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자 인권 핵심은 연민이 아니라 공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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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화사 진진

(주)영화사 진진

제목 어떤 시선

영제 If You Were Me 6

제작연도 2012년

감독 박정범, 신아가, 이상철

출연 임성철_두한, 김한주_철웅, 이영석_봉구

등급 12세 관람가

상영시간 109분

개봉 2013년 10월 24일 

<어떤 시선>은 국가인권위원회가 지원하는 여섯 번째 옴니버스 인권영화다. 지난 2003년 박찬욱, 임순례 등이 참여한 <여섯 개의 시선>으로 첫선을 보인 이후 벌써 10년째다. 이 시리즈의 가장 큰 약점은 옴니버스 기획의 특성상 한 편으로 묶여 있는 중·단편 작품들 사이에 균질한 완성도를 유지하기가 어렵다는 데 있다.

빼어난 작품도, 미적지근한 작품도, 하나마나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함량 미달의 작품도 인권영화 프로젝트라는 이름 아래 묶여 있었다. 그렇다보니 뛰어난 성취를 이룬 개별 작품이 정당한 평가를 얻는 데 어려움이 따랐다. 늘 그렇듯 인권을 다뤘다는 이유만으로 느슨하고 의례적인 상찬이 뒤따랐다. 그러나 ‘느슨하고 의례적인 상찬’이란 창작자와 시장 모두를 망치는 가장 성의 없고 효과적인 수단이다.

<어떤 시선>에는 박정범의 <두한에게>, 신아가·이상철의 <봉구는 배달 중>, 그리고 민용근의 <얼음강>이 수록되어 있다. 이 가운데 박정범의 <두한에게>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박정범의 <두한에게>는 장애를 가지고 있는 두한이와 단짝 철웅이의 이야기다.

장애를 가지고 있는 청소년과 그렇지 않은 친구 사이에 벌어질 법한 상투적인 장면 몇 가지를 떠올리겠지만 정작 영화는 예상했던 것과 영 다르게 흘러간다. 두한은 중산층 가정의 소년이다. 그는 뇌병변 장애를 가지고 있다. 두한의 친구 철웅은 저소득층 가정의 소년이다. 

철웅은 두한과 어울리며 그를 돕는다. 두한을 감싸다가도 짜증이 날 때면 철웅은 두한을 피한다. 그럴 때마다 두한은 철웅에게 말한다. “미안해.” 어느날 철웅은 두한의 집에서 아이패드를 훔친다. 그리고 곧 덜미를 잡힌다. 철웅은 다시 두한을 피한다. 두한은 불편한 몸을 이끌고 철웅을 찾아 나선다. 두 아이는 마침내 마주한다. 철웅이 두한에게 말한다. “미안해.”

<두한에게>는 그간 인권위 인권영화 프로젝트에 수록되었던 작품들 가운데 기획으로서의 연속성이나 개별적인 함량 등 거의 모든 면에서 유별나게 훌륭한 영화다. 

이런 종류의 영화들이 흔히 범하는 실수 가운데 하나는 창작자가 소재의 당위에 심취한 나머지 이것이 근본적으로 누군가에게 전달되어야 할 ‘이야기’라는 것을 망각한다는 점이다. 그런 영화들은 이야기로서의 역할은 방기한 채 자극적인 방식으로 비장애인 관객의 죄의식을 끄집어내고 막연한 연민과 계몽을 진열하기에 바쁘다.

<두한에게>는 연민과 계몽 대신 매우 정교하고 명확한 질문들을 품고 있다. 장애인은 불쌍한가. 장애인을 배려한다는 명목으로 되레 그를 착취하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는 장애인을 배려하고 싶은 것인가, 혹은 배려를 핑계로 고립시키려는 것인가. 우리는 그들을 단지 ‘불쌍한 사람들’이 아닌, 함께 어울려 살아갈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아니 의지가 있는가.

두한은 바보가 아니다. 그는 자신이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 결국 돈이 필요하다는 걸 이른 나이에 너무 잘 알고 있다. 철웅은 천사가 아니다. 그는 두한을 뜯어먹는 건 저 아이들이나 자기나 마찬가지라는 잔인한 사실을 깨닫고 있다. 친구를 자기 옆에 붙잡아놓기 위해 두한은 미안하다고 말한다. 우정의 이름으로 친구를 착취하고 있었다는 사실과 정면으로 마주하기 위해 철웅은 미안하다고 말한다.

이 서로 다른 종류의 미안함이 <두한에게>의 정수다. 그것이 서로 충돌하지 않고 양립 가능하다는 것이 중요하다. 인권은 교과서도 동화도 아니며, 양심의 고통을 달래줄 품격 있고 근사한 취미생활이 아니다. <두한에게>가 그 짧고 간단한 이야기에 걸쳐 던지는 질문들은 결국 하나로 모인다. 소수자 인권의 핵심은 연민이 아니라 공존에의 의지와 해법에 있다.

<무산일기> 이후 박정범은 한국사회에서 ‘타자’로 규정되어 영화 속 장르의 소품으로 쓰이거나 무분별한 연민의 대상으로만 소비되는 영역들을 화장기 없이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데 주력하고 있다. 영화적 틀 안에서 구현되는 그 특유의 냉기가 관객에게 사유의 기회를 제공하고 나아가 ‘진짜’ 온기를 느끼게 만든다. 박정범의 영화를 계속해서 보고 싶다.

허지웅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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