 빛나던 외모가 증발해 당황스럽지만 차라리 편안하고 친근하게 다가와 더욱 반갑다. 그러나 이 작품 속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인물은 주인공 캐서린 존슨의 연인인 짐 존슨 대령 역으로 잠시 등장하는 흑인 남자배우 메어샬라 알리(Mahershala Ali)다.

1974년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 출생으로, 농구선수 경력도 지닌 그는 본래 길모어였던 성을 알리로 바꿀 정도로 독실한 무슬림 신자로 알려져 있다.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 자신이 출연한 두 작품 <히든 피겨스>와 <문라이트>가 동시에 작품상 후보에 오르는 흔치않은 기쁨을 누렸는데, 결국 작품상을 거머쥔 <문라이트>에서의 짧지만 인상적인 연기로 자신은 남우조연상까지 수상했다.

오랜 시간 묵묵히 조연의 길을 걷다 하루아침에 아카데미 수상 배우라는 영예를 선물 받아 신분 상승을 이룬 그는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의 가장 큰 수혜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원균 무비가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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