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도는 왜 연쇄살인마 배역을 선택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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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퍼스트 런

(주)퍼스트 런

제목 매니악: 슬픈 살인의 기록

원제 Maniac

감독 프랑스 칼포운

주연 일라이저 우드_프랑크, 노라 아르네제더_애나,
메건 더피_루시, 잔 브로버그 펠트_리타

상영시간 85분

관람등급 청소년관람불가

국내개봉 2013년 7월 4일

‘<매니악>은 이런 영화가 아니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영화가 시작된 지 채 10분도 지나지 않아서다. 주인공 ‘프랑크 지토’는 결코 누군가에게 “귀여워!(cute)” 소리를 들을 외모가 아니었다. 비록 채팅창에서 젊은 시절 사진을 받아본 상대방 여인의 취향이 독특했다손 치더라도, 프랑코 지토는 40대의 뚱뚱하고 지저분한, 한마디로 말하면 루저(loser) 자체였다. 마네킹을 향한 열정이 뉴욕 맨해튼에 거주하는 세련된 예술가 ‘게이’로 오해받을 정도는 아니었다는 말이다.

영화사가 배포한 <매니악: 슬픈 살인의 기록> 보도자료에는 외지에 실렸다는 다음과 같은 평가들이 실려 있다. “이 영화를 본다면 다신 ‘프로도’의 눈을 쳐다볼 수 없을 것이다(데일리스타)”, “일라이저 우드의 연기는 <매니악: 슬픈 살인의 기록> 전과 후로 나뉜다(헤이유가이).” 글쎄. 동의할 수 없다. 시사회장에서 차량을 운전하는 주인공 프랑크를 연기한 일라이저 우드의 ‘눈’이 처음 나왔을 때, 살인을 저지르고 자신의 하반신이 마네킹으로 변한 것을 보며 자지러지게 놀랄 때, 작은 웃음이 나왔다. 일라이저 우드는 여전히 <반지의 제왕>의 호빗족 주인공 프로도가 드리운 캐릭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일라이저 우드의 필모그래피는 여전히 ‘프로도’가 지배하고 있다. 그가 연기 변신을 시도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씬 시티>(2005)에서 그는 안경을 쓴 눈만 빛나는 냉혹한 청부살인자로 나온다.

<매니악: 슬픈 살인의 기록>은 윌리엄 루스티그 감독의 영화 <매니악>(1980)의 리메이크다. 원작은 전형적인 B급 장르영화다. B급 장르에서 시작한 다른 감독들이 특A급 영화를 제작하며 명성을 날리고 있는 동안-이를테면 <반지의 제왕> 시리즈를 만든 피터 잭슨 감독의 데뷔작이 ‘지구를 침공한 외계인간들을 학살한다’는 플롯을 가진 저예산 영화 <고무인간의 최후(Bad Taste)>(1987)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그는 아직도 비디오로 바로 출시되는(Direct-to-Video) 영화를 만들고 있다. 그나마 장르팬들 사이에서 알려진 영화는 <매니악 캅> 정도? 오리지널 <매니악>의 주연배우 조 스피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니 이 양반, 벌써 1989년에 사망했다. 정리해보자면, 평생을 떠보지 못하고 조연으로 마친 인생인 셈이다. 이런 저런 이유로 <매니악>은 특유의 독특한 광기가 서려 있는 작품이다. 조갑제가 박정희 시대를 평가한 것에 비유하자면, 루저 감독에 루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그 시대의 독특한 분위기가 아니었으면 가능하지 않았을 영화다. 그런데 웬만한 사람이면 다 아는 ‘프로도’가 그 프랑크 역에 도전하다니?

영화는 프랑크의 시점샷을 도입해, 화면을 주시하는 관객과 프랑크의 내면을 일치시키려고 노력한다. 때때로 노출되는 프랑크의 얼굴은 주로 거울을 통해서다. 천장에 붙어 있는 거울이거나 프랑크 집의 거울, 유리창에 반사되는 프랑크의 얼굴이다. 다시 영화의 보도자료로 돌아가면, ‘스타일리시한’, ‘우아하고 세심하게 만들어진’과 같은 표현이 눈에 띈다. 맞다. 그런데 <매니악>은 원래 그런 영화가 아니다. 원작에서 공원에서 데이트하는 연인을 이유 없이 총으로 쏴 죽이는 프랑코는 애당초 연민이나 동정의 대상이 아니다. 그가 희생자 여인들의 머릿가죽으로 장식한 마네킹들이 습격해 머리가 떨어져나가는 복수를 당하지만-물론 이것은 프랑크의 환각이다-마땅히 당해야 할 벌이었다.

<매니악: 슬픈 사랑의 기록>은 그런 프랑크의 내면을 이해해 달라고 부추긴다. 여성 머리카락에 대한 집착이 분리되지 않은 채로 고착된 모자관계에 기인한다고 주석을 달고 있다. 오리지널 영화에서 산탄총으로 희생자의 머리를 부수는 장면은 리메이크되지 않았다. 마네킹의 복수도 프랑크 얼굴 가죽을 찢으니 그 안에서 그대로 굳어버린 프랑크의 마네킹 얼굴이 나왔다는 식으로 우아하게(!) 재해석되었다. 글쎄. 이런 식의 리메이크가 새로 무엇을 성취했는지 모르겠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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