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연쇄작용으로 유지되는 현대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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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

찬란

제목 테이크쉘터

원제 Take Shelter

제작연도 2011년

감독 제프 니콜스

주연 마이클 셰넌(커티스),
제시카 차스테인(사만다), 토바 스튜어트(해나)

러닝타임 120분

등급 15세 관람가

개봉 2013년 4월 18일

방공호 아이디어는 할리우드에서 애용해온 소재다. 쿠바 미사일 위기를 전후로 핵전쟁의 공포를 피부로 느꼈던 세대에 의해 주도적으로 다루어졌다. 핵전쟁 위기를 다룬 <환상특급> 시리즈의 에피소드들부터 <블래스트> 같은 코미디에 이르기까지 ‘공습이 임박하여 방공호에 들어가 있다 나왔더니’라는 설정이 숱하게 반복되어 사용됐다. 다가올 위협에 예비하고 대응하는 과정에서 광기에 잠식되어버리는 인간의 나약함과 집단의 공포를 드러내기에 이 소재는 꽤 매력적인 것이었다. 방공호 문밖의 세상이 실제 폐허인가 아닌가, 폐허라면 위기는 수습되었는가 되지 않았는가를 두고도 여러 갈래의 서사가 가능해진다. 소재 자체가 하나의 장르적 장치로 기능하게 되는 것이다.

개봉작 <테이크 쉘터>는 제목에서 연상되듯 방공호를 주요하게 다루는 영화다.

커티스는 이상한 꿈에 시달리고 있다. 꿈속에서 그는 기상이변을 목격한다. 폭풍이 몰려온다. 새들이 이상한 행동을 보인다. 빗물은 노란색이다.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자신을 위협한다. 꿈은 점차 강력해지고 커티스의 일상을 지배하기 시작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가 겪는 공포는 크고 깊어진다. 커티스는 재난이 닥칠 것이라 확신하면서도 집안의 정신병 내력이 자신에게 나타나고 있는 게 아닌지 의심한다. 아내는 이상해진 남편의 행동에 불안함을 느낀다. 결국 커티스는 뒤뜰에 있던 오래된 방공호를 개·보수하는 공사에 돌입한다. 그 과정에서 직장을 잃는다. 친구도 잃는다. 커뮤니티로부터 방출된다.

<멜랑꼴리아>를 연상할지 모르지만 별로 접점이 없는 영화다. 이 영화의 예민한 심리 묘사와 신경쇠약 직전의 인물만 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멜랑꼴리아>와 달리 이 영화가 다루는 공포는 집단에게 확인된 사실이 아니며, 이야기 안의 갈등은 재난 그 자체가 아닌 개인으로부터 발화한다. 그렇다면 반대 지점에서 <식스 센스>나 <싸인>, <빌리지>를 비롯한 샤말란 영화에서 발견되는 공통의 정서를 떠올릴 수도 있다. 그러나 역시 뜯어보면 다른 영화다. 샤말란의 영화들과는 달리 이 영화가 다루는 논쟁은 단지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의 문제, 믿음의 화두만으로 수렴하지 않는다.

<테이크 쉘터>는 가장 샤말란적인 소재를 히치콕의 장치 대신 정서로 묘사하며 샘 멘데즈의 반영적 자세로 ‘미국이라는 이름의 재난에 대처하려 애쓰는’ 영화다. 이 영화가 다루는 위기는 특정되지 않는 공포이며 언제 어떻게 닥칠지 모를 미상의 재난이다. 그것은 어떤 모습으로든 나타날 수 있다는 점에서 우화적이다. 이야기 안에서 현대의 미국인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의료보험, 주택대출, 실업 문제-이 조금씩 언급되고 있지만 그 어느 것 하나가 다른 모든 위기를 대변하거나 포괄하지 못한다. 오직 커티스만이 감지하고 있는 이 파국의 재난은 바로 그가 속해 있는 물리적 환경, 여기서는 미국 그 자체인 것이다.

<테이크 쉘터>의 결말은 역설적으로 이러한 성격의 위기 앞에 어떤 종류의 피난처도 방주도 별다른 도움이 될 수 없을 것이라는 공포와 비관 위에 근거하고 있다. 보험이든 대출이든 실업이든, 하나의 공포를 무마하기 위한 다른 종류의 공포들과 그 연쇄작용으로 유지되고 있는 사회를 우리 모두가 살아가고 있다. 믿음의 문제도, 정치적 진영의 문제도, 특정 국가나 커뮤니티의 문제도 아니다. <테이크 쉘터>는 우리가 속해 있는 집단과 그 집단의 존재 자체가 이미 예정된 파멸이며, 그 앞에서 어느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개인임을 토로한다. 최근 본 영화 가운데 가장 예민하고 무시무시한 우화다.

허지웅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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