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습기자의 수습불가 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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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치스크린]수습기자의 수습불가 판타지

제목 열정 같은 소리하고 있네

영제 You call it Passion

감독 정기훈

출연 하재관_정재영, 도라희_박보영,
         오 국장_오달수, 장 대표_진경

원작 열정 같은 소리하고 있네(이혜린 저)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상영시간 106분

개봉 2015년 11월 25일

영화의 중반쯤부터 인터넷에서 유명한 한 ‘짤방’이 반복해서 떠올랐다. 잠에서 깨어나 이부자리에 앉아 있는 병맛 만화 주인공. ‘아시X꿈’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짤방이다. 시X는 욕설이다. 영화는 점점 수습불가로 치닫고 있는 중이다. 해결책은 딱 하나다. 이 모든 게 어느 핍박 받던 수습기자의 개꿈이라고 한다면,

영화 시작 장면. 한 건물에 CG로 덧씌운 게 뚜렷한 언론사 이름이 눈에 밟혔다. 그랬다. 수습기자 이야기다. 주인공 도라희(박보영 분)는 스포츠신문의 신입 수습기자다. 수습 첫날부터 바로 부서 배치, 라는 식으로 운영을 하는 언론사? 있을 수도 있겠다. 그런데 보면 볼수록 떠오르는 의문. 저게 요즘 언론사라고? 글쎄.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아무래도 이쪽 세계 이야기이다 보니 팔짱을 끼고 볼 수밖에.

엉겁결에 현장에 투입된 도라희 기자에게 가장 든든한 ‘빽’이 되어 주는 사람은 같은 신방과 출신으로 ‘스포츠경향’(!)에 근무하는 선배 기자다. 이 ‘스포츠경향’ 선배는 자신의 발등을 으스러뜨리면서까지 타사의 신참 후배에게 특종을 양보하는데, 톱스타가 입원해 있던 병실에 잠입한 이 수습기자는 만능의 취재도구인 스마트폰을 들고 있으면서도 결정적인 특종의 증거를 잡지 않고, 거래를 한다. 대신 그에게 건네지는 것은 그 유명배우가 또 다른 여배우와 사귄다는 걸 증명하는 사진이다. 성질 괴팍한 부장은 그게 특종이라고 혼자 책상 밑에 들어가 좋아한다. 단독이긴 한데….

일반관객에게 이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했다. 판타지다. 수습기자 도라희는 자신이 목격한 사실의 ‘맥락’이 무엇인지 집요하게 파고든다. 마침내 정의는 승리하고, 연예계의 거물이자 악녀인 장 대표(진경 분)의 손아귀에 잡혀 있던 배우 한선우(배성우 분)는 탈출하여 이 당찬 기자에게 진심을 담아 감사인사를 한다. 거의 중2병적 세계로 퇴화한 것처럼 보이는 선악구도의 단순화, 장 대표의 기자회견이 무산된 후 톱스타가 도라희 앞에 홀연히 나타났는데도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다는 점 등에서 ‘아시X꿈’ 외엔 탈출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는데도 영화는 판타지를 끝까지 밀고나간다.

핍진성을 살린다면 영화는 어떻게 흘러갔을까. 우선, 가장 일어날 가능성이 없는 일. 도라희 기자의 특종성 기사-기사적 가치만 놓고 따지자면 팩트가 뒷받침되지 않은 추론성 기사가 특종이 될 수 없다-가 회사 사장의 ‘외압’으로 잘렸다고 선배 기자들이 우르르 PC방에 몰려가 기사를 인터넷 게시판에 올리는 일 따위, 현실에서 일어날 가능성은 0.001%도 없다. 아무리 망해가는 언론사라고 하더라도 기자라는 직종이 그렇게 한가한 직업은 아니다. 그리고 비록 기명기사라고 하더라도 출처가 확인되지 않은 기사가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 실검에 포착되며, 실시간으로 열리고 있는 기자회견장을 난장판으로 만들 가능성 역시 거의 희박하다. 다년간의 인터넷 게시판 취재 경험에서 하는 말이다.

영화를 보면서 떠오르는 건, 할리우드 코미디 영화 <금발이 너무해(Legally blonde)>(2001)의 플롯이다. 금수저를 물고 언론계에 들어온 것도 아닌데, 너무나 술렁술렁 ‘능력자들’이 그녀 편에서 도움을 준다. 심지어 금두꺼비를 뇌물로 받은 하 부장도 너무 정의감에 넘친 나머지 “그래 써라 써”라며 자기 이야기를 기사에 쓰는 걸 용인해준다. 그런 말, 할 만도 하다. “열정 같은 소리하고 있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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