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재취업에 앞장서 온 헤드헌터 유순신
최근에는 국정 역사교과서 논쟁에 묻혀 있지만 정치권의 최대 쟁점은 노동개혁이다. 노동개혁 분야에 여러 과제가 있지만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은 임금피크제와 노동시장 유연화다. 베이비붐 세대들이 드디어 정년으로 직장에서 나오고, 무사히 직장에 남아 있어도 임금피크제로 초라한 봉급을 감내해야 한다. 막상 퇴직해도 가정이나 사회 어느 데도 그들을 반겨줄 곳은 드물다. 내년부터 정년이 60세로 연장되기는 하지만 이젠 평생직장도 없고 모든 이들이 불안하기만 하다.
20여년간 헤드헌터로 일하며 인재발굴 일을 해왔고, 10여년 전부터 퇴직자들을 위한 시니어 재취업에 앞장서 온 유순신 유앤파트너즈 대표를 만나 100세 시대의 절반쯤 나이에 거리로 나올 이들을 위한 구제방안은 없는지를 물었다.
대통령과 여당에서는 노동개혁을 강조합니다만 다들 낙관적이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노동과 고용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국가 경제상황입니다. 현 대한민국의 경제는 무척 어렵고, 전문가들의 분석에 따르면 내년에는 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됩니다. 몇 년 전만 해도 연초인 1·2월쯤에 인사이동이 시행되었는데, 요즘은 외부환경의 악화로 주요 기업들이 정기인사를 연말로 앞당기는 추세랍니다. 장기적인 성장 둔화와 실적 부진, 조직 수술 예고 등으로 불안감에 떠는 임직원들이 엄청 많을 거예요. 올 연말에 금융계, 중공업계, 조선업계 등에서 구조조정 등으로 소위 대량학살에 가까운 퇴직자들이 나올 겁니다. 무사히 남아 있어도 자신이 원치 않던 부서로 갈 확률이 높죠. 이런 상황에서 직장인들이 요구하는 자리나 임금 등이 온전히 보전되기는 어려울 거예요. 그런데 요즘 60세면 청춘 아닙니까. 너무 젊고 능력 있고 열정도 뜨거운 이들이 ‘퇴직자’라는 이름으로 황량한 거리에 나온다는 것은 참 슬픈 일입니다.”
자신은 능력이 있다고 생각해도 조직에서 ‘안녕’을 고하면 나가야 할 텐데요. 이런 갑작스러운 해고 통보에 대처하는 방법이 있을까요.
“변화에 대해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죠. 자신의 잘못도, 혼자만의 문제도 아니란 것, 그리고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이라는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다음은 최소한 6개월 정도 휴식을 취할 필요가 있습니다.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면 각종 실수를 저지르기 십상입니다. 그 사이에 진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고민해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현재 상황을 주위에 적극적으로 알려야 합니다. 마침 다른 곳에서 인재를 찾는 곳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또 억울하게 해고당했다고 전 회사에 분노하거나 전 동료들과 인사도 안 하는 것은 참 어리석은 일입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지나온 다리를 불태우지 말아야 합니다.”
유 대표는 10년 가까이 이런 퇴직자들을 위한 재취업 등에 관심을 갖고 ‘시니어 앤 파트너즈’라는 자회사까지 만들었죠. 우리나라의 재취업 현실은 어떤가요.
“정년이건 명예·조기퇴직이건 은퇴자들과 관련해 국무총리실와 노동부 등 행정부처, 경영자총연합회나 전경련, 상공회의소, 심지어 금융권 등에서도 관심은 갖고 있어요. 다만 별반 실적이나 성과가 없습니다. 일단 경기나 기업의 상황이 안 좋아서 내부 인재도 내보내야 하는데, 외부 인재, 그것도 나이 많은 사람을 다시 쓰려고 하겠습니까. 중소기업의 경우에도 ‘제발 유능하고 경륜 있는 인재를 찾아달라’고 하면서도 막상 추천하면 나이가 너무 많다거나, 전 직장의 경력이 너무 화려해 오히려 자신의 회사를 뒤흔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 등등으로 쉽게 고용을 하지 않습니다. 주변에 보면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사회에서 배제되는 숨은 고수들이 너무 많아요. 이들의 축적된 지혜와 역량은 난제를 푸는 데 큰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경기침체나 실업난을 이유로 이들을 배제하기보다는 이들의 연륜과 경험을 십분 활용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 때라고 생각해요.”
외국의 경우엔 어떤가요.
“선진국에서는 퇴직 인재가 다시 취업하고 건강과 실력이 허락하는 한 노동시장에서 본인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 사회적으로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이력서에 나이를 쓸 수 없도록 되어 있고, 면접에서도 묻지 않도록 합니다. 실질적으로 정해진 정년퇴직을 해야 하는 나이가 없는 셈이죠. 영국 역시 1970년대부터 정부, 경제·시민단체 등이 광범위하게 참여한 ‘The Age Positive Campaign’이 전개돼 고용상의 연령 차별을 금지하도록 했고, 지금까지 잘 정착되고 있습니다. 북유럽의 경우에도 이런 시니어들의 재취업을 돕는 기관이 적극적으로 활동 중입니다. 영국 테스코의 한 임원은 퇴직 후에 평사원으로 같은 회사에 재취업해 매장의 영업관리를 맡고 있답니다. 그 조직과 산업을 어느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퇴직 인재를 통해서 회사는 노련하고 숙련된 노동력을 얻을 수 있고, 퇴직 인재는 리더로서 조직을 이끌던 경험을 통해 장기적으로 넓은 시각으로 일하는 보람을 느낄 수 있으니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는 셈입니다.”
퇴직 인재라는 말을 했는데, 중장년충이 핵심 인재가 되려면 평소 어떻게 자신을 관리해야 합니까.
“우선 가장 먼저 자기 자신을 잘 알고 분석해야 합니다. 자신이 지금까지 해왔던 경력과 이력서를 작성하고 진정으로 잘할 수 있는 분야, 강점을 살려 다시 한 번 도전해보고 싶은 업무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두 번째는 개인 브랜드를 만들어야 합니다. 누군가가 ‘나’라는 사람을 떠올릴 때 ‘이 사람은 이런 사람이었지’라고 쉽게 연상할 수 있도록 긍정적이고 함축적인 이미지를 형성하는 것입니다. 기업도 제품력과 함께 제일 신경쓰는 것이 브랜딩이거든요. 세 번째는 실적 위주의 이력서를 매년 업데이트해야 합니다. 이럭서는 개인의 연간 보고서랍니다. 1년간 자신이 얼마만큼 업그레이드 되었는지, 업무에서 어떤 도전을 했고 성공했는지, 혹은 실패했다면 무엇을 배웠는지 기록하고 보완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력서는 꼭 이직을 위해, 남들에게 보이기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보고 반성하고 힘을 내는 도구입니다. 네 번째는 달라지는 세상에 발 맞추는 것이 필요합니다. 중장년층 역시 갈수록 하나가 되어 가는 글로벌화에 동참해야 합니다. 영어는 기본이고, 잘할 수 있는 제2의 언어를 공부하면 더욱 좋죠. 페이스북·트위터 같은 소셜미디어에 대한 두려움을 버리고 친근해지도록 하고, 스스로를 언제나 깨워야 합니다. 마지막으로는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인맥을 구축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본인의 평판을 관리할 수 있고, 인생과 업무에서 중요한 사람을 찾을 수 있습니다. 어려울 때 정신적인 지주가 되어 주는 멘토와 역할 모델이 되는 벤치마킹 상대를 찾아 끊임없이 자신을 자극하고 촉진시켜 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죠. 멘토만이 아니라 멘티를 찾는 것도 중요합니다. 한 조직 안에서 많은 경험을 공유할 수 있고, 자신이 미처 깨닫지 못했거나 놓쳤던 부분을 다른 연령대의 시각으로 재확인할 수 있거든요.”
요즘은 이직이나 재취업할 때만이 아니라 평소 인사고과에도 ‘평판’이 매우 중요하더군요. 좋은 평판을 받는 비결이 있을까요. 나는 부지런히 일해도 후배들에게는 일중독에 빠진 가혹한 상사로 보이기도 하고, 그들에게 자율권을 줘도 무능하거나 비협조적인 상사로 평가 받는 사례도 있더군요.
“평판은 정말 중요합니다. 요즘은 자신이 작성한 이력서만 보지를 않고 전 직장이나 주변에 평판을 조회하는 것이 관례입니다. 저 역시 인재를 추천할 때 ‘그 사람 어때요?’라고 물어보는데, 똑같은 사람인데도 정말 가지각색의 평가가 나오더군요. 일은 잘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는 전혀 듣지 않는다든지, 화려한 스펙으로 무장했지만 실상 업무능력은 부족하다거나…. 평판 조회가 중요해지면서 예전과 달리 신랄하게 답해주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어요. 대여섯 번의 인터뷰와 적성검사까지 다 통과했는데, 마지막에 전 상사의 ‘그 사람을 내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싶다’라는 말 한마디에 채용이 취소된 사례도 있답니다. 평판을 위해 너무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는 없지만 평소 업무만이 아니라 동료들과의 소통도 중요하게 여겨야 하고, 무엇보다 항상 정직한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유독 한국에서 흥행에 성공했다는 영화 <인턴>을 보면 대기업의 부사장을 지낸 칠순의 로버트 드니로가 20대 여사장이 이끄는 회사에 인턴으로 들어가 허드렛일을 하면서도 젊은층과 잘 지내는 모습이 감동적입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이력보다 태도인 듯합니다.
“그렇죠. 어떤 곳에서도 잘 적응하는 열린 마음, 그리고 과거의 직위에 연연하지 않고 주어진 일에 만족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제가 아는 분은 대기업 임원이었는데, 59세에 9급공무원 시험에 도전해 합격했어요. 교도소의 교정교도관으로 일하고 싶어서랍니다. 5~6년은 더 일하면서 순간의 실수로 옥살이를 하는 이들을 교화시키고, 자활을 돕는 일을 하고 싶다며 즐거워했어요. 어디에 가치를 두느냐도 중요하고, 어떤 자세로 현실을 받아들이느냐도 매우 중요합니다. 한 분은 국내 대기업에서 사장으로 임기를 마친 후 3년간 고문 예우를 받았어요. 능력있는 분이라 그를 아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입을 모아 ‘나이는 많지만 고문으로 계시기 아깝다’고 말했는데, 고문 임기가 끝날 무렵 그룹 회장이 부회장 자리를 제안하며 도움을 요청했답니다. 흔치 않은 일이라 축하를 드리니 고은 시인의 시구를 인용하시더군요. ‘노를 젓다가 노를 놓쳐버렸다. 비로소 넓은 물을 돌아다보았다.’ 그러면서 ‘저도 일을 하지 않고 있다 보니 다른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노를 놓았다가 다시 잡으니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금 비록 회사가 어렵지만 원래 태평성대에는 예비군이 필요 없는 법입니다. 어려울 때 제 경험으로 도움이 된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습니다’라고 말씀하시더군요. 자신이 최선을 다하면 남들에게도 그런 모습이 보입니다.”
10년 가까이 시니어 재취업을 위해 고군분투했는데, 가장 보람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요.
“제가 참 축복 받은 사람이라고 느끼는 것이 인재들을 만나는 것입니다. 유능한 인재를 훌륭한 기업에 매칭시키는 일을 하니까요. 그런데 한때 엄청나게 잘나가던 사람들이 정작 어려울 때 저를 찾아옵니다. 얼마 전 30여년간 기업에서 일했던 분이 오해를 받아 재판을 받은 일이 있습니다. 결국 무죄판결을 받았는데, 다른 사람들은 그 사람이 사건에 휘말린 일만 기억하지 무죄판결을 받은 것은 모르더군요. 그래서 마침 경륜 있는 인재를 찾는 기업에 소개시켜드렸어요. 시니어 재취업의 경우 은둔자들을 사회로 이끌어내는 일이 대부분입니다. 그들에게는 새로운 세상을 보여드리고, 어려운 회사들에는 유능한 인재를 만나도록 해 서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뿌듯하고 기쁩니다. 거듭 강조하지만 우리나라도 언젠가는 인재가 부족해지는 시기가 올 게 분명해요. 이를 대비해 중장년층의 경험과 경력이 담긴 노하우를 활용해야 할 때입니다. 무엇보다 우리의 시각과 사고부터 바뀌어야 앞으로 다가올 ‘구인난’에 대비할 수 있을 겁니다. 피터 드러커는 ‘가치를 창출하는 가장 기본적인 경제적 자원은 더 이상 자본·토지·노동이 아니며 인적자원에 의해 창출되는 지식’이라고 했죠. 퇴직자는 연륜과 경험을 쌓아온 유능한 인재랍니다. 이들이 잉여가 아닌 우리 사회의 자양분이라는 인식이 필요해요. 그들이야말로 진짜 ‘히든 챔피언(Hidden Champion)’으로, 커다란 가치와 지식을 창출할 수 있는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모든 세대, 모든 사람이 인재로 활용되는 시대를 기대해 봅니다.”
유순신 대표는 ‘21세기의 인재상’은 연령에 상관없이 포기하지 않고 부딪쳐보는 열정, 업무에 매진하는 전문성, 활동무대를 세계로 넓히는 글로벌화라고 강조했다. 정부나 세상 탓을 하기 전에 지금 자신을 인재로 훈련하는 것, 그것이 100세 시대를 사는 이들의 의무인 것 같다.
<글·유인경 경향신문 선임기자 alice@kyunghyang.com / 사진·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