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 이제는 피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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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수의 눈]개헌, 이제는 피할 수 없다

이번 대선에서 모든 후보들이 정치개혁을 이야기했다. ‘안철수 현상’은 기존의 정치가 한계에 도달했다는 것을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었다. 기존 정치의 한계는 1987년 헌법의 한계이기도 하다. 1987년에 개정된 헌법은 군부독재의 집권 연장을 막고, 선거를 통해 정권교체가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그것을 위해 대통령을 직선으로 뽑되, 임기를 5년으로 하고 중임을 못하게 했다. 이런 87년 헌법의 목표는 어느 정도 달성됐다.

그러나 87년 헌법은 기득권 중심적이고 획일화한 정치구조도 낳았다. 대통령선거에서 결선투표제가 도입되지 않다보니, 소수정당은 후보를 내지 못하거나 후보를 내더라도 끊임없는 사퇴압력에 시달리게 된다. 가뜩이나 대통령에게 권력이 집중된 국가에서, 대선에 나올 수 있는 후보군마저 실질적으로 제한되는 셈이다. 국회의원 선거제도도 문제다. 일부 비례대표의원이 있기는 하지만, 지역구 소선거구제 중심의 선거제도가 유지되고 있다. 이것은 지역구에서 1등을 할 수 있는 거대 기득권 정당에만 유리한 선거제도이다. 이 속에서 다양한 정치세력이 경쟁한다는 것은 꿈꾸기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정치제도를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헌법개정 없이는 진전되기가 어렵다. 당장 대선에서 결선투표제를 도입하려고 해도, 헌법개정이 필요하다는 반론이 제기된다. 이런 법리적인 이유 때문만이 아니더라도 헌법개정은 필요하다. 지역구 소선거구제 중심의 국회의원 선거를 비례대표제 중심으로 전면개편하는 것은 엄청난 변화이다.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최종적으로는 국민투표 같은 절차를 거칠 필요가 있다. 그런데 현행 헌법상 선거제도 개혁을 놓고 국민투표를 거치려면 헌법개정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는 사항이 헌법개정 이외에는 ‘외교·국방·통일 기타 국가 안위에 관한 중요 정책’으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방분권을 위해서도 개헌은 필요하다. 87년 헌법에서 지방자치 관련 조항은 달랑 2개 조문뿐이다. 지방분권에 대한 고민 자체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중앙집권적인 정치·행정은 민주화 이후에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지방자치를 실시하고 있지만 전국적으로 획일적인 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이나 독일 같은 국가에서는 지역마다 지방자치제도가 다르다. 지방자치단체장을 직선으로 뽑는 곳도 있고, 의회에서 간선으로 뽑는 곳도 있다. 그 덕분에 다양한 지방자치의 모델과 지역정책들이 나오고 있다. 사실 지역마다 사정이 다른데 똑같은 지방자치제도를 택할 이유가 없다. 이런 지방분권적인 사고를 헌법에 담아야 한다.

문제는 누가 어떤 과정으로 개헌에 관한 논의를 진전시킬 것인가이다. 국회만의 논의는 시민들의 신뢰를 얻을 수 없다. 이미 그런 방식의 개헌논의는 여러 차례 실패해 왔다. 그렇다고 대통령이 개헌논의를 주도하는 것도 적절하지 못하다.

현 시점에서 개헌을 추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시민들의 참여를 보장하는 것이다. 시민적 정당성을 얻는 것만이 개헌을 추진할 수 있는 현실적 방법이다. 이 대목에서 상상력이 필요하다. 만약 헌법개정 초안을 추첨으로 선정된 시민들이 작성해보면 어떨까? 그리고 여러 입장을 가진 전문가들이 추첨으로 뽑힌 시민들 앞에서 치열한 토론을 하고, 그 과정을 모두 공개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시민들 스스로 쟁점을 하나하나 정리해가는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시민의 입장에 선 개헌안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대선이 끝나면 이런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개헌논의의 장이 열리기를 기대한다.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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