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가파도는 지금 청보리 세상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가파도는 키가 가장 작은 섬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낮은 섬으로 해발 고도 20m에 불과하다. 때문에 가파도를 멀리서 바라보면 얇은 종잇장처럼 떠있다.

가파도의 보리밭은 60만㎡. 하늘 높이 풍력발전기의 거대한 풍차가 돌아가고, 가파초등학교를 중심으로 작은 골목 골목까지 올레길이 이어진다.

가파도의 보리밭은 60만㎡. 하늘 높이 풍력발전기의 거대한 풍차가 돌아가고, 가파초등학교를 중심으로 작은 골목 골목까지 올레길이 이어진다.

제주 해안도로를 따라 송악산 기슭으로 내달린다. 송악산 아래 모슬포항에서 여정을 풀고 바다 건너 청보리가 넘실대는 가파도를 찾아간다. 송악산에 올라 이미 잊혀진 아픈 사연을 묻고, 가파도 올레길을 따라 청보리밭을 둘러볼 셈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낮은 섬, 가파도. 부질없는 마음을 내려놓고 평상심을 찾아가기에 좋다.

봄이면 초록빛 청보리가 온 섬에 피어난다는 가파도를 찾아간다. 해안도로를 따라 송악산 아래 모슬포항으로 달린다. 송악산이 위치한 서귀포 대정읍 상모리와 경계인 안덕면 사계리 산방산을 잇는 해안도로는 제주에서 손꼽히는 아름다운 도로다. 드라이브 코스로도 좋고 천천히 해안선을 따라 걷거나 잠시 바다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시원해지는 맛에 주변 경치를 감상하는 여행객들의 발길을 잠시 멈추게 한다. 특히 서귀포시 최고의 해안드라이브 코스라 불리는 ‘형제해안로’는 몇 년 전 한국의 아름다운 길로 선정되기도 했다. 송악산 입구에서 사계리 해안도로를 바라보는 일은 제주도 여행 중 절대 놓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길 아래 해변으로 내려서 파도소리를 들으며 모래톱 산책을 즐겨도 그만이다.

송악산 아래 선착장에서는 마라도와 가파도를 둘러볼 수 있는 유람선이 출발한다. 사람들은 유람선에 곧바로 승선하지 않고 먼저 송악산에 오른다. 바로 눈앞에 펼쳐진 웅대한 오름의 유혹을 뿌리치기가 쉽지 않은 까닭이다. 제주도 본섬의 가장 오른편에 불쑥 솟아오른 송악산은 절벽 위에 있는 큰 오름이다. 절벽에 파도가 부딪혀 울린다고 하여 ‘절울이’라고도 부르는데, 예로부터 해송이 많아 송악산(松岳山)이 되었다. 샛노란 유채가 피어난 등산로를 따라 오르는 길. 아직도 등산로를 오르는 사이사이 일제 동굴진지 등 근대사의 아픈 상흔이 남아 있다. 송악산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이 중국 침략의 발판으로 삼았던 곳이다. 태평양전쟁 당시 수세에 몰린 일본군이 제주도를 저항기지로 삼고자 했던 잔해 등이 흩어져 있다. 산세의 품을 살피면 해안에 접한 사면이 벼랑이고, 위는 평평하다. 멀리 산 남쪽의 해안절벽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 절벽을 따라 세월은 잊혀지고 봄이 찾아든 언덕에는 조랑말이 풀을 뜯고 마부만이 봄을 만끽하며 졸고 있다.

대한민국 최남단, 마라해양을 아시나요?

가파초등학교에 다니는 골목대장 경민이는 또래 아이들이 가파도에 많이 오지 않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가파초등학교에 다니는 골목대장 경민이는 또래 아이들이 가파도에 많이 오지 않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정상에 오르니 둘레 500m, 깊이 80여m의 거대한 이중분화구가 전율을 느끼게 할 정도로 웅장하다. 조망감이 좋아 동쪽으로 산방산과 한라산, 서쪽으로는 모슬포항과 알뜨르 비행장터가 한눈에 들어온다. 바다 저 편에 가파도가 손에 잡힐 듯하다. 날이 맑을 때에는 서귀포 앞바다의 호도와 문도까지 육안으로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최남단의 바다다. 북쪽으로 큰 바다를 곁에 두고 남쪽으로 높은 산에 마주하는 이 청정의 지역이 바로 마라해양(馬羅海洋)이다. 대략 송악산, 가파도, 마라도를 꼭지점으로 해안선과 앞바다를 아울러 마라해양이라 일컫는다. 행정구역상 서귀포시 대정읍과 안덕면에 걸쳐 있으며 서귀포마라해양군립공원이라 불리는데, 전체면적 49.228㎢로 앞바다의 형제섬, 용머리 등을 포함하고 있다.

특히 형제섬이 있는 바로 앞바다는 우리나라 최대의 산호 군락지로 깨끗하고 맑은 자연환경을 대표하는 곳이다. 푸른 빛 물 위로 노랑 잠수함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라지고를 반복하는 이유다. 마라해양은 마라도를 중심으로 우리 국토의 최남단 바다를 상징하며, 천혜의 섬들과 짙푸른 해양환경으로 장관을 이룬다. 때문에 해마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국토 최남단의 의미와 신비한 아름다움을 찾아 이곳으로 모여든다. 마라해양을 찾아 사람들은 국토 최남단 마라도와 가파도를 찾아 떠난다.

모슬포항에서 36톤급 작은 여객선에 오른다. 성수기를 제외하고 하루 세 번 가파도와 제주를 연결해주는 유일한 교통수단이다. 청보리가 한창인 봄 무렵이면 가파도 들어가는 배에는 관광객으로 가득하다. 모슬포항에서 가파도 상동선착장까지는 뱃길로 5.5㎞ 거리. 대략 20분쯤이 소요된다. 최근 가파도를 찾는 이들은 대부분 올레꾼들이다. 예전의 가파도는 국토 최남단 마라도 가는 길에 잠깐 들르는 섬이었으나, 올레길이 생긴 이후 사시사철 수많은 여행객이 가파도를 찾는다.

가파도 해안선은 천천히 걷기만 해도 가슴이 시원해지는 맛이 있다.

가파도 해안선은 천천히 걷기만 해도 가슴이 시원해지는 맛이 있다.

청보리가 일렁이는 가파도 올레길 따라
제주도 서귀포시 모슬포 앞바다에 납작 엎드려 있는 섬 가파도. 가파도는 키가 가장 작은 섬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낮은 섬으로 해발 고도 20m에 불과하다. 때문에 가파도를 멀리서 바라보면 얇은 종잇장처럼 떠 있다. 파도가 치면 금세 물에 잠길 듯이 아련하다. 언덕이나 산이 없기 때문에 늘 엎드려 사는 품이다. 바람에 그대로 몸을 맡기고 사는 셈이다. 가릴 게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집들 역시 섬에서 바람이 그래도 덜 부는 하동 쪽에 모여 있다. 서로 바람막이가 되어주고 어깨를 나누어 모진 바닷바람을 이겨내는 셈이다. 선착장에 내려선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올레길을 따른다. 선착장 인근 앞바다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다. 국토 최남단 가파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다. 섬마을 아이들의 놀이가 자못 궁금하다. 갯가에서 아이들은 놀이감을 찾고 한데 어울려 다닌다. 가파초등학교에 다니는 경민이가 골목대장으로, 10명 남짓의 아이들 중 제일 형인 셈이다. “청보리 축제를 하니까, 그래도 사람들이 많이 와서 좋아요. 그런데 왔다가 한두 시간 만에 마을 한 바퀴 돌고 금방 다 나가요. 아이들은 아직도 조금 와요. 우리 섬에 사람들이 많이 오고 아이들도 많이 왔으면 좋겠어요.”

이즈음 가파도는 초록 청보리밭의 물결이 온 섬을 물들인다. 올해 역시 청보리 축제가 시작되면서 최근 관광객이 많이 들고 있다. 올레길이 나고 청보리 축제가 알려지면서 이 작은 섬에도 1년에 10만명에 가까운 관광객들이 찾아들고 있다. 청보리축제를 처음 시작한 것은 불과 5년 전이다. 요즘은 청보리 없는 겨울에도 많은 관광객들이 섬에 들어온다.

청보리밭은 섬 여기저기에 펼쳐져 있다. 가파도의 보리밭은 60만㎡(약 18만평). 그 중 가장 규모가 크고 경관이 좋은 곳은 개엄주리코지 뒤편이다. 하늘 높이 풍력발전기의 거대한 풍차가 돌아가고, 가파초등학교를 중심으로 작은 골목 골목까지 올레길들이 이어진다. 또 섬 남쪽으로 걸어가면 바다 한가운데 멀리 마라도가 바라다 보인다.

송악산이 위치한 서귀포 대정읍 상모리와 경계인 안덕면 사계리 산방산을 잇는 해안도로는 제주에서 손꼽히는 아름다운 도로다.

송악산이 위치한 서귀포 대정읍 상모리와 경계인 안덕면 사계리 산방산을 잇는 해안도로는 제주에서 손꼽히는 아름다운 도로다.

사실 가파도 청보리가 물결치는 이유는 지형과 기후 때문이다. 섬 주민들은 너른 땅에 고구마며 메밀 등 기타 농산물을 키워봤지만 딱히 잘 되는 농사가 없었다. 다른 농작물은 물도 잘 대줘야 하는데, 섬 지역의 특성상 물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청보리만은 척박한 환경을 이겨내고 잘 자란다.

가파도 주민들은 청보리가 기특하고 자랑스럽다고 말한다. “보리는 그냥 파종만 해놓으면 알아서 잘 자라잖아. 바람이 많이 불어도 살고, 물이 좀 모자라도 살고. 우리네 삶이랑 많이 닮았으니 정이 더 가고 자랑스럽지. 요즘에는 이 청보리밭 덕에 우리 마을에 사람들이 많이 들어오시고. 청보리가 효자여랑.”

제주 남쪽 송악산 앞바다에 고히 앉은 섬 가파도. 키가 작은 그 섬에는 옹기종기 어깨를 맞대고 바람을 이겨내는 순수한 사람들이 살아가고, 모진 바람에도 끄떡없는 초록빛 청보리가 물결친다. 또 작은 아이들이 그 앞바다를 뛰어놀며 희망처럼 자라난다. 부질없이 살다가, 쉬어가고 싶거든 그 섬, 가파도를 찾아볼 일이다. 낮은 마음으로 찾아가기에 좋을 듯싶다.

글·사진|이강<여행작가·콘텐츠 스토리텔러> leeghang@tistory.com

길에서 만난 사람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