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공주 - ‘생존자’의 슬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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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무비꼴라쥬

포스터=무비꼴라쥬

제목 한공주

감독 이수진

출연 천우희(한공주) 정인선(은희) 김소영(화옥)

상영시간 112분

개봉 2014년 4월 17일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들이 ‘생존자’라는 말을 쓸 때 내심 불편했다. 과장이라고 생각했다. 뉴타운 철거 현장에 세입자들이 ‘서민 학살하는 폭력정권…’ 플래카드를 내건 것과 비슷하겠지 생각했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서 부끄러워졌다. 나는 얼마나 ‘그 후 피해자들의 삶’에 둔감했는가를.

영화 <한공주>는 친절하지 않다. 영화가 시작하고 한참의 시간이 흘러도 관객들이 무슨 사건이 일어났는지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다. 어느 더운 여름날. 여학생을 인솔하러 온 선생님은 고장나 툭툭거리며 회전하지 않는 선풍기에 짜증을 낸다. 전학을 가는 여학생. 홀로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선생님 어머니’ 집에 여학생은 당분간 묵게 되었다. 불친절한 이야기 구조는 전략적이다. 현재는 다양한 계기로 과거에 있었던 사건과 접목한다. 영상미학적으로 연결되는 쇼트들도 흥미롭다. 쇼트와 쇼트가 충돌해 다른 의미들을 재현해낸다. 하지만 회귀되는 건 역시 그 사건이다. 주인공과, 이제는 세상을 떠난 주인공의 친구가 몸으로 겪어낸 끔찍한 지옥도(地獄圖).

<네 무덤에 침을 뱉어라>라는 영화가 있다. 시골 건달들에게 강간을 당한 여성의 복수극을 담은 영화다. 영화에서 제일 인상적이었고 오래 남는 기억은 이것이다. 머리도 좋고 완력도 좋은 건달들 사이에서 ‘빵셔틀’ 정도의 역할을 하는 덜 떨어진 친구도 예외 없이 끔찍한 복수, 죽임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가해자의 논리는 그런 빈틈을 무섭게 파고들어 만들어진다. 아마도 이런 식이었을 것이다. “그 여자애들이 문제 있던 거 아니야. 왜 부모와 떨어져 둘이 살았대?”, “원래 헤펐던 애들이 우리 애 인생 망치려고 수작부린 것이 틀림없어.” 집단윤간이라고 범죄의 죄질이 1/n로 줄어든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사건을 묘사하는 영화의 시선은 절제되어 있다. 전학 간 ‘한공주’를 찾아내려는 가해자 부모들의 집념, 또는 인지부조화는 기괴함을 넘어 소름까지 끼친다.

영화 제목인 한공주는 주인공 이름이다. 처음 왕따에 대한 영화라고 들었을 때 이름 탓인가 싶었다. 너무 튀는 이름이니까. 그런데 영화 보고 난 다음엔 생각이 달라졌다. 7공주라는 말이 있다. 요즘도 여학교에서 쓰이는 말인지는 모르겠다. ‘일진’에 해당하는 말이다. 주인공 한공주가 7공주의 1인(‘한 공주’)이었다고 하자. 그렇다면 그에게 가해지는 폭력은 정당화되는 걸까. 이 대목에서 떠오르는 건, 지난해 말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 러시에 떠오른 어느 성노동 여성의 ‘안녕하지 못하다’는 자보를 둘러싼 논란이다.

앞서 인용한 영화 <네 무덤에…>에 나오는 ‘덜 떨어진 친구’에 해당하는 캐릭터가 죽은 화옥의 남자친구 동현이다. 그는, 그리고 그의 아버지는 자신도 피해자였다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그런 정당화가 지옥과 같은 시스템이 계속 굴러가는 원천이다. 군대에서 욕먹는 것은 악행을 일삼는 자가 아니라 ‘어정쩡한 혁명’을 시도하는 사람이다.

사건의 퍼즐 맞추기의 얼개는 영화의 중반부에 완성된다. 그리고 영화의 엔딩을 앞두고, 마지막 하나의 퍼즐이 맞춰지면서 극중에서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던 ‘생존자’의 슬픈 이야기를 화들짝 깨닫게 된다. 열린 결말처럼 남겨둔 마지막 장면의 CG에서 저예산 영화로서의 한계를 느끼게 하지만, 점차 감각이 무뎌져가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미안함과 자기성찰의 기회를 제공했다면 영화는 대성공이다. 적어도 필자에겐 그랬다. 추천하고픈 영화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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