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피해자 돕는 전시회 여는 대학생 송다예씨 “어디나 있고 어디도 없는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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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 이 사람]성폭력피해자 돕는 전시회 여는 대학생 송다예씨 “어디나 있고 어디도 없는 그들”

“저런 쳐 죽일 XX”, “X를 잘라야 해.” 성범죄 관련 인터넷 기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댓글이다. 성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은 복역 후에도 전자발찌를 차야 한다. 이렇게만 보면 한국 사회는 성범죄를 용납하지 않는 사회 같다. 그렇지만 이것으로 우리는 성범죄와 제대로 싸운다고 볼 수 있을까. 대학생 송다예씨(22)가 지난학기 수업을 들으면서 든 의문이다. 연세대학교 디자인예술학부에 재학 중인 송씨는 인지과학 연계과정인 ‘언어와 디자인’ 수업에서 심각한 트라우마에 시달린 경험이 있는 성폭력 피해자들을 접할 수 있었다. 성범죄 자체에 대한 지나치게 뜨거운 분노가 그들을 숨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최근 트위터를 통해 진행된 ‘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을 통해 수많은 성폭력 피해자들의 고백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성폭력은 일상에서 흔하게 벌어지는 일 중의 하나입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폭력 ‘사건’에만 관심 있을 뿐 성폭력 피해자나 성폭력 그 자체에 대한 인식은 부족합니다.”

송씨와 함께 수업을 들었던 친구들은 학기가 끝나도 성폭력 피해자를 돕고 우리 사회에서 성폭력 문제를 조망할 수 있는 활동을 더 해보기로 했다. 이화여대, 대림대, 중앙대 등 다양한 학교 학생 12명이 모였다. ‘공존’이라고 팀 이름을 지었다. 몇 달간 학업을 병행하며 꾸준히 노력한 결과 오는 16일부터 22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 있는 갤러리 가이아에서 전시회를 열게 된다. 전시회의 제목은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 展’. “우리 사회에서 성폭력 피해자가 이런 존재인 거 같아요. 일단 무엇이라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피해자, 생존자, 경험자 등 부르는 방식도 다를 수 있구요. 전시회에서 결론을 내린다기보다는 관람객들과 함께 고민하고 방법을 구상해 보겠습니다.”

전시는 ‘인식존’, ‘지식존’, ‘인터랙티브존’ 총 세 공간으로 구성된다. ‘인식존’에서는 성폭력에 대한 관객들의 인식을 알아보기 위해 간단한 설문조사를 시행한다. ‘지식존’에서는 성폭력 실태에 대한 다양한 정보들이 제공된다. 범죄 발생 횟수, 처벌 경향 등에 대한 통계와 전문가 인터뷰 영상, ‘데이트 폭력’, ‘몰래카메라’ 등 다양한 형태의 폭력을 형상화한 표현물이 전시될 예정이다. 성범죄 피해자를 동정하는 시선, 옷차림이나 행실을 탓하는 시선, 적극적으로 먼저 유혹한 것 아니냐는 의심 등 피해자들이 겪는 다양한 시선들을 드러낸 전시물도 있다. 지난 8월부터 준비를 시작해 막바지 작업을 진행 중이다. 서울사회적경제지원센터 산하 위키서울의 지원을 받았다.

가장 신경 쓴 곳은 디지털 아트로 채운 ‘인터랙티브존’이다. “성범죄 피해자에 대한 지지를 관객이 표현하는 곳이에요. 인식·지식존을 거치면서 고민해본 다음, 자기가 생각한 바람직한 성폭력 피해자를 가리키는 표현에 대한 답을 적고 나무에 걸면 LED 조명에 불이 들어와요. 성폭력 사건에 관심을 갖고 피해자를 지지하겠다는 다짐이 많아질수록 사회가 밝아질 것이라는 메시지를 담았어요.” 인터랙티브존에 전시될 ‘다짐의 나무’에 대한 설명이다. 학기 중이라 여간 피곤하지 않다. 하지만 보람으로 설렌다. “우선 성폭력 피해자들이 피해사실을 ‘없었던 일’로 두지 않고 말할 용기를 낼 수 있어야 해요. 그러려면 주변인들이 피해자를 불쌍한 시선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수긍하고 있는 그대로 바라봐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공존 팀원들이 생각하는 사회가 성폭력과 끝까지 싸우는 방법이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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