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서도 무죄 받은 이철규 전 경기경찰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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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들, 견제 안 받고 책임지지 않기 때문에 무소불위 권력 휘둘러”

누명을 쓰거나 배신을 당할 때 느끼는 ‘억울함’은 자살이나 살인의 주요 동기이기도 하다. 만약 두 번이나 기소되어 모두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면 그는 억울할까, 행복할까.

이철규 전 경기도 경찰청장이 지난 10월 31일 1·2심에 이어 대법원에서도 무죄판결을 받았다. 기소된 지 20여개월 만이다. 그는 2011년 제일저축은행 비리사건으로 구속된 유동천 회장에게서 수차례에 걸쳐 4000여만원을 받았다며 특정범죄가중처벌법 등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알선수재)로 기소돼 직위해제되고 5개월 동안 수감생활까지 했다. 2003년에도 구속됐다가 다시 복직된 바 있다.

경찰청장 바로 밑 계급인 치안정감인 그의 무죄판결은 내년 초로 예상되는 치안정감 인사에 변수로 등장했다. 직위해제돼 경찰청 대기발령 상태였지만 계급은 그대로 유지해와서 어디로든 인사발령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너무 억울해서 죽고 싶었다는 이철규 전 경기경찰청장을 만났다.

[유인경이 만난 사람]대법서도 무죄 받은 이철규 전 경기경찰청장

무죄판결을 받았다. 축하한다.
“참담하고 답답한 심정이다. 판결문을 보면 ‘저축은행 관계자 진술에 일관성이 없거나 관련자 진술 등과 모순되는 등 신빙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무죄판결을 한 것으로 되어 있다, 내가 운이 좋아 무죄판결을 받은 것 같은데 그게 아니다.”

무엇이 진실인가.
“존재하지 않는 일로 재판을 받아 억울하다는 것이다. 유동천 회장이 스스로 진술한 내용을 바탕으로 나를 수사·기소한 것이 아니다. 유 회장의 통화기록, 비서의 메모 등을 분석한 후에 경찰 간부인 나와의 통화기록을 보고 ‘잘 걸렸다’고 판단해 나를 표적으로 삼아 기소했다. 그게 억울하다는 것이다.”

유 회장과 자주 통화했나.
“강원도 동해 고향 어른이다. 고향 행사에서 가끔 뵙고 안부전화도 한다. 내가 그 지역 출신 최초의 치안정감이라 고향분들이 자주 격려전화를 하는데, 그런 친분을 이용한 편파적 짜맞추기 수사다.”

그렇게 확신하는 이유가 있나.
“객관적인 자료나 상황이 입증한다. 유 회장은 2010년 9월 28일에 구속됐는데, 검찰은 2011년 1월 6일에 나를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했다. 4개월 가까이 검찰이 유 회장을 압박·회유한 후의 일이다. 유 회장이 검찰 심문에서 ‘고향 후배지만 돈 준 기억이 잘 안 난다’고 하자 대검 중수부가 유 회장과 공범인 은행 직원들을 한자리에 앉혀놓고 ‘이철규에게 돈을 언제, 어디서 주었는지 한 번 기억을 되살려보라’고 서너 차례나 강요했다. 그때 자금담당 전무가 진술한 것을 바탕으로 뒤늦게 나를 기소한 것이다.”

검찰이 주장하는 내용은 뭔가.
“유 회장이 각종 명목으로 내게 수천만원을 줬다는 것이다. 먼저 2008년 가을에 자기 사무실에서 내게 민원처리 명목으로 현금 1000만원을 쇼핑봉투에 담아 건넸다고 한다. 제일저축은행의 CCTV에는 같은 시간에 다른 사람이 쇼핑봉투를 들고 나온 장면만 찍혀 있지 내 모습은 없다. 사무실이나 주차장에도 CCTV가 있을 텐데 그날 내가 나오는 장면을 찾아달라고 하니 사무실의 CCTV는 고장이 났다고 했다.

그리고 쇼핑봉투가 아니라 서류봉투로 줬다고 번복했다. 2009년엔 다른 청탁을 위해 우리 아파트로 찾아와 500만원을 줬다고 했다. 아무리 버릇없는 사람이어도 칠순 넘은 고향 어르신을 우리집에 불러, 그것도 아파트 길에서 돈을 받겠나.

우리 아파트는 외부차의 출입 내용이 전산에 다 기록되고 CCTV도 있는데, 아무데도 유 회장의 차량 출입기록이나 화면이 없다. 그랬더니 ‘내가 나이 먹어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사무실에서 준 것 같다’고 주장해 공소장을 변경했다. 모두 자금담당 전무가 ‘유 회장이 그렇게 말하며 비자금에서 돈을 가져갔다’는 주장이 바탕이다.”

고향 선배 어르신이 왜 그랬을까.
“결국 내가 구속되었는데 재소자 한 명에게 사연을 털어놓으니 ‘당신은 무죄’라고 단언했다. 그 사람이 3월 13일 밤 구치감에 유 회장과 같이 있었는데 유 회장이 ‘내 아들을 잡아들인다고 해서 괜히 후배에게 죄를 씌웠다. 너무 미안해 잠이 안 온다’며 울었다는 거였다.

마침 저축은행사건에 연루된 이광재 전 강원도시자가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달라고 했다. 내 재판에 도움도 안 되고 수갑 차고 포승에 묶여 법정에 나가는 게 싫었지만 내가 입을 닫으면 다른 누가 내 억울함을 알아줄까 싶어 구치소를 나서다 마침 그 재소자를 만났다. 그가 ‘나는 집행유예로 나간다. 증언해 드릴 테니 연락하라’며 전화번호를 불러줬다.

그 번호의 숫자를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계속 외우다가 감방에 오자마자 기록했다. 그 진술을 공증했지만 나중에 법정에서 ‘써달라고 해서 써준 것’이라고 뒤집어 결국 증인으로 법정에 출석하지 못했다. 그럼 현장검증이라도 해보자니 검찰 측에서 그 사람과 유 회장이 만난 곳에는 CCTV가 없어 자료가 없다고 했다. 유 회장은 내게 돈을 줬다고 하면 자기 아들은 구속시키지 않겠다고 한 검찰의 압박에 그런 얼토당토않은 진술을 한 것 같다.”

다른 사람도 돈을 줬다던데.
“2010년 3월 19일 충북 경찰청장 시절에 태백시민회장이 찾아와 객지에서 고생하니 후배들 밥 사주라고 봉투를 놓고 갔다. 몇십만원인 줄 알고 열어보니 1000만원이었다. 곧바로 전화해 ‘밥값이 너무 많다, 계좌번호 알려주면 보내겠다. 밥은 내가 퇴직한 후에 사달라’고 했다.

‘나를 못믿느냐’고 화를 내기에 비서 시켜 집주소를 찾아 우체국송금으로 돌려보내 영수증이 남아 있다. 그 사람은 검찰에 일주일 후에 그 돈을 서울에서 다시 줬다고 했다. 마침 일주일 후인 3월 26일엔 천안함사건이 터져 하루 종일 근무처를 벗어나지 못했다. 업무차량, 가족차량 등 하이패스 기록까지 다 제출했다.

그 사람이 또 2010년 가을에 형수에게 고소당했다며 수사과장을 소개해 달라는 명목으로 또 1000만원을 줬다고 진술했다. 서울 모 호텔에서 돈을 줬다기에 호텔 CCTV를 확인하자니 그것도 고장났다고 했다. 대체 왜 내가 가는 곳의 CCTV는 다 고장이 나는가.”

[유인경이 만난 사람]대법서도 무죄 받은 이철규 전 경기경찰청장

이 사건만이 아니라 다른 사건에서도 무죄를 받았다.
“안산경찰서장 시절에 건설업자 뇌물을 받았다고 기소됐다. 당시 그 사람이 돈 줬다고 처음 주장한 날에는 내가 베트남 여행 중이었고, 다시 번복해 돈을 줬다는 날은 마침 전날 회를 먹고 식중독 증상으로 병원에 입원해서 내가 무죄임을 입증할 수 있었다.

또 당사자가 신경정신과에서 ‘검찰 압박에 자살하고 싶다’고 토로한 상담자료도 제출했다. 정작 나를 기소한 검사는 뇌물 받아 직위해제됐다. 당시 김성호 법무장관이 ‘썩은 사과는 도려내야 한다’며 문제 있는 검사들을 많이 내보냈다.”

성접대 동영상 사건에도 연루되었다고 소문났었다.
“어느날 검찰 출입기자가 모 검사가 성접대 받는 동영상에 이 청장도 있다고 하더라며 확인전화를 했다. 그래서 사이버수사대에 수사를 의뢰하고 올 4월에 고소했는데, 11월인 지금까지 기소하지 않고 만지작거리고 있다. 반면에 최근 황수경 아나운서와 남편인 차장검사의 파경설을 유포한 사람들은 기자를 포함해 다 기소됐다.

파경설이야 아니면 그만이지만, 성접대 동영상은 그 가정이 파괴되는 일이다. 동영상 관련 기사에 ‘왜 이 사람 마누라와 딸은 자살하지 않을까’란 댓글까지 달렸는데 이건 인격살인이다. 처리과정에서 파경설보다 우선순위에서 밀릴 일인가.

지난 총선 때 허준영 전 경찰청장도 성접대 동영상설에 휘말리자 ‘사실이면 할복자살한다’는 말까지 했다. 검찰은 그들에게 부여된 수사권과 공소권으로 피해 본 국민들의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게 의무다. 이번 사건만 봐도 제 식구 감싸기를 한다는 의혹을 갖게 된다.”

돈을 주고받은 경우에는 당사자 진술 외에 별도의 증거나 진술을 확보하기가 어렵지 않은가.
“유죄 심증이 간다고 특정인 진술만 갖고 재판에 넘기면 억울한 피해자가 생긴다.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형사재판의 기본 원칙을 따라야 한다. 난 1·2심에서 모두 무죄가 선고됐다. 하급심 판단을 뒤집을 증거가 없는 상태에서 기계적인 항소·상고를 되풀이하는 것은 만용이다.

검찰 개혁이 수사 독립이나 정치적 중립도 중요하지만 수사권·기소권의 오용과 남용을 막는 것도 못지않게 중요한 과제다. 저축은행사건과 관련해 나만 무죄판결을 받은 게 아니다. 김두우 전 대통령 홍보수석비서관, 김장호 전 금융감독원 부원장보가 무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같은 수사팀이 벌인 수사에서 이렇게 많은 무죄판결이 나온 것은 검찰 수사에 무리가 있다는 증거다.”

훌륭한 검사도 많지 않나.
“물론이다. 지금도 수많은 범죄자들을 밤 늦도록 수사하며 정의를 실현하고 있는 검사들이 있다. 그러나 김진태 검찰총장도 인사청문회에서 ‘단죄 과정들이 너무 거칠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대법원에 따르면 2011년 한 해에 횡령·배임 혐의로 1심 형사재판을 받은 사건 총 5716건 가운데 1496건(26.2%)에만 실형이 선고됐다. 나머지는 희생자다. 편파수사 탓이다.”

사법고시까지 합격한 대한민국 최고의 엘리트 검사들이 설마 그토록 편파적일까.
“집안과 학벌이 좋은 사회적 엘리트라고 인격이 완벽한 것은 아니다. 제도가 사람을 타락하게 만드는 것 같다. 검사들은 견제도 없고 책임지지 않기 때문에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것이다.”

그런데 왜 검찰에 찍혔다고 생각하나.
“내가 경찰과 검찰의 수사권 다툼에서 항상 큰 목소리를 냈기 때문이다. 1998년 인수위에 참여해 수사권 분리를 공론화했다. 국내 최초로 국정과제에 수사권 분리를 주장했고, 검찰이 국립과학수사본부와 유전자은행을 이관하려는 것도 막았다. 

국과수는 살인범, 강도·폭력범을 가려내는 수사의 손발을 해주는 기관이지 정치범을 가리는 곳이 아니란 판단에서다. 또 본청 정보국장 재직 시 검경 수사권 조정 과정에서 전국의 경찰 정보망을 동원해 국회의원 설득작업을 진두지휘했다. 검찰 수사권 분리의 핵심 인물이니 눈엣가시가 된 것 같다.”

경찰조직은 문제가 없나.
“물론 우리 경찰부터 잘해야 한다. 식민지 근성을 버리고 검찰에 넘기기 전에 사건을 확실히 파악해 완벽히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런데 경찰은 때로는 ‘검사 지휘를 받은 사안’이라며 면책을 하려 한다. 나를 비롯한 경찰 수뇌부부터 반성해야 한다.”

듣기만 해도 답답한 일을 어떻게 견뎠나.
“이미 예방주사를 맞은 덕분이다. 경찰조직 내에서도 견제를 많이 받았다. 시련을 겪으면서 자신을 올곧게 관리하지 못하면 안 된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아 항상 노력했다. 이 사건으로 나뿐 아니라 아내, 아들·딸과 사위, 사돈과 지인들의 계좌와 통화·메일 기록까지 다 추적당했다. 만약 내가 문제가 있었다면 아마 다른 죄명을 씌웠을 것이다.”

상층부는 모르지만 후배 경찰들의 반응이 뜨겁다.
“경찰청공무원노동조합이 지난 5일 이례적으로 성명을 발표해 ‘(이 청장이) 무죄판결을 받았다고 해서 개인의 명예를 회복한 것이 아니다. 원직 복직만이 진정한 명예회복의 길’이라고 촉구하고 ‘경찰조직의 명예회복에 직결된 것인 만큼 경찰 수뇌부를 비롯한 전 조직 차원에서 적극적인 대책 마련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후배들에게 너무 감사하다.”

앞으로 계획은 뭔가. 국가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은 안 하나.
“경찰에 복귀해 명예롭게 물러나고 싶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13만 경찰의 명예를 위해서다. 순리와 상식이 지배하는 사회가 되기를 기대하며 (보직 결정을) 기다리는 중이다. 국가 상대로 소송을 할 생각은 없다.”

좀 뜬금없는 질문인데 왜 경찰이 됐나.
“어릴 때부터 꿈이었다. 정미소집 아들이었는데 당시 제복 입은 경찰이 너무 멋져 보였다. 군대도 전경으로 갔고 경찰 투신 후 청춘을 다 바쳤다. 경찰로 부끄럽지 않게 살았다. 다시 2011년으로 돌아가도 죽고 싶을 만큼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지만 똑같이 행동할 것 같다. 정의는 게으르지만 결국 밝혀지기 때문이다.”

이철규 전 경기경찰청장은 너무 드라마틱한 사연이 많아 자신의 이야기를 <부러진 화살> 같은 영화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치안정감 인사는 경찰청장의 제청으로 행정안전부 장관의 재가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한다. 김기춘 비서실장을 비롯, 유난히 검사 출신 측근이 많은 대통령은 과연 어떤 결정을 내릴까 궁금하다.

<글·유인경 경향신문 선임기자 alice@kyunghyang.com>
<사진·홍도은 기자 hongd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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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 나아진 게 없다
오늘을 생각한다
아동학대, 나아진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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