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정글만리’ 작가 조정래 “뗄 수 없는 한·중 젊은층의 관계에 양국 미래 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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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 작가의 소설 <정글만리>가 출간 석 달 만에 80만부가 팔렸다. 그동안 험준한 이념의 <태박산맥>을 헤매다, 구성진 <아리랑>을 부르고, 흐르는 <한강>에서 울음을 토해내며, 부질없는 <허수아비 춤>을 추는 한국인들을 통해 한국 현대사의 아픔을 그려왔던 그가 무대를 중국으로 옮긴 작품이다.

‘조정래’란 명품 브랜드의 위력은 역시 대단했다. 마치 금·은·동 메달을 독차지하듯 <정글만리> 1, 2, 3권이 나란히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랐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도 가볍게 눌렀다. 

책을 펴낸 후 황홀한 글 감옥에서 벗어나 자유를 만끽하는 줄 알았는데 현실은 그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았다. 밀려드는 강의 요청과 중국판 발간 등으로 여전히 정신없이 분주하단다. 

최근 받은 건강검진에서 40대 중반의 건강상태를 판정받아서인지 칠순의 작가는 이래저래 행복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하지만 현 정부나 후원회장을 맡았던 안철수 의원 등 정치 이야기에는 표정이 잠시 굳어졌다.

[유인경이 만난 사람]소설 ‘정글만리’ 작가 조정래 “뗄 수 없는 한·중 젊은층의 관계에 양국 미래 달려”

1990년에 처음 이 책을 구상했다면서요. 23년 전에 오늘의 중국을 예상했습니까.
“당시 <아리랑>을 집필하며 자료 취재차 중국에 갔습니다. 한·중수교가 되기 전이라 기자·작가는 입국이 불가능했어요. 당시에도 중국 관리의 부패가 심해서 200달러를 주고 비즈니스 비자를 받았어요. 당시 소련이 몰락하고 물자도 빈곤한데 중국에 가보니 쌀이 남아 돌고 샴푸 등 생필품도 풍족해서 놀랐습니다. 

작가만이 아니라 역사·사회·정치학자라면 왜 중국은 건재한가에 대한 궁금증을 느꼈을 겁니다.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10년 만에 이 정도의 변화를 가져왔는데, 10년, 20년이 흐르면 엄청난 변혁이 있겠다고 작가의 직감으로 느꼈습니다. 그래서 중국을 공부했죠.”

중국은 지리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가장 가까운 나라이면서도 가장 오해가 많은 나라이기도 합니다.
“중국에 대한 인식과 감정은 세대에 따라 차이가 나더군요. 6·25 전쟁을 경험한 세대에겐 적대적 개념, 젊은층에게는 가난하고 무식한 나라라는 게 중국에 대한 이미지가 아닐까 합니다. 

윗세대 감정은 잊어야 하고, 젊은층의 오만과 편견은 버려야 합니다. 우리는 중국을 짝퉁 천국, 더럽고 게으른 나라라고 여기지만 만약 그들이 정말 게을렀다면 오늘의 발전이 가능했을까요. 중국은 23년 만에 G2로 비약적 발전을 이뤘고, 현재 소득 2만 달러 이상의 인구가 2억명입니다. 

또 중국은 세계 170개국에 화교가 있고, 그들이 보유한 자산이 3조 달러에 이릅니다. 그런 나라를 무시할 수 있나요. 반면 중국은 겨우 5000만명의 인구로 스포츠와 문화 등에서 한류를 만든 한국의 힘을 경이적으로 여깁니다.

부지런하고 성실한 민족으로 생각하고요. 다만 자대, 즉 스스로 너무 크게 봐서 잘난 척을 하는 국민이라고 보는 시선도 존재하죠.”

한국 현대사를 서사로 삼는 작품을 써왔고, 이 작품 역시 중국이 무대이지만 한국의 이야기를 합니다. 한국인들에게 어떤 말을 하고 싶어 이 책을 썼는지요.
“소설 제목이 이 작품을 상징합니다. 소설은 주인공 전대광이 아니라 부모 반대에도 국제결혼을 성사시키는 베이징대학 학생들의 결혼식으로 끝납니다. 전 중년세대보다는 20~30대의 젊은층들이 이 책을 읽어주길 바랍니다.

이제 한국은 중국과 더불어 같이 발전하고 상생해야 하니까요. 중국이 14억 인구의 내수시장으로 돌아섰는데, 우리가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한국의 생존이 걸렸습니다. 

똑같은 물건을 수출해도 미국에 가는 것보다 중국에 가는 운송비는 3분의 1도 안 되죠. 지금 광화문 사거리가 온통 중국인 관광버스로 가득 차 있어요. 중국과 한국은 이미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됐어요. 양국 젊은층의 관계에 우리 미래가 달려 있습니다.”

소설 주인공은 주재원이나 비즈니스맨이지만 중국을 잘 알아야 하는 정치인들에게도 필요한 책인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냉전시대 해체 후 G1을 향해 줄기차게 달려가는 중국의 실상을 잘 파악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가장 어려운 외교 상황이기도 하죠. 미국은 우리가 중국편을 들어주면 싫어할 거고, 중국 역시 마찬가지니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지경이지만 우리가 두 나라 사이에서 중심을 잘 잡아야 합니다. 

중국보다 우선 미국을 설득해야죠. 21세기는 한 나라가 패권을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공존공생해야 한다고요. 제 개인적 생각으로는 모든 면에서 중국의 역할과 비중이 커지는 만큼 중국 외교와 관련한 대통령 직속 특별기구를 만들어야 합니다. 중국과 관계가 좋아야 한반도 안정과 통일 역시 순조롭게 이뤄질테니까요.”

3권 1300여쪽에 달하는 소설을 다 읽고 나면 기진맥진하게 된다는 반응입니다. 중간에 멈추기 힘들 만큼 흡인력이 큰 데다 정보량이 어마어마하더군요. 자료 조사만도 엄청났을 텐데요.
“제가 책에 묘사했듯 ‘알 수 없는 것이 첩첩인 세상’인 중국을 이야기하려고 20년간 노력했죠. 중국 관련서적을 닥치는 대로 읽고 그 가운데 80권을 추려 포스트잇을 붙여가며 마치 대학입시나 고시공부하듯 했죠. 공부를 마친 후에 현장 취재를 했습니다. 

20년간 여덟 번 중국에 가서 숱한 사람을 만났고, 중국 기사 스크랩만 노트로 90권입니다. 제가 그동안 현대사를 다룬 <태백산맥> 등을 썼지만 역사·사회학자들로부터 그들의 눈에 거슬린다는 지적을 받지 않은 것은 그만큼 철두철미하게 공부하고 취재한 결과입니다.”

글쓰기를 ‘황홀한 글 감옥’이라고 하셨지만, 7만5000장의 원고를 직접 원고지에 꾹꾹 눌러 쓰면서 육체적·정신적 스트레스도 엄청났을 것 같은데요.
“작가의 일은 언어와의 싸움입니다. 가장 적확한 언어를 찾기 위해, 그 인물의 심정을 제일 적절하게 묘사하기 위해 죽음이 보일 때까지 노력합니다. 무감동한 현대인의 영혼을 뒤흔들게 노력해야죠. 

<태백산맥>을 쓸 때는 온몸이 조각조각 깨지고 바스라지는 것 같았어요. 내 육신이 날아가거나 땅속으로 가라앉는 것 같아 ‘내일 아침에 못일어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을 느끼면서도 계속 글을 썼습니다. 중1인 큰손주에게도 ‘이 할아버지는 수백 번씩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도 글을 쓴다. 뭐든 그렇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해줍니다.”

[유인경이 만난 사람]소설 ‘정글만리’ 작가 조정래 “뗄 수 없는 한·중 젊은층의 관계에 양국 미래 달려”

정치나 사회 문제에도 관심이 크신데 현재 우리나라의 가장 큰 병폐는 뭘까요.
“정치가 너무 미숙하고 치졸하고 파렴치합니다. 국민을 무시하고 당리당략, 소모적인 패거리 싸움에 치중합니다. 우리나라 1800만명의 근로자 가운데 800만명이 비정규직입니다. 비정규직은 외환위기 때 많이 늘었어요. 

당시 국민의 동의하에 모두 허리띠를 조이고 집안의 금까지 다 들고 나와 나라를 살리려고 합심했죠. 그 외환위기를 해결했으면 비정규직도 없앴어야죠. 비정규직들의 불평등과 불안은 결국 우리 사회 불안의 절대적 요소가 됩니다.

세계 역사를 봐도 역대 수많은 왕조와 왕국이 생성·소멸을 반복했지만, 한 나라가 사라지는 이유는 백성을 굶주리게 했기 때문입니다. 백성은 바다요, 권세는 그 위에 뜬 일엽편주임을 알아야 합니다. 비정규직이 계속 빈곤한 상태인데 기업은 계속 부자가 되고 정부는 기업편만 들지 않습니까.”

박근혜 정부에 대한 평가도 듣고 싶습니다.
“잘한 것도 있고 잘못한 것도 있죠. 우선 ‘역사교육을 강화해서 하라’는 점과 일본이 저렇게 예의 없이 격도 없이, 저렇게 야비하게 하면서 정상회담을 하자고 할 때 ‘그럴 거면 할 필요가 없다’고 거부해버리는 이 단호함은 잘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인사가 너무 왜곡편파적이더군요. 현재 40~50대의 능력 있는 사람들도 많은데 인재를 고루 등용하지 않는 것은 큰 실수라고 생각합니다. 또 국정원 대선 개입 문제도 ‘덕 본 것 없다’고 단언하는데 무슨 논리와 근거로 덕을 보지 않았다고 합니까. 솔직하게 ‘내가 시킨 것은 아니지만 국민에게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직접 사과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총리를 시켜 사과를 하는 건 국민 기만이죠.”

안철수 의원의 멘토로 알려졌고 후원회장도 맡았죠.
“그 사람을 지지한 것은 가장 비정치적인 사람이 새정치를 하겠다고 해서였습니다. 정치는 바르게 다스린다는 뜻인데 우리 손자가 성장할 무렵에 그런 사람이 바른 정치의 물꼬만 잘 틔워도 좋겠다고 생각했죠. 

대통령 후보 시절에 맡았던 후원회장은 안 의원의 대선 포기로 자연히 소멸된 자리입니다. 또 정책네트워크의 이사 역시 문화분야 등에 해줄 이야기가 있을 것 같아 참여했을 뿐 전혀 정치적인 자리가 아닙니다.”

윤여준, 김종인씨 등 많은 멘토나 측근들이 안 의원 곁을 떠났는데 아직도 안 의원 곁을 지키는 이유는 뭔지요.
“대통령 선거야 전국민적 사안이잖아요. 대통령이 되면 적게는 2000개, 많게는 2만개의 자리 임명권이 있으니 사람들이 모였고, 지금은 300명 중 1인인 국회의원이니 (사람들이 떠나는 것도) 당연한 일이지요. 안철수씨가 정치적 체험기-시험기-시련기를 겪은 후에 그런 경험 축적으로 잘 성장해서 다음 대통령 후보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렇지 못하고 기성 정치인처럼 변질된다면 단호히 등을 돌릴 겁니다. 그야말로 안 의원의 앞날이 정글만리인 셈이죠.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이나 안철수 의원에 대해 평가하기엔 너무 짧은 시간이 아닌가요. 우리의 조급한 마음이 문제입니다.”

정동영 전 장관이 지난 총선에 출마할 때도 지지연설을 해주는 등 진보정치인들을 많이 돕는 이유는 뭔가요.
“소설은 인간에 대한 총체적 탐구입니다. ‘진실’만 말하고자 하는 작가는 필연적으로 진보적일 수밖에 없으며, 기득권을 향유하는 보수세력과는 갈등하고 맞설 수밖에 없죠. 그것이 바로 소설의 비판정신이며 휴머니즘의 실현이기도 합니다. 작가는 결국 ‘이성적 분노와 논리적 증오’를 가진 시대의 고발자이자 비판적 지식인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현실정치에 뛰어들 수 없으니 진보적 정치인들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되고 싶은데… 별 효과가 없네요(웃음).”

다음 작품은 교육 문제를 다룬다고 들었습니다.
“우리나라 교육은 심각하다 못해 파탄 수준이라는 생각에 새 책을 쓰려고 합니다. 원인은 자명합니다. 엄마의 탐욕과 자식에 대한 기대와 욕구가 수십 겹씩 덕지덕지 쌓여 아이의 소양과 꿈을 말살시키고 무조건 좋은 대학만 가라고 합니다. 

중학생인 손주에게 그런 책을 쓰고 싶다니까 ‘꼭 쓰라’고 하기에 손자의 윤허를 받아 준비 중입니다. 1차 독자는 청소년, 2차 독자는 그들을 압박하고 있는 부모세대들인데 10대들에게 인생을 낭비하지 않도록, 부모들의 소유물이 아닌 ‘인생의 주인공’으로 살아가도록 북돋우는 그런 소설을 쓰고 싶습니다.”

너무 지당한 말씀이나 과연 소설 하나로 교육에 변화가 있을까요.
“지난 7월에 손주 학교에 가서 특강을 했어요. 중학생들에게 ‘장래 진로를 결정할 때 가슴 뛰는 일, 정말 하고 싶은 공부를 해라. 부모가 욕심을 부리면 반드시 저항해라. 난 내 뜻대로 할 것이고 부모의 부속물이 아니라고 해라. 만약 부모님과 소통이 안 되면 나한테 모시고 오라’고 했어요. 

학생들이 함성 지르고 호응이 대단했죠. 교장선생도 ‘내가 말하면 파면당할 말인데 선생님이 해줘서 고맙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그 다음날 방학을 했거든요. 한 학생이 방학 기간 중 수학학원과 과외 등 프로그램을 짠 엄마에게 저항을 하다가 제게 전화를 걸어왔어요. 

제가 어머니를 설득했고 결국 그 학생은 학원 대신 여행을 떠났어요. 작은 변화이지만 얼마든지 교육개혁도 가능하다고 봅니다. 엄마와 아내를 설득하는 것이 중요해요.”

선생님은 부인인 시인 김초혜 선생을 잘 설득합니까.
“아뇨, 제가 설득당하죠. 아내는 제가 잘못한 일이나 편향된 말을 하면 항상 바르게 지혜롭게 지적해줍니다. 그래서 제게 아내는 매일매일 새롭게 피어나는 아름다운 꽃처럼 여겨져요. 진정한 사랑은 장점만 아니라 단점까지도 감싸는 것입니다. 부부는 나이들면 절실히 필요한 삶의 지팡이인데, 점점 의지하게 됩니다.”

인터뷰는 거대한 중국의 <정글만리>에서 시작해 아내 사랑으로 끝났다. ‘공처가가 아니라 경처가’임을 자처하는 조정래 선생은 훌륭한 작가 이전에 멋진 남편이었다. 그는 치열한 작가정신으로 베스트셀러 작품을 쓰고, 문학만큼 아내를 사랑하는 것 같다. 칠순에도 남편에게 ‘매일 새로 피어나는 꽃’으로 불리는 김초혜 시인은 대체 전생에 몇 나라를 구한 것일까.

<글·유인경 경향신문 선임기자 alice@kyunghyang.com>
<사진·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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