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에 관한 두 얼굴, 우병우와 유경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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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찬의 눈]진실에 관한 두 얼굴, 우병우와 유경근

진실을 은폐하려는 사람은 청와대를 휘젓고, 진실을 밝히려는 사람은 거리에 나앉는다. 청와대에선 샥스핀과 송로버섯을 먹고 거리에선 단식이 시작된다. 우병우와 유경근은 ‘진실’을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우리 시대의 아주 우울한 두 얼굴이다. 이 두 인물이 상징하는 바는 명백히 정의의 실종이다. 언론 보도와 특별감찰관의 고발로 드러난 팩트를 송두리째 뒤엎으려는 현재 권력의 음모와 ‘지겹다’는 프레임으로 진실 규명을 억압하려는 은폐의 명징한 대비다. 너무나 다른 두 얼굴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하나다. 그것이 어떤 프레임의 가면을 쓰고 나타나든 이 질문은 오롯하다. ‘이게 나라냐?’

이석수 특별감찰관이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을 검찰에 고발했다. 이 감찰관은 의경에 입대한 우 수석 장남의 보직 특혜의혹 등 직권남용 혐의와 가족회사 ‘정강’을 통한 차량·통신비 처리 등 횡령 혐의를 적시했다. 투기자본감시센터는 우 수석을 공무집행방해, 직권남용, 뇌물수수, 배임, 횡령, 탈세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한 상태다. 사정라인의 총책인 민정수석이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범죄 혐의를 열거한 셈이다.

문제는 검찰 고발에 대한 청와대의 반응이다. 청와대는 우 수석의 검찰 고발에 대한 사과나 인사조치는커녕 이 감찰관을 협박하고 나섰다. 김성우 청와대 홍보수석은 “감찰 내용을 특정 언론에 유출하고 특정 언론과 서로 의견을 교환한 것은 특별감찰관의 본분을 저버린 중대한 위법이고 묵과할 수 없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국기문란사건이라는 것이다. 특별감찰관은 민정수석을 수사하라 하고, 홍보수석은 특별감찰관을 수사하라고 하는 블랙코미디가 연출된다.

같은 시기에 유경근 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이 세월호 특조위 조사기간 보장과 특검 도입을 요구하며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그런데 지난 4·13 총선에서 여소야대가 실현되고 실제로 야3당은 가족협의회 주장을 전향적으로 받아들이는 듯했다. 하지만 선거 때는 야3당 모두 세월호 진상규명을 약속했지만 선거 이후엔 기득권체제의 논리로 돌아서기 시작했다. 여야 원내대표 회담에서 새누리당의 주장을 대폭 수용해 유가족들의 주장을 외면한 것이다.

유 위원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여소야대와 공조 약속에 희망을 품었지만 돌아온 대답은 절차 탓, 현실 탓뿐이었다고 탄식했다. 20대 총선에서 터져나온 혁명적 민의의 깊은 바닥에 세월호 참사에 대한 깊은 슬픔과 분노가 자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빛의 속도로 망각한 것이다. 초선의 박주민 변호사가 54.93%라는 높은 득표율로 당선될 수 있었던 그 민심의 함의를 애써 외면하고 있는 셈이다. 야3당은 유경근의 단식이 가져올 파장을 결코 과소평가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권력이 은폐한 진실은 거리에 나앉았다. 뜨거운 뙤약볕 아래서 참혹한 슬픔과 슬픔을 덧씌운 악의 프레임에 갇힌 예은이 아빠는 또다시 끝이 어딘지 모를 싸움을 시작했다. 우병우는 당당하게 버티고 유경근은 무릎 꿇고 호소한다. 왜 “높은 사람들에 대한 증오는 천한 것들이 자기도 모르게 표하는 경의란다”라고 술회한 찰스 디킨스의 소설 속 대사가 아직도 아프게 가슴을 때리는가. 우병우 앞에서, 유경근 앞에서, 도도한 정의의 이름 앞에서 과연 우리는 안전한가.

단 하나의 위안은, 진실이 거리에 버려지는 순간 권력도 거리에 나뒹군다는 역사적 성찰이다.

<유승찬 소셜미디어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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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뒤척인다. 겨우내 마음 편히 잠을 자지 못해 머리에 스모그가 낀 듯 무겁다. 창밖을 보니 눈이 내린다. 이상기온이 일상이 돼간다. 기후변화의 징후인 3월 중순 눈 쌓인 풍경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고 불길하다. 자연 시스템의 불안정성만큼이나 정치와 사법 시스템 또한 아슬아슬하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둘러싼 사회적 긴장은 한국 민주주의가 직면한 불안정성을 드러낸다. 일만 년간 이어온 기후 안정성과 40여 년이 채 안 된 한국의 민주주의는 기간으로는 비할 데 아니지만, 우리 삶에 당연히 주어지는 조건으로 여겨졌던 점은 흡사하다. 이번 겨울 기후환경이든 정치체제든,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것들이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 여실히 드러났다. 기후위기와 정치위기라는 무관해 보이는 두 위기는 사실 그 원인 면에서도 맞닿아 있는데, 효율과 성과가 최우선시되는 과정에서 다른 중요한 가치는 간과했다는 점이다. 한국사회는 산업화하는 과정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법을 배웠지만, 화석 연료 중심의 에너지 구조를 전환하는 데 게을렀고, 정치적 다양성과 세대 간의 이해를 구현하지 못했다. 우리는 경쟁을 통해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지만, 이제는 그러한 방식의 성장이 우리 사회를 갉아먹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