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약세 아닌 달러강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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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대인의 눈]원화약세 아닌 달러강세다

최근 원·달러 환율이 상승하면서 많은 이들이 불안해하는 반면 국내 수출기업들의 수출 신장에는 도움이 될 거라는 주장이 여전히 심심찮게 나온다. 하지만 그 같은 주장은 최근 진행되고 있는 원·달러 환율 상승의 성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소치다. 2014년 7월을 저점으로 최근까지 진행된 원·달러 환율 상승은 원화 약세라기보다는 달러 강세라고 표현하는 게 더 적절하기 때문이다.

환율 급등은 미국 양적완화 종료와 금리인상 흐름 속에 지속되는 강달러 추세가 한국 원화라는 거울에 비친 이미지에 가깝다. 즉 이 기간에 원화뿐만 아니라 다른 거의 모든 국가들 화폐 가치가 달러 대비 약세를 보였다. 특히 이 기간 유로화와 엔화는 원화 대비로도 더 약세를 보였다. 양상이 이렇다 보니 원·달러·환율이 뛴다고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처럼 수출이 잘 될 것이라는 정부나 상당수 언론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다른 수출 경쟁국들의 화폐 가치도 떨어지는 셈이니 (심지어 일본은 우리보더 더 가파른 약세를 보인다) 미국이나 중국 등 수출시장에서 우리 기업들의 가격경쟁력이 특별히 더 강화될 리 없다. 더구나 중국을 제외한 유럽연합(EU)과 일본의 경우에는 원화가 해당 지역에서 상대적으로 더 강세를 띤 셈이니 오히려 가격경쟁력 측면에서 더 약화된 셈이다. 중국 위안화는 미국 달러에 대체로 연동돼 강세를 띠어 왔지만, 최근에는 위안화 가치도 평가절하되는 데다 샤오미 등 중국 내 한국 기업의 경쟁자들이 급부상해 역시 한국 수출이 급감하고 있다. 다만 같은 규모의 수출을 하더라도 원화 환산 수출실적이 늘어나는 효과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세계 경제의 전반적인 침체와 한국 주력산업의 위축으로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다. 물론 최근 한 달여 사이에 벌어진 원·달러 환율 상승은 외국인 단기 투자자금의 급격한 유출에 따른 측면이 크고, 다른 주요국 화폐에 비해 약세를 띠기도 한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까지는 이를 수출 증대보다는 잠재적인 위기의 징후로 읽는 것이 더 정확한 해석일 것이다.

어쨌거나 이미 재벌 독식구조와 부동산 거품 및 가계부채 급증으로 내수가 죽은 지 오래됐는데, 수출마저 이렇게 위축될 때 한국 경제가 기댈 곳은 어디일까. 단기적으로 중국 경제는 상당한 침체를 겪고 있지만, 중국은 수출과 건설·설비투자 중심의 경제구조를 내수와 서비스 위주 경제구조로 전환하면서 체질을 개선하고 있다. 최근 몇년 동안에도 일자리와 소득이 여전히 7~9%대로 성장하고 있다. 중국 지도부도 이런 저런 실수를 많이 하지만 대체로 중장기적 관점의 구조개혁 과제만큼은 한국보다 훨씬 잘해내고 있다.

반면 같은 기간 한국은 “경제를 살린다”는 명분으로 재벌 대기업 위주의 경제 운용을 지속하고, 가계부채 폭증을 통한 부동산 거품을 계속 조장해왔다. ‘언 발에 오줌누기’식 처방을 계속해온 결과 이제 재벌 대기업들의 성장도 한계에 이르렀다. 부동산은 잠깐 살아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상 최대의 가계부채 폭증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최경환 부총리 등 당국자들은 “부동산시장을 살렸다”고 너스레를 떠는데, 실은 부동산시장을 억지로 살리려고 다른 모든 경제를 죽인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런데 다른 모든 경제가 죽어가고, 집을 사줄 가계의 체력이 바닥나는데 활발한 부동산 거래가 지속될 수 있을까.

땜질식 처방이 아닌 정책기조를 전면적으로 바꾸는 구조개혁을 이제라도 해야 한다. 그래야 위기를 기회로 삼을 수 있다.

<선대인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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