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무사 스캔들 ‘사랑과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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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무사가 물의를 빚은 간부 등 부대원들을 사령부에서 방출한 것에 대해서는 전형적인 ‘꼬리 자르기’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기무사판 ‘사랑과 전쟁’인가. 지난주 기무사는 한꺼번에 터진 기무사 간부들의 일탈적인 ‘성(性) 군기’ 사건 보도로 시끄러웠다. 육군 모 사단 기무부대장이었던 ㄱ 중령은 최근 폭행 혐의로 헌병대 조사를 받았다. 

그는 한 여성을 폭행한 혐의로 고소를 당했다가 보직 해임됐다. ㄱ 중령은 이 여성과 몇년 전부터 부적절한 관계를 맺어왔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또 다른 기무 요원 ㄴ 소령은 후배 간부 부인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의혹이 제기돼 이달 중순 감봉 3개월의 징계를 받았다. 

경기도 과천에 위치한 기무사령부. | 서성일 기자

경기도 과천에 위치한 기무사령부. | 서성일 기자

기무사 고위 간부였던 ㄷ 대령은 여성 부하직원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는 의혹이 제기돼 작년 말 징계를 받은 뒤 육군 소속부대로 원대 복귀 조치됐다. 당사자인 ㄷ 대령은 영화 정도를 같이 본 사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강원도 전방부대에 근무하던 기무사 요원 ㄹ 중사는 작년 말 여군 숙소에 수차례 몰래 침입해 속옷 등을 훔치다가 발각돼 절도 혐의로 군 검찰에 입건되기도 했다.

보직해임·원대복귀가 강력한 징계?
국군기무사령부 요원들의 일탈행위가 잇따라 적발되자 네티즌들은 시끌벅적한 반응을 보였다. 

야당인 민주당까지 “기무사의 기강이 이 정도로 해이해진 것은 그동안 우월적·특권적 지위를 누려온 기무사가 기강이 해이해진 기무사 요원들에 대해 ‘온정주의’, ‘제 식구 봐주기’ 등 솜방망이 처벌을 해 온 결과”라며 “보직해임, 원대 복귀는 솜방망이 처벌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청와대가 비리 행정관을 지난해 원대 복귀시키며 “비리 행정관의 원대 복귀가 강력한 징계”라고 했던 사례까지 들춰냈다.

기무사는 “기무사 혁신의 일환으로 내부감찰을 강화하던 중 일부 부대원의 부적절한 행위가 적발돼 엄중히 징계했다”며 “본격적인 기무사 개혁작업을 추진 중인 상황임을 고려해 과거에 비해 엄한 징계를 내렸다”고 설명했다. 기무사는 부대원의 의식을 개혁하겠다며 ‘기무사 혁신 1230’ 계획을 지난달 발표한 바 있다.

기무사 출신인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 대통령직인수위 사진기자단

기무사 출신인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 대통령직인수위 사진기자단

사실 기무사는 소속 부대원의 원대 복귀를 강력한 징계로 여긴다. 이는 원대 복귀를 엄한 징계라고 주장하는 청와대와 크게 다르지 않다.

기무사는 국가정보원과 함께 자체 감찰 기능이 강한 기관으로 소문나 있다. 두 기관 모두 외부에 잘 노출이 되지 않는 조직이기 때문에 자정 기능이 강하지 않으면 조직의 기강이 흔들리기 쉽기 때문이다.
 
‘힘’이 센 군내 정보기관인 기무사는 부대원들에게 자체적으로 나름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 그러나 기무사는 부대원의 횡령이나 성매매, 음주운전 사고 등을 자체 적발하고도 군 수사기관에 거의 통보하지 않는 게 하나의 관행이었다. 

그러다 이런 사실이 외부에 노출되면 “문제 부대원들에 대해 별도 징계를 내리지 않았지만 기무사령부에서 방출했다”면서 “해당 간부들에게는 기무사에서 내보낸 것만으로도 징계”라고 밝혀 왔다. 

“기무사에서 다른 부대로 방출이 됐다는 것만으로도 본인에게는 큰 불이익”이라며 “이것도 하나의 징계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놓고 군 안팎에서는 기무사가 고위 간부를 포함한 간부들의 위법 사항을 적발해 놓고도 최소한의 징계를 내리거나 군 사법기관에 통보하지 않고 은폐하는 것에 대한 비판을 해 왔다.

기무사에서 방출된 후 원래 소속 부대로 원대 복귀한 당사자들도 ‘힘센’ 기관인 기무사에서 쫓겨난 것을 하나의 징계로 받아들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기무사가 물의를 빚은 간부 등 부대원들을 사령부에서 방출한 것에 대해서는 전형적인 ‘꼬리 자르기’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다.

과거 공식적인 자료로만 본다면 대한민국 군대에서 가장 청렴하고 군기가 엄정한 부대는 ‘기무사령부’로 봐도 무방했다. 이는 바로 기무사의 꼬리 자르기 덕분이었다.

기무사는 육·해·공·해병대 장병들이 합동으로 근무하는 부대다. 당연히 기무부대원들은 소속 (육·해·공)군이 있고, 소속 병과도 따로 있다. 방출된 기무부대원은 소속 군의 병과에서 다시 재분류해 근무지를 정해주게 된다.

가장 청렴한 부대는 기무사령부?
문제는 기무부대원이 기무사 소속으로 사고를 쳤다 하더라도 정작 행정적인 징계나 사법처리는 원대 복귀한 소속 군에서 이뤄지는 게 과거 관행이었다는 점이다. 그렇게 되면 이들의 행위가 기무사의 군기사고 통계에는 잡히지 않게 된다.

대신 애꿎게도 이들을 다시 받아들인 부대의 사고 통계에 잡히게 된다. 이런 식으로 기무사가 여전히 사고치는 군인이 없는 모범 부대가 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기무사의 전형적인 꼬리 자르기로 해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무사는 이런 관행에 대한 비판이 나오자 개혁 차원에서 이를 바로잡겠다고 밝힌 바 있다.

기무사에는 다른 군 부대에 비해 군의 우수자원이 상대적으로 많다. 힘센 기관이기도 하거니와 기무사 자체적으로도 군내 우수 자원을 스카우트하기 위해 애쓰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기무사 출신 군 간부들은 기무사를 떠나더라도 군내에서 고위직에 오르는 사례가 꽤 있다. 통상 기무사를 떠나 원대 복귀하는 경우는 두 가지로, 사고를 쳐 방출될 때와 본인이 스스로 원해서 원대 복귀할 때이다. 군내 고위직에 오르는 기무사 출신 간부는 후자의 경우이다.

‘꼿꼿장수’로 잘 알려진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대표적이다. 김 실장은 기무사의 전신인 보안사령부 시절 대위로 근무했다. 이후 기무사를 떠나 작전장교로 두각을 나타내 육군참모총장에 이어 국방장관까지 역임했다. 

김 실장 외에도 군 고위직을 지낸 기무사 출신 인사들은 꽤 있다. 이들은 기무사 시절이 군 생활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말한다. 군복만 입고 근무하다 보면 자칫 자신이 전문으로 하는 분야만 파는 외골수로 흐를 수 있는데 기무사에 근무하면서 군내 사안을 여러모로 폭넓게 바라볼 수 있는 시야를 키웠다는 것이다.

사족으로, 최근 중징계를 받은 한 영관 장교가 자신을 구제해주지 않으면 양심선언 후 모든 걸 터뜨려버리겠다는 메시지를 군 고위층에게 전달했다는 소문이 군내에는 파다하다. 

이를 놓고 군 내부에서는 기무사가 제대로 된 역할을 하고 있다면 이런 소문이 퍼질 수 있겠느냐며 기무사가 어떤 역할을 할지를 놓고 지켜보고 있는 분위기다. 

자칫 군 수뇌부에게까지 불똥이 튀면서 ‘스캔들’로 비화될 수 있는 사안에 대해 기무사의 향후 행보가 주목되는 대목이다. 해당 장교가 진짜로 억울한 징계를 받았는지, 아니면 부도덕한 행위를 실제로 하고 나서 상관을 협박했는지를 기무사가 밝히는 것은 그리 어려운 사안이 아니라는 게 군 내부의 중론이기 때문이다.

<박성진 경향신문 기자 longriv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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