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춘, 그 위험했던 충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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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선의 눈]김기춘, 그 위험했던 충성

얼마 전 문상을 간 김기춘 전 비서실장에게 JP가 박근혜 대통령의 인격을 물었다. 그랬더니 김 실장은 “그 자체가 나라 생각밖에는 없는 분”이라고 답했다. 그 김 실장은 연초 청와대 시무식 때 박 대통령에 대한 충성을 독려했다. “충(忠)이란 무엇인가”라고 물으며, “돌이켜보면 우리 나름대로 노력한다고 하지만 여러 불충(不忠)한 일이 있어서 위로는 대통령님께, 나아가 국민과 나라에 걱정을 끼친 일이 있다”고 반성했다. 대통령은 나라 생각밖에 없고, 그 대통령을 보필하는 비서실장은 대통령 생각밖에 없었다. 그런 비서실장을 가리켜 대통령은 “보기 드물게 사심 없는 분”이라고 치켜세웠다.

그런 김기춘 실장이 물러났다. 한때 ‘기춘 대원군’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박 대통령은 그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해왔다. 박 대통령이 그동안 몇 차례나 사의를 물리치며 김 실장을 자신의 곁에 두었던 사실은 두텁고도 두터운 신뢰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 사이의 신뢰가 얼마나 깊었던가에 상관없이, 애당초 김기춘이라는 인물은 청와대에 들어가서는 안 될 사람이었다. 중앙정보부에까지 몸담으며 박정희 정권 유지에 기여했고 결국에는 유신헌법 제정에 참여해서 초안을 마련하는 역할을 했던 인물이다. 1992년 대선 때는 공무원과 기관장들을 불러모아 지역감정을 부추기며 선거개입을 사주했다. 과거 그가 저질렀던 일들은 세월이 지났다고 망각되거나 세탁될 수 있는 것이 아닌, 민주주의를 범했던 대역죄였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죄를 죄로 생각하지 않고 아버지를 대신한 보은인사를 하고 말았다. 우리는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인가. 참담하고 또 참담했다.

과거는 과거로 끝나지 않았고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박근혜 정부의 청와대는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적대시한 채 힘을 앞세우며 나라를 운영했다. 소통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검찰과 경찰을 앞세운 공안적 통치가 자리했다. 영락없는 유신의 추억이었고 그 한복판에 김기춘 실장이 있었다. 아마도 김기춘 실장이 평생을 통해 체득했던 학습효과는 소통보다는 힘이 빠르고 효율적이라고 그에게 속삭여주었을 것이다. 권력기관들을 장악하고 그들을 앞세우며 통치를 해야 정권이 안정될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었을 것이다. 그것이 ‘나라 생각밖에 없는’ 대통령을 보필하는 최선의 길이라고 김 실장은 믿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위험한 충성이었다. 미국의 저널리스트 에릭 펠턴은 <위험한 충성>에서 “정치에서 충성은 과대평가된 덕목일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악덕”이라고 말한다. 존슨, 닉슨, 조지 부시처럼 부하들의 충성에 집착하는 대통령의 업무수행 능력은 매우 나쁘다는 제이콥 와이즈버그의 말도 인용된다. 그 위험한 충성의 결과,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은 취임 2년 만에 반토막이 나버렸고 민심은 등을 돌려버렸다. 충성은 그들만의 것이었다. 아무리 대통령과 비서실장의 관계라 해도 개인과 개인 간의 충성은 사적인 영역의 것에 불과할 뿐이다.

국정원 댓글 사건 특별수사팀장을 맡아 온갖 어려움을 겪다가 유배된 윤석열 검사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 공직자들이 충성할 것은 나라와 국민이지 결코 대통령 개인이 아니다. 20세기 말 프랑스에서는 철학자 데리다가 마르크스의 유령을 다시 불러왔다고 얘기되었다. 2013년 이래 대한민국에서는 김기춘이 박정희 시대의 유령들을 불러왔다. 그래서 박정희 시대의 유령들이 아직도 이 땅을 배회하고 있다. 대통령에 대한 절절한 충성은 그 정치적 표현이다. 이제는 김기춘 실장의 물러남과 함께 그 유령을 걷어내야 할 때이다.

<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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