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의 탈을 쓴 통속 하이틴로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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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호스트

원제 The Host

수입 ㈜누리픽쳐스

원작 스테파니 메이어

감독 인드류 니콜

출연 시얼샤 로넌, 맥스 아이언스, 제이크 아벨

관람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125분

개봉 2013년 4월 4일 

괴작의 탄생이다. 영화가 시작되고 30분 정도 지났을까. 후회가 밀려왔다.

가까운 시기의 미래다. 인류는 궤멸됐다. 궤멸됐다기보다 신체를 뺏겼다. 외계 존재들은 인간의 몸을 숙주(the Host-영화의 원제다) 삼아 침투해 살아간다. 사는 건 그대로다. 똑같이 먹고 마시고 쇼핑한다. 외계인과 아직 신체를 뺏기지 않은 사람들을 구분하는 방법은? 눈이다. 외계인들, 그들 말로 ‘소울’이 점령한 사람들의 눈은 서클렌즈를 낀 것처럼 빛난다. 우리는 이 테마의 고전적인 영화를 안다. 여러 차례 리메이크된 ‘신체강탈자의 침입(Invasion of the Bodysnatcher)’이다. 매카시즘에 대한 은유라든가, 미지의 존재에 맞서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공포 따위를 이 영화 <호스트>에 기대해선 안 된다. 그냥, SF의 껍데기를 쓴 통속 하이틴 로맨스 영화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열혈 소녀인 멜라니이자 그녀 몸의 새 주인이 된 1000살 먹은 외계인 ‘완더러’(나중에 멜라니의 삼촌은 그에게 완다라는 이름을 준다)다. 시얼샤 로넌이 1인 2역을 맡았다. 완다가 멜라니의 몸을 차지했지만, 멜라니는 ‘정신력이 워낙 강한 사람’이라 완다의 속에서 살아남는다. 멜라니는 완다에게 때로는 명령하고 때로는 애걸하면서 자신의 요구를 관철시킨다. 완다는 결국 멜라니의 의견을 수용하고, 또한 멜라니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무엇인지 궁금해 그녀의 본거지를 찾아 나선다. 한편 완다의 안에 멜라니가 남아 있는 것을 눈치 챈 ‘씨커’는 그런 완다/멜라니를 이용해 남아 있는 지구 인간들을 말살시킬 계획을 세운다.

사실 무엇보다도 흥미를 끄는 것은 저 외계인 종족의 독특한 취향이다. 지구 생활에 그냥 적응해서 평범하게 사는데, 이들은 디자인에 대한 집착만은 남달랐던 것 같다. 크롬 도금된 자동차에서부터 크롬 도금된 헬리콥터, 사막 한가운데 땡볕 아래에서도 흰색 브라우스와 양복 정장에 집착하는 외계인. 이건 그들에 맞서 싸우는 지구인들도 마찬가지다. 하나같이 젊은 꽃미남 배우들이 트럭을 몰아도 클래식 벤츠 트럭을 고집하고, 자동차를 타도 폴크스바겐 마크가 눈에 띈다. 전부 유럽산 차들이다.

영화를 보면 볼수록 떠오르는 국내 인터넷 소설작가 한 명이 있었다. 귀여니. 찬반 양론을 불러일으키는 작가. 과문하지만, 직접 목격한 몇몇 작품의 세계를 보면 세상은 주인공, 작가 귀여니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영화가 딱 그렇다. ‘미치광이이자 천재’인 삼촌은 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완다 안에 멜라니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마치 독심술처럼 멜라니/완다의 마음을 꿰뚫어보고 ‘멜라니의 강인함이 그녀를 살아남게 했다’고 사람들에게 전한다.

두 꽃미남 사이에서 주인공의 갈등은 멜라니와 완다의 갈등으로 치환된다. 완다에게 몸을 뺏기기 전 멜라니와 남자친구 사이의 진도(?)는 키스를 했다가 뺨을 맞는 정도의 ‘풋풋한 수준’에 머물러 있는데, 그것은 완다와 그녀의 남자친구 이안 사이의 관계도 별반 다르지 않다. TV 미니시리즈 <워킹데드>의 얽히고 설킨 남녀관계를 이 영화와 비교해보면 성욕에 눈먼 원시인들의 카니발이다.

서클렌즈만 끼면 외계인이니 어쨌든 저렴해 보이는 이 로맨스물의 원래 주인은 이미 몇 차례 영화화한 ‘트와일라잇’ 시리즈의 원작자 스테파니 메이어다. 앞에서 귀여니를 언급했는데, 인터넷을 살펴보니 아니나 다를까 비교 글들이 꽤 된다. 만약 이 글을 읽는 독자가 트와일라잇 팬이라면 이 영화에 특별히 실망하진 않을 것 같다. 그런데, 트와일라잇 영화에 특별한 관심이 있던 분이 아니라면? 그냥 다른 영화를 선택하기를 권하고 싶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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