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민선 지방자치제도가 도입된 지 20주년이 되는 해다. 한 해 동안 곳곳에서 20주년을 기념하는 각종 세미나와 학술대회도 열렸지만 정작 지자체에서는 여전히 중앙정부와의 재정 격차나 과도한 강압을 호소하고, 주민들은 지자체 단체장들의 비리 등에 분노하기도 한다. 특히 내년 국회의원 총선을 앞두고도 농어촌 지역의 지역구 축소 문제 등으로 다시 지방자치가 화두가 되고 있다. 국내에서 지방자치 행정의 대부로 불리는 김안제 박사를 만나 한국 지방자치제도의 문제점과 미래에 대해 물어봤다.
올해 지방자치제도가 도입된 지 20주년, 성년이 되었습니다. 보시기에 잘 자란 것 같습니까.
“지방자치제도를 안 했으면 큰일날 뻔했습니다.(웃음) 다소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짧은 기간에 이만큼 성장한 것이 무척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런저런 문제들로 회의를 느끼는 이들도 많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이 제도를 도입한 지 100~200년이 된 선진국들도 초기 20년쯤에는 이만큼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이 정도면 잘 자란 것 아닙니까. 그 덕분에 올해 제가 지자체 관련 행사에서 상을 3개나 받았답니다. 만약에 부실하거나 실패했다면 기초작업을 한 제게 상을 그렇게 많이 줄 리가 있습니까.”
가장 큰 성과는 무엇인가요.
“당시 목표의 100%를 달성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민주주의의 뿌리가 굳건하게 다져지는 데 이 제도가 큰 기여를 했다고 봅니다. 중앙정부의 노력과 힘만으로는 온전한 민주주의가 이루어지기 힘듭니다. 지방자치제의 민주주의는 그야말로 풀뿌리 민주주의입니다. 뿌리가 튼튼해야 제대로 꽃이 피어나고 실한 열매도 맺어지죠. 그런 의미에서 민주주의 정착에 큰 공헌을 했다고 평가합니다. 무엇보다도 지역민들의 주인의식이 함양되는 데 큰 영향을 미쳤죠. 과거 임명제 시절의 단체장들은 주로 지역개발 등에만 치중했다면 이제는 주민들이 유권자들이기도 하니 표를 의식해서라도 주민들의 실익에 도움이 되는 일에 관심을 갖고 수행을 합니다. 기업이 들어오고, 다리가 세워지고 등의 업적도 중요하지만 소소한 복지혜택이 사실 더 의미가 있죠. 요즘은 흔히 말하는 ‘촌’에서도 문화센터가 만들어져 취미활동도 할 수 있고, 각종 아카데미 등이 열려 유명인사들의 강의도 듣고, 독거노인들을 공무원들이나 사회복지사들이 적어도 매주 1회는 찾아보는 등의 밀착형 복지가 이뤄집니다. 지역민들의 의식수준과 전반적인 주민들의 의식수준은 물론 복지수준이 향상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지나친 전시행정으로 인한 낭비나 오류도 많은 것 같습니다. 지방축제가 다양해진 것은 좋지만 내용이 부실하거나 예산 낭비가 심한 행사도 수두룩하더군요. 자기 지역에만 각종 시설을 유치를 하다 보니 지나친 경쟁으로 갈등이 깊어진 곳도 많더군요. 또 해외투자를 유치하려다 국제사기를 당한 지자체도 있고….
“그것이 지자체 단체장 선거의 단점이기도 하죠. 유권자들의 비위를 맞추려고 지나친 선심행정을 하기도 하고, 업적을 보이려고 전시행정을 하다 보니 그런 일들이 벌어지곤 하더군요. 축제 역시 무리하게 시행돼 예산 낭비가 심한 곳도 많고요. 또 다른 단점으로는 단체장들이 당에서 예산을 받아야 하니 중앙당의 영향을 받아서 눈치를 보는 것도 있죠. 그것 역시 지역민들이 감시와 비판의 역할을 제대로 하면 시정이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몇 가지의 오류 때문에 지자체 전체가 흔들려서는 안 되겠지요.”
그런데 왜 20년 전에 지방자치제도를 다시 시작했습니까.
“1961년에 중단되었다가 30년이란 세월이 흘렀죠. 1961년 이전의 지방자치제도는 선진국에서 하니까 우리도 해보자며 따라했는데, 정작 여건이 되지 않아 단점들이 더 많아서 그만두게 된 것입니다. 그 사이에 박정희 대통령의 새마을운동 등이 지방에서는 나름 성과를 거두고 지방경제에도 크게 기여를 했습니다. 덕분에 농어촌 주민들의 교육수준과 의식수준도 향상되었고요. 가정으로 비유하자면 초기에 아들 딸이 미성년이어서 함께 데리고 살며 양육하다가 어느 정도 자라서 공부도 하고 생각도 깊어지니 독립을 시켜야 할 때가 온 겁니다. 부모가 마냥 끌어안고 있으면 자립심이나 자생력을 키울 수가 없으니까요. 1980년대 말에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르렀기에 학계와 정치권이 논의를 시작했고, 1991년에 의회를 구성했습니다. 1995년에 다시 민선 자치선거가 치러졌죠. 그리고 20년이 되었습니다.”
당시 반대세력도 만만치 않았지요.
“그럼요. 우리 국토가 좁은데 그걸 또 쪼개면 국력이 분산되는 것은 아닌가, 중앙집권 하에서는 일사불란하게 처리될 일을 굳이 나눠 중구난방으로 떠들면 돈과 시간 낭비가 아닌가. 겨우 살 만하게 되었는데 새로운 제도의 도입으로 경제가 위축되고 국가재정이 낭비되는 것은 아닌가, 지방의회 의원인 공무원 등이 늘어날 텐데 예산 낭비는 아닌가 등등 곳곳에서 반대의견들이 많았습니다. 국민의 여론과 주장이 분산되기는 했지만 가장 심하게 반대하는 세력은 기업들이었습니다. 과거엔 중앙정부만 상대하면 될 일을 지방자치제도가 시행되면 구청, 시청, 도청을 다 돌아다니며 더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하고 더 많은 사람을 만나야 하니 번거롭고 귀찮겠죠. 또 국회의원들만 상대하다가 지방의회 의원들을 만나자니 그들의 눈에는 자격미달로 보일 수도 있고요. 같이 동네에서 술 마시던 친구가 어느 날 배지 달고 나타나 ‘구의원이다’ ‘시의원이다’ 하는 모습을 보고 당혹해 하는 이들도 있을 테고요. 하지만 그런 문제들 역시 훈련과정이라고 봅니다. 지방자치제도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지역의 균형발전과 더불어 지역주민들의 의식 향상입니다. 지역민들이 주인의식을 갖고 판단력도 갖추고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전히 지역이기주의가 심해서 곳곳에서 ‘○○반대’ 집회나 데모가 열리지만 그것 역시 성장통의 과정이라고 봅니다.“
김 박사님은 지방자치제도만이 아니라 ‘신행정수도건설추진위원회 위원장’을 지내서 언론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세종시는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데요.
“세종시는 지자체를 위한 것이 아니라 국토의 균형발전을 위한 것입니다. 제가 대학에서는 물리학을 전공했지만 도시계획과 지방경제학으로 박사학위를 땄습니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수도권이 너무 과밀하고 전국 인구의 50%, 경제의 80% 등 모든 힘이 집중되어 있으니 다른 국토의 황폐화가 초래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1960년대부터 별별 정책을 다 써봤지만 백약이 무효였죠. 인구 및 경제력의 수도권 집중과 그에 따른 지방의 피폐가 한국 사회의 고질적 문제라는 것은 박정희 정권 때부터 거론됐습니다. 1977년에 임시행정수도 계획을 수립했는데, 박 대통령 서거로 백지화되었습니다. ‘국민의 정부’ 시절에는 지방자치단체들이 자발적으로 국가 균형발전 운동을 전개하기도 했고, 참여정부의 선거공약으로 이슈화가 돼 국민들이 이를 받아들임에 따라 ‘신행정수도’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하게 되었습니다. 2030년 완료를 목표로 해서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 이미 총리실을 비롯한 행정부가 세종시로 옮겨졌고, 한전·LH 등 공사와 민간기업들이 지방으로 분산돼 터를 잡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정부는 중앙에 있고 기업체만 나가라고 하니 반대가 심했죠. 기업과 언론사를 비롯한 수도권의 기득권 세력들이 반대가 심해서 헌법재판소에서 행정수도 이전은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행정중심복합도시, 즉 행복도시라는 이름으로 청와대와 국회, 몇몇 행정부처를 제외한 다른 부처들이 2012년에 세종시로 옮긴 것입니다. 이것도 시간이 흐르면 제대로 자리를 잡을 것이고, 지방 발전에 엄청난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이와 아울러 국토의 균형발전과 분권화도 이뤄질 겁니다. 현재 세종시 인구가 20만명인데, 2030년에는 50만명을 목표로 하고 있답니다. 세종시의 경우 공무원들의 자녀를 위한 교육시설이 아주 우수해서 교육 선진국이라고 하는 스칸디나비아 국가에서도 시찰을 하러 옵니다.”
2030년 전에 통일이 될 수도 있을 텐데, 왜 굳이 세종시로 행정수도를 옮겼는지요. 행정수도가 서울에서 불과 한두 시간 거리밖에 안 떨어져 있으면 ‘수도권 과밀화 해소’가 아니라 ‘수도권 팽창’이 되어 더 심각한 지방의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주장도 여전히 나옵니다.
“수도권과 충청권이 같이 묶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후보지 선정기준에 서울과의 통근권을 벗어난 지역을 선정하도록 했습니다. 휴전선에서 평양 정도의 거리를 따져 보니 현재 세종시 지역이 지리적으로 가장 합당했습니다. 또 행정수도 건설을 계기로 충청권 중심도시들 사이에 기능 분담을 추진해 수도권과 연결되는 것을 방지했고요. 대전은 첨단과학기술, 청주는 바이오산업, 천안은 반도체 등 기존 도시들의 특화기능을 지역혁신체계를 통해 보다 강화하고, 신행정수도를 이런 기존 도시와 연결해 지역경제권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또 ‘통일수도’는 당시에도 핵심논쟁 중 하나였죠. 저를 비롯한 관계자들이 통일된 한반도의 수도를 어디에 둘 것인가에 대해서도 진지하고 심각하게 검토했었죠. 흡수통일의 경우 수도를 일방적으로 정하면 그만이지만, 평화통일이 되면 현실문제가 될 수 있을 겁니다.”
다시 지방자치로 돌아가서, 최근 20주년을 기념해 열린 각종 토론회의 화두는 ‘진정한 자립’인 것 같습니다. 최근에 전남 여수에서 열린 전국 시장·군수·구청장 협의회에서는 국민소득 4만 달러 시대로 도약하기 위한 ‘창조적 지역경영 선언’을 시작으로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 국고보조율 및 지방소비세율 인상, 자치교육 시행, 자치경찰제 시행, 지방분권형 헌법 개정 등을 중앙에 촉구하는 ‘여수선언문’을 채택했더군요. 다양한 주장을 했지만 가장 큰 불만은 지방재정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중앙정부, 혹은 지방마다 재정자립도가 차이가 나는 것은 선진국도 아직 해결하지 못한 과제입니다. 예컨대 부모가 재산이 좀 있으면 자식들이 호시탐탐 아양이나 읍소, 혹은 약간의 공갈을 해서라도 돈을 타내죠. 그런데 가정과 국가가 다른 점은 부모는 죽어도 유산 상속을 할 수 있지만 국가는 죽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국가는 죽을 수가 없어요. 어떻게 지방이 잘살기 위해 국가나 중앙정부가 희생을 합니까. 가장 우선할 것은 국가입니다. 현재 지자체에서는 예산 재정 배분이 지방과 중앙정부가 2대 8 정도라고 주장하지만, 실상 3대 7 정도일 겁니다. 그 이유는 국방·외교 등의 예산은 지자체에 나눠줄 수가 없습니다. 만약 통일이 되면 큰 비중을 갖고 있는 국방예산이 지역에 배분될 수 있을 겁니다. 다만 부모가 죽어 유산 받기만 기대하지 말고 자식들이 각자 능력을 키워 자립하고 알뜰하게 생존하는 방법을 배워야 하듯 지자체에서도 역량을 키우고 자립도를 높이도록 각고의 노력을 해야 합니다. 현재 재정자립도가 50% 미만인 기초단체가 전체의 95%에 달하고, 35%는 자체 수입으로 인건비조차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인데, 극약처방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라 지자체가 먼저 개선방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성실하고 가능성이 있는 자식에게 더 많이 투자하고 싶은 것이 부모 마음 아닙니까.”
평소 주위에서 ‘기록의 왕’으로 불리십니다. 2007년에는 11세부터 70세까지 쓴 일기를 2700쪽 분량의 <인생백서>란 책으로 펴내 한국기록원으로부터 한국 최고기록 인증서를 받았죠. 그 책에는 자신이 평생 마신 술이 소주를 기준으로 2만2000병이라는 등의 각종 통계수치는 물론 성적표·상장·임명장·통장·여권 등 모든 자료가 담겨 있어 놀랐습니다. 그 무렵 한자로 된 4자성어 대사전도 펴냈는데, 요즘도 기록을 계속합니까.
“그럼요. 그게 제 생활인데요. 여전히 매일매일의 제 일상과 자료를 기록합니다. 지금도 신문과 잡지에 기고도 하고 강의나 연설도 하는데, 그런 자료들도 모두 모아두고 있습니다. 내년이 제 팔순, 산수(傘壽)의 나이인데 산수기념집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또 4자성어에 이어 5자성어집도 펴낼까 궁리 중입니다. 제 개인의 기록이지만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될 테니까요. 제가 평생 모은 3톤 트럭 분량의 자료는 전주의 한국종이박물관에 옮겨져 ‘김안제 사료’로 분류돼 있지요.”
팔순을 앞둔 나이에도 왕성한 활동을 하는 김안제 박사는 ‘줄담배를 피우지만 친구들과 술 마시고 노래방에 가서 노래하며 스트레스를 푸는 것이 건강비결’이라고 했다. 학자로서 머리만 쓰는 것이 아니라 몸의 각 기관도 활발하게 쓰는 것이 건강비결인 것 같다. 그것 역시 지역 활성화(?)의 하나일까….
<글·유인경 경향신문 선임기자 alice@kyunghyang.com>
<사진·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