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성 결핍된 재난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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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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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감기

영제 The Flu

제작연도 2013년

감독 김성수

출연 장혁_지구, 수애_인해, 박민하_미르, 유해진_경엽, 차인표_한국대통령

개봉일 2013년 8월 14일

등급 15세 관람가

영화 <감기>의 예고편이 뜬 건 한두 달쯤 전인 것 같다. 급박하게 전개되던 화면 뒤 감기라는 제목이 뜨자 객석에서는 실없다는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런데 사실 웃을 이야기가 아니다. 순전히 상상력의 산물인 ‘좀비’와 달리, 어떤 빠르게 확산되는 질병으로 인한 인류 멸망을 그린다면, 가장 확실한 가능성이 있는 시나리오는 인수 공통 전염병 형태의 ‘독감’일 것이라는 예측이 많다. 사람들의 이동을 철저하게 통제하더라도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가진 철새의 이동을 막기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영화 <감기>는 컨테이너 박스 속에 숨어 밀입국하려고 한 동남아 사람들 중 한 사람이 이 변이를 일으킨 조류인플루엔자에 감염되었고, 병원체의 확산을 봉쇄하는 데 실패하면서 벌어지는 팬데믹을 그리고 있다. 남자 소방대원과 대학병원에서 면역학을 전공하고 있는 임상 여의사가 주인공이다. 임상 여의사는 딸을 둔 유부녀다. 하지만 남편은 없다. 결핍된 가족과 그를 보완하는 공적인 임무에 헌신하는 남자. 독감에 걸린 딸을 구하려는 어머니의 노력과 그 모녀를 보호하려는 소방대원의 필사적인 노력. 사실 견적이 나오는 영화다. 캐릭터 사이에 오고가는 긴장과 애틋한 감정선만 잘 살려도 재난영화 장르의 기본은 하는, 평작은 가능한 영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감기>는 재난이다. 왜 그럴까. 영화의 배경무대는 경기도 성남시 분당이다.

영화는 지금 즉시 도시를 봉쇄해야 한다는 임상병리학자와 아는 지식 하나 없이 권위만 앞세우는 여당 국회의원과 시장, 즉 전문가와 정치인을 대립시킨다. 임상병리학자의 충고대로만 했다면 사태의 확산은 막을 수 있었다. 이 여당 의원으로부터 시작되는 사슬의 고리는 더 확대되어 총리-미국-국제연합 기구(영화에서는 세계보건기구인지는 명시적으로 언급되지 않는다)까지 이어진다. 이 비전문가 집단은 끝없이 어이없는 결정을 내려 재난을 확대시킨다. 그런데 실제로 그렇게 돌아갈까. 다 알다시피 분당은 대규모 아파트촌이다. 조류독감이든 다른 인수 공통 전염병이든, 1단계로 취해질 조치는 각자 살고 있는 집에서 머무르게 하는 ‘격리’다. 이건 상식선의 문제다.

그런데 영화는 막 나간다. 분당 한가운데 흐르는 탄천변에 임시로 비닐막사를 짓고 거기에 분당 주민들을 ‘격리 수용’한다. 전투경찰과 군인들은 가택수색으로 아파트 문을 부수고 사람들을 끌어낸다. 아무리 사태가 심각하더라도 마트에 전투경찰들이 난입하여 주민들이 못빠져나가도록 방패와 몽둥이로 폭력을 휘두른다는 건, 현실성이 없다. 최상급의 배우들이 투입된다고 하더라도 이 근본적인 난관, 이야기 자체의 핍진성 부족을 커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진실을 알고 있는 전문가’와 ‘권위만 내세우는 정치인’, 두 계열 집단의 갈등 한가운데 영화배우 차인표가 맡은 한국 대통령이 있다. 이제 폭도로 변한 분당 주민들에 대해 미국은 전시작전권을 내세우며 미군기를 동원해 폭격을 감행한다. 한국 대통령은 수도방위사령부에 대한 작전지휘권은 자신에게 있다며 미군기를 격추시키기 위해 미사일 발사를 명령한다. 총리는 미국의 꼭두각시다. 팬데믹을 전시로 간주할 수 있는지도 잘 모르겠지만, 처음부터 무리한 설정이 영화를 산으로 가게 만들었다. 영화의 보도자료를 보면 의학전문기자로부터 감수를 받았다는 언급이 있다. 하지만 막상 영화가 막 나가는 부분은 그가 자문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다는 점에서 영화의 ‘재난’은 피할 수 없었다.

김성수 감독이 각본과 연출을 담당했는데, <무사>(2001), <영어완전정복>(20003) 이후 오랜만의 장편 복귀작이라서 특히 더 아쉬움이 남는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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