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바쁜’ 정치평론가 이철희 “질 낮은 정치평론 종편 등 방송 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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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이자 정치평론가인 이철희씨가 10월 14일부터 TBS 교통방송 <생방송 퇴근길 이철희입니다>라는 프로그램의 진행자로 나섰다. 방송에 등장한 지 1년여 만에 자기 이름을 건 매일 2시간짜리 프로를 맡다니 엄청난 고속 출세다.

평소 정치에 관심이 없는 아줌마들도, 보수 성향의 어르신들도 각 프로그램에서 정치에 관한 이야기를 차분하면서도 날카롭게, 때론 유머러스하게 전하는 그의 이름을 기억한다. 최근엔 “귀엽다”며 사인을 요청하는 아줌마들도 있고, 아이돌도 아닌데 팬카페까지 생겼단다. 정치판은 여야가 모두 한숨만 나오는데 그를 비롯한 정치평론가들은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지난 대선 직전에 종편에 자주 등장해 정치평론을 하던 윤창중·김행씨가 청와대 대변인으로 입성한 후 어떻게 해서든 정치평론가란 타이틀을 달려는 이들도 늘어났다. 요즘 jtbc <썰전>, 교통방송 <생방송 퇴근길 이철희입니다>, 하니TV <시사게이트>, 프레시안 팟캐스트 <이쑤시개> 등의 프로에 고정 출연하고, 경향신문을 비롯한 신문에 칼럼을 연재하며, 서울디지털대학교 강의와 각종 강연들까지 유명 연예인 수준의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는 이철희씨를 만나 대한민국에서 정치평론가로 산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유인경이 만난 사람]‘가장 바쁜’ 정치평론가 이철희 “질 낮은 정치평론 종편 등 방송 탓”

자신의 이름을 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소감은 어떤가.
“부담스러우면서도 재미있다. 현재 라디오는 아침 시간대가 시사프로그램의 전쟁터다. 주제도 무겁고 유명 정치인이나 관료들의 발언이 핫이슈를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하루 일과를 마치고 퇴근하는 저녁 시간에는 부대끼는 시사뉴스보다는 편안하고 부드러운 소식을 전하려고 한다. 패널로 출연할 때는 내 이야기를 주로 말했지만 진행자는 방향성을 제시하는 역할이라 신경이 쓰이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임한다.”

현재 가장 바쁜 정치평론가인데 정치평론가는 어떤 자질이 필요한가.
“우선 현실정치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또 정당의 내부 사정을 알아야 공허한 평론을 하지 않는다. 또 내부 사정을 아는 만큼 객관적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특정한 편을 들어 진영논리에 갇히면 안 된다. 가끔 정치평론가들이 방송에서 마치 정당 대표처럼 대리전을 치르는 경우도 많은데, 평론가는 균형감각이 중요하다. 정치평론은 일반 분야와 다르다. 음악이나 영화 등은 작품이 만들어진 후에 그 작품을 놓고 평하지만 정치는 현재 이뤄지는 일에 대한 논평을 해야 해서 매우 조심스럽다. 행위자로서의 자세를 가지면 위험하다.”

그런데 요즘 왜 그리 ‘정치평론가’를 자처하는 이들이 많은가. 특히 종편에서는 교수, 치과의사, 스피치학원장, 시인, 심리학자는 물론 정체불명의 사람들까지 정치평론을 한다.
“종편이 가장 쉽고 싸게 만드는 프로그램이 정치평론가 몇 명이 등장하는 시사토크인데, 수요가 늘어서 그렇다. 종편의 주시청자들이 50~60대인데 얼마 전까지 총선에 대선 등 정치 시즌이 이어지고, 시장이 커지면서 옥석을 가리지 않고 평론가들이 등장했다. 또 정치 지망생들이 너도나도 평론가로 나서 자기 이름 알리기에 바쁜 것도 한 요인이다. 정치평론가가 자격증이나 특별한 잣대가 있는 것도 아니니 누구나 나설 수 있다.”

평론이라고 하기엔 너무 독선적이거나 공허한 말만 하는 이들도 많다.
“종편의 시사프로 범람과 수준 낮은 정치평론가 양산에는 공중파의 책임도 크다고 생각한다. 공중파에서 정치 뉴스가 의도적으로 퇴출되면서 객관적 근거를 갖고 말하는 정치 토론 프로도 거의 사라졌다. 종편은 MSG 등 조미료가 잔뜩 들어간 자극적인 프로를 만들다 보니 객관적이거나 점잖게 말하는 정치평론가는 설 자리가 없다. 금방 퇴출된다.

반면 매스컴을 통해 자신을 알리려는 이들은 독설이나 객관적이지 못한 말로 존재감을 보이려 하는데 이게 자극을 원하는 종편의 이해와 맞아떨어지는 것이다. 교수들이 정치평론가로 나서는 것도 문제다. 얼마 전에는 각 정당의 이 캠프 저 캠프를 기웃거리던 폴리페서가 문제였다면 요즘은 정치를 근거없이 매도하거나 잘못된 방향으로 이끄는 독설 교수들이 더 문제다.

정치를 매도하고 비난하는 것이 가장 쉽지만 그만큼 위험하다. 아무리 한심한 정치인들도 나름 조국과 민족을 생각하고 관료들도 그 자리가 요구하는 책임의식이 있는데, 무조건 정치인을 욕하고 정치를 폄하하면 안 된다.”

그 많은 정치평론가 중 가장 맹활약하는 비결은 뭔가.
“대통령비서실 정책행정관, 국회의원 보좌관, 국회 원내대표 비서실 부실장 등을 두루 거친 현실정치 경험 덕분에 합리적인 정치평론을 한다는 평가를 받는 것 같다. 우리 사회를 바꾸는 힘은 진영논리에 포획된 사람이 아니라 진영논리에서 자유로운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그 사람들이 어떤 판단을 하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에 몇 가지 원칙을 갖고 방송한다.

가장 중요한 게 진영논리를 대변하지 말자는 것이다. 이 말은 내가 진영의 노예가 되지 말자는 것이지,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거부한다는 건 아니다. 또 같은 진영이라고 해서 편들어줄 생각은 없다. 이런 내 원칙이 방송 프로에서 온건하거나 합리적으로 보여서 새로운 형식의 시사프로에 많이 출연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정치나 정치인의 예능화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국감에선 서슬퍼렇게 장관을 지적하던 국회의원들이 어떤 방송 프로에선 초등학교 운동회처럼 서로 가슴에 풍선을 넣고 터뜨리는 게임도 하던데.
“정치는 이미 예능화가 됐고 정치인이 따라온 셈이다. 박근혜·문재인 등 대선주자들이 ‘힐링캠프’ 등에 나온 이유도 미디어 말고는 정치인들이 소통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청중민주주의 시대에 미디어의 힘이 너무 커졌고, 진보진영이 주도한 정치개혁이 잘 이뤄지지 않으면서 정치인의 예능화가 대세가 됐다.

진보정치가 민주화 이후 현실정치에 대한 적응을 못하고 답도 내지 못하면서 시대담론이 사라졌다. 그러다보니 부유초처럼 뿌리없이 흘러 미디어에 의존하는 것이다. 요즘 정치인의 활동은 내 기사나 사진이 미디어에 얼마나 많이 나왔느냐로 점수 매겨지고 보좌관의 능력이 평가된다. 큰 방향에서 보면 정치가 스스로 혼자 설 힘이 없어져 예능화되어 가는 것이다.”

정치가 너무 엄숙할 이유는 없지만 그렇다고 코미디가 되는 것도 문제 아닌가.
“정치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 정치의 주체가 보통사람들의 생활과 관련되어 대중들이 주시하면 정치인도, 정치평론가도 무모한 언행을 하지 못한다. 그런데 정치 주체가 보통사람들의 삶과 관련한 주제를 다루지 않는다. 복지정책도 이상주의가 아니라 복지정치의 메커니즘을 통해 나와야 한다. 정책은 과잉인데 복지정치를 잘 하는 사람이 드물다. 대중들에게 쉽고 편안한 말로 복지정치를 설명해줄 전문 정치인이 없다. 다른 분야도 비슷하니 정치가 코미디로 비치는 것이다.”

[유인경이 만난 사람]‘가장 바쁜’ 정치평론가 이철희 “질 낮은 정치평론 종편 등 방송 탓”

대중에게 쉽게 말하는 정치인이 유능한 정치인인가.
“자기 철학과 어젠다가 있어야 쉬운 말로 전달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주장한 지역주의 해소와 지역균형발전은 그가 10여년 넘게 천착해 본인의 소신과 확신이 있는 분야였다. 그걸 포퓰리즘이라고 매도할 수 없다. 그런데 안철수·문재인의 어젠다는 무엇인지 모르겠다. ‘새정치’가 어젠다는 아니다. 정치인은 온몸으로 부딪쳐 자기 정책이나 어젠다를 만들어야 한다. 인기도나 지지율이 문제가 아니다.”

얼마 전 방송에서 안철수 의원이 하지 말아야 할 말 세 가지를 충고해 화제가 됐다.
“애매한 태도보다는 뚜벅뚜벅 나아가는 모습이 필요한 때라는 생각에 ‘아니다’ ‘모르겠다’ ‘생각해본 바 없다’란 말을 하지 말라고 했다. 안 의원은 아무도 모르는 ‘새정치’란 말을 ‘이런저런 것이 새정치’란 식의 개념 정의로 승부해선 안 된다. 쿠데타도 다 새정치를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새정치가 아니라 새로운 사람을 찾아야 한다.

악마와도 손을 잡아야 하는 것이 정치다. 당을 만든다는데, 그가 요구하는 깨끗하고 유능한 사람을 현 정치판에서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도자의 몫은 깃발 들고 끌고가는 힘이다. 특히 초창기에는 무조건 저질러야 한다. 정치는 머리로 하는 공부가 아니라 온몸으로 부딪쳐 깨닫는 행위예술이다. 

그런데 안 의원은 착한 정치인, 괜찮은 국회의원인지는 모르지만 난세에 새로운 지도자상의 결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선의만으로 정치를 할 수 없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안 의원은 지금도 ‘대선에 내가 나갔으면 이겼을 것’이란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건 착각이다.”

그럼 문재인 의원은 어떤가.
“안 의원과 비슷하다. 참 착한 분이지만, 착한 후보가 좋은 후보는 아니다. 정치의 본질은 폭력적이다. 빼앗아 쟁취해야 한다. 내가 보기엔 안 의원과 마찬가지로 진화의 속도가 너무 더디다. 정치인, 특히 지도자는 대중의 삶을 책임지는 대리인이다. 그들을 위해 어떻게 싸우고 희생해야 할지 치열하게 고민해야 하고, 무모한 도전도 해야 하고, 비난도 감수해야 한다.

DJ가 1992년 대선에서 패배하고 쓸쓸히 영국으로 떠났을 때, MB가 금배지 하나 달아보려고 이회창 총재에게 굽신거리다 미국으로 갔을 때, 노무현이 종로·부산에서 계속 떨어졌을 때 그들에게서 차기 대통령의 그림자를 누가 봤는가.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붓는 승부근성이 필요하다. 특히 대통령의 자질은 정치적 과정에서 숙성되고 훈련되는 것이다. 그런데 문 의원 역시 정파의 수장을 못벗어나고 있는 것 같다.”

여의도에 잘 알려진 전략가 출신이다. 지난 총·대선 때 민주당의 필승전략을 내놓았지만 빛을 보지 못해 화가 나서 민주당을 나왔다고 했다.
“총선 때의 민간인 불법사찰이나 대선 때의 과거사 논쟁은 이기는 프레임이 아니라 그저 날리는 잽이라고 주장했다. 국민들은 과거사나 정치구호보다 내 삶이 얼마나 더 좋아지는지를 강조해야 한다. 이젠 민주논쟁이 아니라 복지, 삶의 질을 이야기해야 한다고 했다. 민주당이 이념논쟁하는 사이에 박근혜 후보가 민주당 정책을 다 가져갔다.

무상급식도 오세훈 전 시장 때문에 불이 붙었는데 새누리당이 해주겠다고 하고, 경제민주화도 김종인씨를 옆에 둬서 무게감을 더했다. 지금 논쟁 중인 NLL이나 국정원도 국민에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민주당의 복지정책은 대중에게 쉽게 전달되지 않는다. 복지를 감당할 사람을 전면에 내세워야 하는데, 인적 쇄신이 전혀 안 되고 있다. 복지시대에 맞는 정치인, 새로운 사람들이 새 목소리로 설명해야 한다. 나 같으면 교육복지를 내세워 서울대 폐지론 등으로 논쟁에 불을 붙이겠다.”

인적 쇄신은 쉬운가.
“어렵다. 항상 물갈이를 강조하지만 민주당은 여전히 과거 인물들인 이해찬·한명숙·김한길이 이끈다. 386들은 대권은커녕 당권주자도 못만들었다. 그런데 그들도 50대에 진입했다. 항상 수혈해오던 운동권이나 시민운동가도 이제 고갈된 상태다. 복지나 노동분야 정책통도 안 보인다. 당도 스타를 만드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왜 우리는 정치는 물론 언론까지 양극화가 심할까. 진보와 보수의 덕목이 있는데.
“우리의 보수는 깝깝한 꼴통이고, 진보는 시끄러운 깡통이다. 보수의 정체는 친기업이고, 진보는 그 반대인 친노동이다. 각자 대립하면서도 윈·윈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 진보는 친북, 심지어 종북으로 규정된다.

노동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의 삶의 문제를 해결해줘야 하는데 이념만 강조한다. 아무리 순환출자가 어떻다 등등의 이야기를 해도 대중들에게 와닿지 않는다. 그런데 새누리당은 ‘돈이 도는 경제민주화’란 쉬운 슬로건을 내걸었다. 이제라도 민주당을 비롯한 진보진영이 국민들의 일상 삶을 화두로 한 정책을 쉽고 간결한 슬로건으로 내세우지 않으면 차기에도 정권을 되찾기 힘들다.”

이제 지명도도 높아졌는데 다음 국회의원에 도전할 생각인가.
“방송에서 얻은 인기로 공천을 얻을 욕심은 없다. 국회의원이란 직업도 그렇게 매력적이지 않다. 내 지향은 최고의 전략가다. 정권교체에 나름대로 전략적 구상을 갖고 움직이고픈 기대는 크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국회의원이 아니면 그런 기회를 안 준다. 그래서 그 전략을 실천할 도구로 국회의원이 되려고 했을 뿐이다. 정치평론가로서의 효용도가 얼마 남았는지도 모르겠다. 국회의원에 도전할지 말지는 2년 정도 더 고민해봐야겠다.”

2008년에야 국회에서 나올 때 받은 퇴직금으로 첫 해외여행을 가족과 다녀왔다는 이철희씨는 요즘 방송출연료 덕분에 고2·3학년인 아이들에게 아버지로서 경제적 책임을 다 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했다. 정치평론가에게도 행복은 ‘내 가족이 돈 걱정 없이 여유롭게 사는 것’이었다.

<글·유인경 경향신문 선임기자 alice@kyunghyang.com>
<사진·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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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 나아진 게 없다
오늘을 생각한다
아동학대, 나아진 게 없다
지난 6월 10일 경기 수원시청 앞에서 수원시 장안구의 한 민간어린이집에서 벌어진 집단 아동학대 관련 기자회견을 했다. 비슷한 사건을 접할 때마다 가해자들의 범죄행위에 치를 떨면서, 피해 아동 보호자들이 지친 마음과 몸을 이끌고 기자회견을 하게 만드는 망가진 시스템에 분노한다. 만 2세 반 어린이 13명에게 2명의 교사가 상습 폭력을 가했다. 경찰이 확보한 35일 치 CCTV에서 350건의 학대 행위가 발견됐고, 가해 교사 2명과 원장이 상습 아동학대와 방조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그러나 피해 가족들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원장은 아무런 행정 처분 없이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고, 가해 교사 2명은 자진 사직했기에 자격정지 등 처분을 받았는지 알 수 없다. 수원시는 할 수 있는 행정 조치는 다 했다며, 재판 결과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피해 가족들은 수원시 행태가 마치 2차 가해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아동들은 여전히 불안과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자다가 몇 번씩 잠에서 깨는 한 어린이는 “꿀향기반 선생님들이 자기를 데리러 올까봐 무섭다”고 했다. 다른 어린이는 작은 소리에도 몸을 움찔하고, 밤마다 악몽에 시달린다. 지난 1월 CCTV 영상을 확인하고 경찰 신고, 언론 보도가 이어졌지만 5개월 동안 가족들의 삶은 하루도 편하지 않았다. 만 2세 어린 아기들을 밀치고, 넘어뜨리고, 머리채를 끌어당기고, 냅다 던져버리는 영상을 보며 엄마·아빠들의 마음은 지옥으로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