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들의 상실감은 치유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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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트루스 어바웃 엠마누엘

원제 The Truth About Emanuel
감독 프란체스카 그레고리니

출연 카야 스코델라리오, 제시카 비엘, 알프리드 몰출연 리나, 아뉴린 바나드

상영시간 95분

등급 15세 관람가

개봉 2015년 9월 17일

[터치스크린]그녀들의 상실감은 치유됐을까

아, 드디어 내가 나이를 먹어버렸구나.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 든 생각이다. 그렇다고 서글프거나 우울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불현듯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다. ‘비주류여도 상관없어’라고 꿋꿋하게 자신만의 연출세계를 이어가는 감독들. 그들의 작품들을 비디오로 하나씩 찾아보면서 느꼈던 희열과 ‘감성을 공유하고 있다’는 느낌에 대한 기억이다.

<트루스 어바웃 엠마누엘>의 주인공 엠마누엘(카야 스코델라리오 분)은 17살 여성이다. 대학에는 관심이 없지만 배우는 것은 좋아한다고 스스로 말한다. 그가 배우는 것은 극중에서 묘사된 프랑스어만이 아니다. 인생을, 사랑을 좌충우돌하면서 배우고 있다. 그가 태어나면서 엄마는 죽었다. 오랜 세월을 아버지와 딸은 어머니 없이 살아왔다. 엄마의 빈 자리는 그의 몫이었다. 그리고 어느 날, 새엄마가 그들 틈을 비집고 들어왔다. 딸은 자신의 존재 이유에 대해 고민한다. 엄마가 물에 빠져 죽던 날, 들이치는 물은 그가 위기에 빠질 때마다 환상처럼 닥친다. 이제 이웃집에 이사를 온 린다(제시카 비엘 분) 이야기를 해보자. 그는 고립돼 있다. 이삿짐에 아무렇게나 놓은 사진엔 남편이 존재하지만 그 남편은 코빼기도 비추지 않는다. 린다는 24시간 갓난아기에게 매달려 있다.

엠마누엘은 린다의 베이비시터를 자처한다. 어떤 예감이었을까. 금방 들통날 일이었지만 영화는 중반부까지 린다가 갖고 있는 ‘비밀’의 실체를 주도면밀하게 숨긴다. 아직 영화를 못 본 사람들을 위해 스포일러를 밝힐 수는 없지만, 엠마누엘은 린다의 비밀을 얼마 안 가 알아챈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수많은 ‘린다’들을 마주한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피한다. 엮이면 곤란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엠마누엘의 선택은 달랐다. 린다에게서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자신의 엄마를 봤다. 그는 린다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공조한다. 이렇게 이야기하다 보니 공포 버전의 부조리극, 이를테면 히치콕의 <싸이코>(1960)와 같은 서스펜스를 담은 영화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방향은 전혀 다르다. 영화는 관객들로 하여금 ‘린다의 비밀이라고 하는 게, 혹시 분리불안에 시달리는 엠마누엘이 일으키는 정신착란이 아닐까’라고 끊임없이 의심하게 하는데, 이 역시 영리하게 계산된 연출이다. 굳이 따지면 영화는 엠마누엘의 시각에서 세상과 불화하는 10대를 관통하는 성장영화다.

영화의 절정 부분에서 언젠가 읽었던 만신 김금화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무병을 앓았던 김금화는 어느 날 새벽 미친 듯이 지금의 연세대 뒷산에 올라 맨손으로 무덤을 파헤쳤다. 벌써 수십 년 전 이야기다. 불가사의하게도 김금화는 그 무덤 속에서 무속인의 방울과 칼을 발견했다. 그리고 심리적 안정을 되찾았다. 정신병원에 감금돼 있던 린다를 데리고 엠마누엘은 자신의 어머니 무덤을 방문한다. 거기서 린다의 ‘비밀’과 자신의 기억을 봉합하는 제의를 올린다. 만신 김금화처럼, 이것으로 그들도 치유됐을까. 영화는 그랬을 것이라고 말한다. 오랜만에 훌륭한 영화 한 편을 봤다. 흥행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일단 상영관 확보도 힘들 것이다. 원래 이런 영화들의 가치를 알아보는 건 시네필들이었다. 한국에서 그런 시네필이 대거 등장한 것은 1990년대였다. 지금은 모두 다 어디론가 흩어져버렸다. 이런 독백이 아니라 이 영화의 영민함에 대해 대화를 나눌 사람들이 지금은 없다는 것이 극장을 나서며 곱씹어본 또 하나의 상실감이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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