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상 3월의 지킴이 대학생 한연지씨 “관심 줄지만 끝까지 지킬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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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한 달 동안 주한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을 24시간 지키고 있는 대학생 한연지씨. / 김태훈 기자

3월 한 달 동안 주한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을 24시간 지키고 있는 대학생 한연지씨. / 김태훈 기자

“어제도 찾아오신 분들이 굴보쌈을 주셔서 맛있게 먹었는데, 밖에서 오래 지내다 보니 면역력이 떨어져서 노로바이러스에 감염됐어요. 계속 토하고 상태가 안 좋았는데, 오늘은 조금 나아졌네요.”

3월 24일 서울 종로구 주한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농성장에서 만난 대학생 한연지씨(23)는 식중독에 걸린 것이 멋쩍다는 듯 웃었다. 한씨가 노숙농성을 이어간 지 25일째, ‘한·일 위안부 합의’ 때문에 농성이 시작된 지 86일째에 접어든 이날, 주변을 지나가는 행인들과 이따금씩 응원을 전하는 사람들을 빼면 농성장 주변은 차분한 분위기였다. 드문드문 서 있는 경찰 병력의 눈초리를 가려줄 천막이나 텐트 하나 없다는 점만 빼면 보통의 농성장과 다르지 않았다.

“겨울에 정말 추울 때는 비닐을 덮고 있었는데, 그 안에서 성에가 얼어서 후두둑 떨어지곤 했죠. 지금은 그때에 비하면 많이 따뜻해진 거죠.” 지난해 12월 말부터 한겨울을 나는 동안 한씨와 소녀상 지킴이들은 영하의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이 자리를 지켰다. 천막이나 텐트 설치를 막는 경찰 때문에 이슬을 맞는 노숙을 넘어 설숙(雪宿)을 하던 시기도 보냈다. 소녀상 지킴이로 있어준 대부분의 대학생들은 3월 개강을 맞아 각자의 캠퍼스로 떠났다. 그러나 언제 철거하러 나설지 모르는 소녀상 곁을 지키는 불침번 역할을 누군가는 해야 했다. 한씨가 3월의 지킴이 역할을 맡은 이유다.

한 달 가까이 줄곧 길바닥 생활을 하면서 건강이 나빠졌지만 주머니 사정도 어려워졌다. 한씨는 “지난 학기에도 휴학을 했기 때문에 이번 학기에도 휴학이 이어지는 건 그대로인데, 한 달 전부터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게 되니 점점 벌어놓은 돈이 줄고 있다”고 말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번 한 달 70만원 남짓한 돈이 아쉬운 사정이지만, 그것보다는 “이 자리를 지키는 게 더 가치 있는 일이라 생각해서” 후회하진 않는다.

한 달간 붙박이로 소녀상을 지키는 것은 한씨의 일이지만 한씨 혼자만이 아니다. 격려차 방문하는 시민들과 돌아가며 시간을 내 한씨와 함께 지킴이 역할을 하는 대학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얼마 전 일본 언론에서 소녀상 철거 얘기가 다시 나와서 조마조마한데, 그만큼 찾아와 주시는 분들도 줄어들지 않고 있어요.” 한씨를 포함한 대학생 100인 농성단은 개강 이후 첫 번째로 지난 3월 18일부터 19일까지 24시간 연속 100인 연좌농성도 진행했다. 날씨가 더 풀리는 4월부터는 이들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소녀상 지킴이 인원이 더욱 늘어날 예정이다. 아직은 해가 떨어지면 쌀쌀한 날씨를 대비해 이불과 옷가지도 넉넉하게 준비해 두고 함께 농성할 시민들을 기다리고 있다.

농성의 기한은 한·일 양국 정부가 기존의 합의를 폐기하고 소녀상 철거 시도가 백지화되는 때까지다. 총선을 앞두고 있어 당장 철거가 있지는 않을 것이어서 과도하게 긴장하지는 않으려 하지만, 그래도 언제 어떻게 상황이 급변할지 몰라 걱정이 끊이지 않는 게 지킴이들의 심경이다. 한두 명이 지키고 있는 농성장에 철거나 그밖의 조치가 생기면 막기 힘드니 비상연락망과 함께 SNS를 이용한 상황 전파대책도 세워뒀다. 한씨는 “언론의 보도도 줄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 사과와 재논의에 관한 관심도 줄어드는 것 같지만, 그래도 끝까지 이곳을 지켜서 우리 사회가 평화와 인권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게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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