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배’ 탄 해군의 군납비리 커넥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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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 장교들의 끈끈한 유대는 육군이나 공군의 정서와는 많이 다르다. 일단 해군 장교들은 ‘한배를 탔다’는 정서가 강하다. 한 번 인연을 맺으면 서로 밀어주고 당겨준다.

수상 구조함인 통영함의 납품비리와 관련해 감사원이 사실상 황기철 해군 참모총장에 대한 인사조치를 국방부에 요구했다. 27대 해군 참모총장인 정옥근 대장이 비리로 2년 전 징역형을 선고받은 데 이어 30대 참모총장인 황기철 대장까지 비리 연루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해군은 다시 한 번 큰 충격에 빠졌다. 게다가 해군의 낡은 대(對)잠수함 해상작전헬기 교체사업이 관계부서의 책임 떠넘기기로 표류하고 있는 배경에도 사업 초기 해군 참모총장 출신을 등에 업은 업체의 로비로 방향을 잘못 잡은 데서 비롯됐다는 주장도 나오면서 해군의 군납비리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감사원이 사실상 해군 총장 교체 요구

통영함의 납품 비리와 관련해 감사원이 국방부에 인사조치를 통보한 황기철 해군 참모총장. | 연합뉴스

통영함의 납품 비리와 관련해 감사원이 국방부에 인사조치를 통보한 황기철 해군 참모총장. | 연합뉴스

감사원은 지난 17일 통영함·소해함 음파탐지기의 성능 문제와 관련해 계약 당시 방위사업청 함정사업부장이었던 황 총장이 장비 획득 관련 제안요청서 검토 등을 태만하게 한 책임이 있다며 국방부 장관에게 인사자료로 활용하도록 통보했다. 군 안팎에서는 감사원이 사실상 인사조치를 요구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황 총장은 감사과정에서 기술적 문제를 일일이 알 수 없고 일부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주장했지만, 감사원은 해군에서 오랜 기간 근무한 경력을 고려할 때 납득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감사원이 명백한 범죄혐의나 중과실·고의성을 확증하지 못한 데다 공무원 징계시효(2년)까지 지난 사안에 대해 ‘별 넷’인 해군 대장의 인사자료 활용을 통보한 것은 청와대의 분위기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복합적인 정치적 함수가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박근혜 대통령은 “방산·군납 비리와 같은 예산집행 과정의 불법행위는 안보의 누수를 가져오는 이적행위”라며 “일벌백계 차원에서 강력히 척결해 뿌리를 뽑을 것”이라고 강한 의지를 천명한 바 있다. 이는 검찰과 같은 수사기관뿐만 아니라 감사원 같은 감사기관에 대해서도 국가원수가 가시적인 성과를 요구한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런 측면에서 해군 대장이라는 거물이 감사의 ‘그물망’에 걸렸는데, 감사원으로서도 그냥 넘어가기 힘들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국방부는 “감사 결과를 무겁게 받아들인다”는 반응을 보였다. 과거처럼 ‘군의 특수성’을 들먹이며 반발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다음에 인사할 때 참고자료로 쓰라는 것이다. 인사조치를 하라는 것과는 다르다”고 했다. 군 안팎에서 당장이 아니라 내년 4월 장성 정기인사 때 황 총장이 교체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 황 총장은 2013년 9월 취임해 내년 4월에 퇴임하면 1년 7개월을 재임하게 된다.

그러나 국방부가 군 통수권자의 심기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감사원이 군의 사기를 고려해 완곡하게 표현했지만 사실상 황 총장의 교체를 요구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상명하복의 군 조직에서 이런 정도로 리더십에 타격을 받으면 황 총장의 정상적인 지휘가 힘들 수 있다.

황 총장의 거취문제로까지 비화된 군납비리는 통영함의 음파탐지기에서 비롯됐다. 통영함에 1970년대 이전까지 사용되던 구형 음파탐지기가 탑재되면서 세월호 참사 수색·구조작업에 투입되지 못했다. 구형 탐지기의 통영함 탑재는 예비역과 현역 군인들의 커넥션에서 비롯됐다. 방산업계에서도 “해사 출신 인사들이 방산업체에 취업하면서 해군 측 인사들과의 부적절한 유착이 발생하는 것은 사실”이라는 말들이 나오고 있다.

부산 근해에서 해군 신형 구조함인 통영함이 항해 시연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부산 근해에서 해군 신형 구조함인 통영함이 항해 시연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과거 링스헬기가 두 차례 추락했을 때도 근본적인 원인은 군납비리였다. 2010년 4월 15일 링스헬기가 진도 앞바다에 추락해 4명의 해군 장병이 사망하자 해군은 사고 원인에 대해 “조종사의 비행 착각”이라고 발표했다. 이틀 뒤 서해 소청도 해상에서 발생한 추락사고의 원인에 대해서는 전파 고도계 결함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조사 결과 해군 군수사령부와 헬기 정비계약을 맺은 방산업체들이 고가의 부품을 교환하지 않고도 교환한 것으로 속여 온 사실이 들통났다. 2003년부터 2010년까지 7개 업체가 그간 추락하거나 불시착한 링스헬기의 정비에 관여해 왔으며, 이런 방법으로 부당하게 편취한 액수는 업체당 7억원에서 14억원에 달했다. 당시 링스헬기 부품의 납품 과정에도 해군 예비역들이 개입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2012년 정옥근 전 해군 참모총장은 총장 재직 시 군장병의 복지에 사용토록 돼 있는 수억원의 복지기금을 횡령해 개인용도로 쓴 혐의로 법정구속됐다. 재판부는 “부하직원들을 이용해 매달 정기적으로 기금을 빼내 가로챈 것은 죄질이 나쁜데도 일부 범죄사실을 부인하고,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있다”면서 정 전 총장에게 징역 2년을 선고했다.

시간이 꽤 지난 사건이지만 2005년에는 충남 계룡대 해군본부에서 감찰실 소속 장모 대령(해사 32기)이 고속정 방탄재 보강사업 사업자 선정과정에서의 뇌물수수 의혹과 관련돼 수사를 받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유서에 뇌물수수에 대해 모든 것이 자신의 책임이라는 내용을 남겼다. 당시 군 수사 관계자는 “장 대령이 후배 장교의 책임까지 자신에게 돌리는 모습을 보인 듯하지만 사실상 상부를 보호하기 위한 차원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 같다”고 밝혔다.

실무자와 브로커 해사 선후배로 확인
장 대령이 누구를 보호하려고 했는지에 대해서는 설왕설래가 많았다. 당시 경리병과 장교 2인자로서 차기 병과장직에 사실상 내정된 그가 목숨을 걸고 보호하려고 했던 대상은 총장이었다는 소문이 계룡대에서는 파다했다. 해군본부는 이를 강력하게 부인했다.

사실 해군 장교들의 끈끈한 유대는 육군이나 공군의 정서와는 많이 다르다. 일단 해군 장교들은 ‘한배를 탔다’는 정서가 강하다. 근무연이나 학연 등이 타군에 비해서 두드러진 측면이 있다. 한 번 인연을 맺으면 서로 밀어주고 당겨준다. 그러다 보니 총장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장성들의 희비가 엇갈린다. 이 영향은 영관급 장교들에까지 미친다. 이는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공군이나, 보직 자리가 많아 근무연이나 학연 등이 많이 희석되는 육군과는 사뭇 다르다는 게 군 내부의 중론이다.

통영함 음파탐지기 비리에서도 구매 추진 실무자와 브로커는 근무연이 깊은 해사 선후배였던 사실이 확인됐다. 방사청은 2008년 9월부터 700억원 상당의 예산을 들여 통영함·소해함에 탑재할 음파탐지기로 탐지의 정확도가 높은 ‘멀티빔’ 형태 기기의 구매를 추진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사양이 낮은 ‘단일빔’ 형태의 제안요청서를 작성·배포해 미국의 ㅎ사가 단독 입찰하게 됐다. 당시 방사청 상륙함사업팀장 ㄱ씨(예비역 대령)가 예비역 대령 ㄴ씨로부터 ㅎ사의 음파탐지기를 구매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단일빔’ 기준으로 제안요청서를 바꾼 것이다. ㄴ씨는 황 총장을 단독으로 만난 적도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감사원은 전했다. 감사원은 실무자들의 서류 조작과 해군 참모총장의 직무 태만 모두 해사 출신 인사들의 부적절한 커넥션이 배경이 된 것으로 보고 있다.

<박성진 경향신문 기자 longriv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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